신형 아반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한다면...
부산모터쇼에서 신형 아반떼의 실물을 처음 접한뒤 거의 석달이 지나서야 시승차를 몰아보게 됐습니다. 노조파업 등으로 시승차 조달이 어려웠고 또 제가 먼저 타보겠다고 요구할만한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는 합니다만, 시승차를 일반판매보다 훨씬 나중에 타려니 좀 기분이 그렇더군요.
현대차는 4월말 부산모터쇼에서 “올해 말까지 국내 6만대, 해외 10만대 등 총 16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연간 3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겠다”며 “아반떼를 쏘나타, 그랜저, 싼타페와 같이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요. 한마디로 말해 판매량이나 인지도 양쪽에서 도요타 카롤라 혼다 시빅과 같은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런 현대의 목표가 가능할까요? 제목에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는 말을 붙여봤는데요. 물론 선입관을 갖지 않고 신형 아반떼를 대하는건 불가능하겠지만, 현대와 도요타의 브랜드 파워를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차 자체의 초기성능과 상품성을 따져봤을 때 코롤라 시빅의 수준을 근접하게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MK의 수감이나 노조파업 등으로 큰 진통을 겪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자체는 아직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입니다. 도요타의 현행 카롤라를 일본에서 몰아봤을 때의 느낌과 비교하자면 그리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신형 시빅의 경우엔 아직 몰아보지못해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인 제품의 정련도나 달리기 기본기 등에서 아직은 아반떼보다 한수 위가 아닐까 싶지만 이 역시 큰 차이는 아니라 여겨질 정도로 신형 아반떼의 상품가치는 뛰어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장기품질에서는 현대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신형 아반떼는 기존 모델과 완전히 다른 플랫폼(차의 기본이 되는 뼈대 또는 그 뼈대와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을 총칭해 부르는 말)을 채택했습니다. 신형 쏘나타나 그랜저가 구형에 비해 차체강성이나 안정도가 향상됐듯이 신형 아반떼 역시 차체의 구조적인 안전도가 크게 향상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준중형급으로는 처음으로 전자식 자세제어장치(VDC)와 사이드 커튼에어백을 적용했고요. 전동식파워스티어링에 스티어링휠의 깊이를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까지 들어있습니다. 시판가격은 1.6리터 사양 기본형이 1120만원, 최고급형이 1615만원(4단 자동변속기 포함, 차체자세제어장치와 모젠 네비게이션 제외)이고요. 1.6 디젤 모델은 1490만~1625만원입니다.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과감함 보다는 안전함 위주로 간듯 보이면서도 옆선이나 뒷부분의 전체적인 실루엣에서 상당히 세련된 느낌입니다. 뒤쪽 트렁크와 테일램프 디자인 등에선 BMW 신형 3시리즈와 렉서스 IS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하는데요. 카피 차원이라기 보다는 최근의 디자인 흐름이 반영돼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전체적으로 튀지 않으면서도 곳곳에서 변화를 주려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대시보드에 한번 꺾어지는 것이나 버튼의 배치 스타일과 개별디자인 등이 닛산 인피니티풍과 비슷한데요. 실내 인테리어는 디자인이나 재질 모두 꽤 고급스럽게 잘 마무리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센터페시아 버튼 배열도 깔끔하고요. 특히 마음에 드는건 운전석 좌우 조명버튼이 넓은 조명판 전체를 눌러서 켜고 끄도록 돼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 혼다 피트에서 보고 참 편하게 잘 만들었다 싶었는데, 얼마 안있어 아반떼에서도 만나게 되네요. 차값 인상분을 생각했을 때 도어 트림쪽을 좀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전체적인 실내 완성도는 훌륭합니다. 역시 아반떼에서 BMW 3시리즈나 렉서스 IS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아반떼XD가 길이X너비X높이가 4525X1725X1425mm였는데 비해, 신형 아반떼 4505X1775X1480mm로 너비와 높이가 약간 늘어났습니다. 차폭으로만 보면 십수년전 중형차급의 크기와 비슷합니다. 앞좌석 공간은 구형에 비해 꽤 여유로워졌고, 뒷좌적 공간은 역시 준중형이다 보니, 앞좌석을 여유있게 뒤로 당기다보면 뒷좌석 무릎공간이 좀 안나오더군요. 앞좌석의 공간이 더 여유로워진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내고가 높아졌기 때문에 뒤에 앉아도 예전 모델에 비해 더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또 뒷좌석 배리에이션이 좋습니다. 스키스루 기능으로 좌석 중앙에 암레스트부분만 뜯어 낼 수도 있고, 6대4 시트 분할도 가능한데다 트렁크 공간도 적지않아(402리터) MTB 같은 것도 잘만 눕히면 실을 수 있겠더군요.
1.6리터 신형 DOHC VVT 휘발유엔진(감마엔진)은 최고출력이 121마력으로 기존 국내 1.6리터급 엔진보다 10마력 이상 출력이 높습니다. 획기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이는 엔진의 기본적인 성능이 과거 엔진보다 한단계 도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차중량 1191kg에 4단자동변속기와 맞물린 가속력은? 기존 1.6리터 차량에 비해 크게 달라진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크게 힘이 부족하지도 않지만 급가속시에는 소리만 부산하고 속도 올라가는 것은 더디지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초대였습니다. 사실 시원한 가속감을 느끼려면 8초대는 돼야 하지만, 그정도 되려면 아반떼 차체에 2~2.4리터 엔진은 얹어야 겠지요. 1.6리터 엔진 급에서는 나쁘지 않은 가속력입니다.
기존모델에 비해 최고출력이 10마력 정도 올라갔지만, 실주행 영역에서의 가속감 향상은 크지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엔진 회전수 올라가는 느낌은 4단 자동변속기임에도 불구하고 꽤 매끄럽습니다. 풀액셀을 하면 시속 180~190km까지는 무리없이 올라가 줍니다.
공인연비는 자동변속기 기준 리터당 13.8km인데요. 이틀간 몰면서 대략 측정해본 것으로는 실제주행시에도 리터당 12km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쁜 편은 아니지만 역시 카롤라나 시빅에 비해 약간 밀리는 부분입니다. EURO-4 기준을 통과하는 친환경디젤 1.6리터 VGT 엔진은 수동변속기 기준으로 공인연비가 리터당 최고 21.0km에 이른다고 하는군요.
최신 엔진 답게 알루미늄 블럭과 체인이 들어가 있는데요. 확실히 기존 엔진에 비해 한결 가벼운 움직임을 보여주기는 합니다만, 시승차의 문제인지 아이들링시 진동이나 소음이 약간 발생하더군요. 조립과정에서 마지막 1%의 완성도가 떨어져 잡소리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양산차에서는 이런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서스펜션 계통에도 부분적으로 알루미늄을 쓴데다 구조자체의 설계가 더 좋아져서인지 승차감은 기존 아반떼의 느낌과는 다르고요. 오히려 도요타 카롤라 류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보면 카롤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와인시음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식으로 평가를 해본다면 영미 자동차 칼럼니스트들도 도요타 카롤라에 비해 수준이 절대 떨어지지 않다거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의 평점을 주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값이 오른 것이 다소 부담되기는 합니다만, 신형 아반떼가 동급 국내시장을 지배할 것은 확실합니다. 이정도 수준이라면 일단 국내 동급차 중에서 적수가 없어보이고, 혼다 시빅이 2000만원대 중반 이상으로 들어올 경우에도 국내시장 수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입니다.(시빅이 아반떼와 일대일로 맞붙을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입니다) 시빅이 2000만원대 초반으로 들어온다면... 다시 말해 비슷한 사양으로 가격차가 500만~700만원 정도 차이라면 아반떼가 긴장해야 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어려운 상황에서 첫선을 보이긴 했지만, 아반떼가 최근 신형 쏘나타 그랜저와 마찬가지로 준중형세단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정도 수준의 차에 현대가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여서 조립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생산성을 높이고 마케팅에서 영리한 전략을 세워준다면 미국시장에서도 충분히 카롤라 시빅과 붙어볼만하다고 생각됩니다. 현대가 여러군데서 문제가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동차 제품 자체는 아직까지 괜찮다는게 다행입니다.(좀더 잘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있지만) 다만 요즘 현대차 내부의 흐름을 생각할 때 이런 기조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또 현대가 중소형차급에서 얼마나 강렬한 매력이 존재하는 차를 만들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이겠지요.
최원석기자 w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