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마력의 힘!...페라리 10대 값 ‘F1’ 가공할 가속력

제로백 2.8초...“자동차가 아니라 머신이었다”

고속 질주하고 있는 F1 경주차. 포뮬러는 바퀴가 차체 외부에 있고 운전석이 노출돼 있다.세계 최고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자동차 경주 F1(포뮬러 원). 그 F1 경주차를 직접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7월24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인근 ‘폴 리카르드 서킷’. 지난해 팀부문 챔피언이며 올 시즌도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는 마일드세븐르노F1팀이 보유한 F1 경주차를 몰아봤습니다. 르노는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페라리)를 제치고 2년 연속 드라이버 챔피언이 유력한 페르난도 알론소가 소속된 최강팀입니다.

준비된 시승차는 엔진 성능만 조금 낮췄을뿐 카본 섀시, 휠ㆍ타이어 등 대부분이 경기에 참가하는 실전용 차와 똑같았습니다. 르노는 “‘Modified car’이지만 경기 참가 차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F1 경주차의 스티어링 휠 조작법과 시승시 주의 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르노팀 교관.이 말은 ‘엔진 성능이 조금 떨어진다고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는 뜻이죠. 실제로 이 시승차의 제로백(0->100km/h)은 불과 2.8초였습니다! 엔초 페라리(3.65초), 포르쉐 카레라 GT(3.9초)는 물론 코닉세그 CCR(3.2초)와 비슷합니다. 실전용 경주차의 제로백은 2.3~2.5초로 현존 최고 수퍼카(최고 출력 1001마력) 부가티 베이런 16.4(약 2.5초)와 비슷합니다. 또 정지 상태서 160km/h로 가속했다 다시 정지하는데 6초면 끝납니다.

-최고 출력 650마력... 제작비 약 30억원

마일드세븐르노F1팀은 “시승차의 제작비가 페라리 10대 값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약30억원쯤 된다는 것이죠. 성능도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입니다. 배기량 3.5리터 V8 엔진의 최고 출력이 무려 650마력입니다. 리터 당 185마력!

F1 경주차 출발 직전 운전석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실전용 차는 한술 더떠 2.4리터로 700~800마력을 뽑아냅니다. 대개 수퍼카들이 5000~6000cc라는 엄청난 배기량(베이런 16.4는 8000cc)으로, 혹은 터보 차저 2~4개를 달아 출력을 높인 것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세상의 엔진인 셈이죠.

성능도 성능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차체 중량이었습니다. 달랑 515kg. 가속능력의 척도 중 하나인 ‘마력 당 무게’가 불과 0.79kg(515kg/650hp)에 그칩니다. 일반적인 국산 중형차가 무게 1500kg에 140마력대고 엔초 페라리가 무게1360kg에 660마력이니, F1 경주차의 파워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일반 차량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1500마력이 넘는 초수퍼카인 셈이죠. 이처럼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이며 대단한 성능을 지녀 ‘차(car)’라는 일반적 단어를 뛰어넘어 ‘머신(machine)’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가속시 공포감 엄습...터널 효과

현지 경주차 시승은 2바퀴만 가능했습니다. 레이싱복, 장갑, 신발, 헬멧을 착용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출발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긴장과 기대가 묘하게 교차됐습니다.

F1 경주차 운전석 모습. 성인 한 명이 겨우 앉을만한 공간밖에 없다.시승차 운전석에 ‘힘들게’ 들어갔습니다. 양쪽 어깨가 차체와 거의 닿을 정도로 비좁았고 하체쪽도 상황은 마찬가지. 겨우 두 다리를 밀어넣고 클러치, 브레이크, 가속 페달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차체와 노면과의 거리는 약 5cm. 거의 바닥에 누운 채 눈만 빼꼼히 나와 있는 자세가 돼더군요.

클러치 강도는 650마력을 감당하기 위해 돌덩이 같았습니다. 유격도 불과 5mm. 장딴지에 젖먹던 힘까지 주며 페달을 아주 서서히 떼어야 했습니다. 시동을 꺼트리지 않고 일단 출발 성공... 천천히 피트(Pit)를 지나 3.8km 길이의 트랙에 진입했습니다.

보잉 747의 경우 이륙시 약 140dB의 소음이 발생하는데, F1도 그에 못지 않아 스타트할 때는 사람이 듣기에 고통스러운 약 120dB이 넘는 엄청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나? 2단 기어 상태였지만 이미 거대한 엔진음으로 땅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속 페달을 조금 세게 밟는 순간 ‘쿠구궁~애~앵~’ F1 특유의 소프라노 엔진음이 뒤에서 터져나왔습니다. “바로 이 소리야!”

잠시 가속 후 처음으로 맞이한 급코너(1번 코너). 감속 후 스티어링 휠을 돌렸습니다. 스티어링 휠과 바퀴의 기어비는 거의 1대1.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웬만한 손힘으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기가 버거울 정도였죠.

시동 안꺼지고 스타트 성공! 트랙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F1 경주차.코너를 돌아나가는 F1 경주차는 ‘예민함’ 그 자체였습니다. 경주차는 “한치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스핀이 난다”고 경고하는 듯 했습니다. 양산차량 처럼 온갖 전자장비의 도움으로 질주하는 게 아니라 기본 메커니즘과 인간 감각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머신’임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몇 차례 급코너를 돈 후 약 700m 길이 직선구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야생마 같은 경주차의 질주 본능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차가 ‘날아가기’ 시작했고 순간 시야가 흐려지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가속으로 주변 사물이 안보이고 저멀리 끝지점만 조금 보이는 ‘터널 효과’였죠. 게다가 낮은 차체로 인해 체감속도는 실제 속도의 3배에 가까워 온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2단에서 시작해 레드존 직전까지 풀 스로틀(Full Throttle)... 경주차는 ‘미친듯이’ 속도를 올렸습니다. 불과 몇 초만에 1번 코너가 다시 눈앞에 다가왔고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았습니다. 신기하게 차는 원하는대로 정확히 속도를 줄였습니다. 첨단 소재인 카본 브레이크의 위력이었죠. 200km/h가 넘는 속도였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10여m만에 60km/h로 줄었습니다.

두 번째 랩은 좀더 속도를 올렸봤습니다. 차체와 페달은 여전히 돌덩이였습니다. 노면의 미세한 요철 하나까지도 운전자에게 전달해줬습니다. 서서히 긴장감이 사라지고 묘한 쾌감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피트에서 들어오라는 깃발이 펄럭~펄럭~. ‘이제 더 잘 몰 수 있는데....’ 아쉬움이 몰려오더군요.

현 세계 챔피언 페르난도 알론소(앞쪽)가 모는 2인승 F1 경주차.-챔피언 알론소가 모는 경주차에 동승

마일드세븐르노F1팀은 포뮬러 시승 이외 또하나의 특별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현역 챔피언인 페르난도 알론소의 F1 경주차(2인승 개조) 동승이었습니다. 연봉 900만 달러인 세계 최고 스타가 모는 경주차에 동승하다니! 알론소의 투 시터(Two seater) 경주차에 탄 다는 것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골프를 친 것이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농구 게임을 뛴 것과 같습니다.

알론소는 2바퀴를 성심성의껏 운전했습니다. 앞서 F1 초보자들이 몰았던 것과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급가속, 코너링, 브레이킹 등 평소 방송으로만 보던 세계적 스타의 질주를 바로 뒤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알론소(가운데)와 유망주 하이키 코발리언(오른쪽) 인터뷰. 알론소는 "페라리가 강팀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짧지만 F1 경주차를 경험하고 알론소의 투 시터 머신 동승 이후 F1팀과 드라이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이들은 세계 최고를 지향합니다. 르노만해도 정상에 오르기 위해, 또 정상을 지키기 위해 해마다 3억달러(약 3000억원) 안팎을 쏟아부으며 연구하고 경주차를 개발합니다. 이 가운데 엔진 개발에만 1000억원대가 들어갑니다.

또한 F1 출전 드라이버들도 전세계 단 22명뿐입니다. 드라이빙 테크닉은 물론이고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이 없다면 1시간30여분간 300km/h를 넘나들며 치르는 ‘전쟁’을 할 수는 없겠죠.

35도가 넘는 폭염과 극도의 긴장 속에 치러진 시승이라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천둥소리를 내며 300km/h로 질주하는 F1 머신들을 봤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F1 경주차 시승 전 연습 주행을 위해 마련된 포뮬러 르노 2.0 경주차들. 포뮬러 르노 2.0 그룹 주행 준비. 직선로를 달리는 포뮬러 르노 2.0 경주차. 185마력이지만 무게가 450kg에 불과해 짧은 직선구간에서 쉽게 200km/h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