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장차관이 타는 관용차는 검은색 대형차 아니면 바퀴가 굴러가지 않나? 아니면 조폭들의 행렬인가?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관용차가 지나친 ‘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제작소(이사장 김창국) 사회창안센터는 지난 11일 고위 공직자들의 관용차 이용실태를 분석해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의 관용차가 모두 중·대형차였고 차관급 공무원에게도 에쿠스가 지급된 사례가 있었다”며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관용차 개혁 캠페인’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사회창안센터에 따르면, 2005년 12월31일 현재 행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관용차는 총 1만9193대(승용차 9,794대/승합차 4,177대/화물용 4,800대/특수용 422대)였다. 이는 2004년에 비해 399대가 증가한 것이다. 이 가운데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전용차량은 202대였는데, 모두 중·대형차이고 소형차와 경차는 1대도 없었다.
고위공직자에게 지급된 관용차중 최고급 차량은 에쿠스였다. 에쿠스의 평균 차량가격은 약 5천만원으로, 임차할 경우 한달에 200여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와대가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관용차 중 최고가는 한명숙 국무총리가 사용중인 에쿠스로, 배기량 4500cc, 차량가격 8260만원이었다.
또한 고위공직자들에게 공무용으로 배정된 관용차들은 오로지 ‘검은색’ 일색이었다. 검은색 일색 관용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통계는 행정부 소속 차량만을 통계로 했기 때문에 사법부, 국회, 지자체와 방송위원회 등 각종 독립위원회, KBS 등 국·공영 기업의 통계는 빠져 있다. 이들 기관의 전용차가 모두 포함될 경우에는 고위공직자 전용차량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장·차관 차량규정 “대형·중형·소형·경형 가능, 색깔도 맘대로”…현실은 모두 검은색 대형차?
행정부에서 사용되는 관용차는 대통령령인 ‘공용차 관리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규정에 따르면 업무용 이외의 승용 전용차들은 장·차관급 공무원에게만 지급된다. 이들 차량의 최단 운행기준 연한은 5년으로, 5년이 지나면 대개 새 차로 교체한다. 차형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차 색깔에 대한 규정은 없다. (사법부와 검찰은 별도 규정) 승용 전용 관용차들이 대부분 대형차 위주라는 비판을 의식해 정부는 관계 규정을 꾸준히 개정해 왔다.
일례로 2003년 11월20일에는 기존에 장관급 2400cc 이상, 차관급 2400cc 미만으로 규정되어 있던 차형 대상을 장·차관 모두 대형·중형·소형 및 경형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했다. 장관은 무조건 2400cc 이상 고급승용차를 타야 했던 예전 상황과는 달리 ‘소형차나 경차’를 타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형차나 경차를 타고 있는 장·차관급들은 한 명도 없다.
배기량에 따른 관용차 관리 기준을 없앤 결과는 관용차의 대형화로 나타났다. 장·차관 49명의 관용차량 중 배기량 3천㏄ 이상 차량은 2004년 말 9대에서 2005년말 18대로, 2배 늘어났다.
관용차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운영지영팀의 정재영 주임은 “현재 차관급 이상은 체어맨(2500cc급), 장관급은 에쿠스(3500cc급)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에쿠스의 경우에는 1년 평균 1000여만원, 체어맨은 800여만원의 유지비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 주임은 차량 색깔이 검은색 일색인 이유에 대해서는 “검은색이 다른 색깔들보다 관리가 쉽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자체 단체장들 덩달아 “우리도 고급차”
행정부에 상황이 이런데 지방자치단체라고 다를리 없다. 지자체의 관용차는 지자체 조례에 의해 관리가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지자체 마음’이다.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조례까지 어기면서 관용차를 바꾸기도 한다. 경주시는 7월 초 백상승 경주시장의 관용차를 기존 중형 2000cc급에서 대형인 3200cc급으로 바꿨다. 이는 경주시 조례에 의한 관용자 내구연한 5년을 어기고 4년 만에 교체한 것이다. 홍건표 부천시장도 지난 6월 9일 내구연한 5년을 지키지 않고 부천시 관용차량 관리규칙이 변경된 후 바로 2700cc에서 3300cc 승용차로 교체했다. 지난 4월에는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실에서 “광역단체 16곳 모두와 212개 기초단체의 82%가 시장과 의회의장 관용차의 배기량을 올렸다”고 주장하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도 현재 관용차로 에쿠스(3500cc급)과 다이너스티(2500cc급)를 사용하고 있다. 김동성 단양군수처럼 관용차를 마다고 걸어서 출퇴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야말로 ‘드문’ 사례다.
“국민들한테 경차 타라고 하면서…”
이런 현실에 대해 희망제작소쪽은 환경시민단체와 컨소시엄을 꾸려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사회창안센터의 안진걸 연구원은 “에너지시민연대 등 환경단체와 연대해, 관용차 개혁을 정부에 촉구하고 공동 테이블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국민들에게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경차를 타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지 관료들이 몰염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며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기 전에 관료들이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론 기름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그렇게 큰 차를 탈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환경장관이 타는 차 크기는? 문화장관의 차량 색깔은?
그렇다면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에 앞장서면서 국민에게 모범 사례를 보여야 하는 부처의 책임자들은 어떤 차량을 이용하고 있을까?
산업자원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은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의 책임을 맡은 부처답게(?) 3500cc급 에쿠스를 관용차로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이는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도 2800cc급 체어맨을 빌려타면서까지, ‘에너지 절약’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며,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문화관광부는 어떤 색깔의 승용차를 관용차로 쓰고 있을까? 문화부 장관의 관용차 역시 검은색 체어맨이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