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34연대의 평택 안성 방어진이 무너진 7월 6일 현재 미25사단, 미제1기병사단이 한반도에 상륙하고 있었고 맥아더는 24사단장인 딘소장을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임명 위 3개사단을 지휘하게 하였다
평택 안성 방어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않고 패퇴한 34연대에 격노한 딘소장은 작전수행중에는 장수를 교체하지않는다는 금언을 깨고 연대장 러블리스대령을 경질하고 새로이 마틴 대령을 34연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34연대의 3대대(이부대는 안성을 방어하면서 북한군과 교전하지도않고 철수함)는 즉시 북상하여 북한군과 교전하라고 명령함에따라 러블리스연대장은 "3대대는 1번 국도를 따라 성환으로 북상 북한군과 교전하라"라고 지시한다
7월 7일 천안으로 철수하여 부대 재편을 마친 34연대 3대대는 1번국도를 따라 북상하다 오후 3시경 선두부대가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받고 수명의 병력손실을 입자 즉시 후퇴한다
그러자 34연대의 작전과장이던 던소령과 시커스소령이 선두부대의 후퇴를 제지하고 도로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라고 명령하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몇발의 소총 탄환이 날아왔다
그러자 미군 병사들이 미친듯이 사방팔방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던소령과 시커스소령이 이를 간신히 제지시키자 또 갑자기 후방에서 아군의 박격포탄이 이들의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가 머리끝가지 치민 던소령이 박격포 포격을 중지시키기위해 짚차를 몰아 후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대 후방의 3대대가 도로를 따라 철수하는것을 보고 깜작놀라 대대지휘소로가 대대장을 찾았으나 찾을수없자 다시 짚차를 몰아 연대지휘소로가 3대대의 철수를 보고했다
새로 임명된 연대장인 마틴 대령이 "그들을 다 원위치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하자 던소령은 후퇴중인 3대대를 정지시키고 시커스소령과 함께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었다
북쪽으로 이동중 시커스소령과 던소령은 북한군의 저격을 받아 총상을 입고 짚차는 전복되었다 총격이 시작되고 미군들은 도로변에 엎드려 응사했지만 몇 안되는 북한군 정찰병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진하려하지 않았다
그때 어느 장교가 "퇴각 퇴각"하고 외치자 3대대는 중상을 입고 누워있는 시커스소령과 던소령을 버려두고 도망해버렸다 던소령은 믿을수없는 광경에 바라볼수밖에 없었고 북한군 본진이 나타난것은 2시간후였다 시커스소령은 결국 도로에서 사망했고던소령은 포로가 되었다
마틴 대령은 천안 북쪽으로 달려가 3대대가 유기한 장비와 차량일부를 회수하여 천안으로 돌아온후 3대대는 천안 좌측에 1대대를 천안 우측에 그리고 중앙에 연대본부병력을 배치 말밥굽형의 진지를 구축하고 1번국도상 북한군전차의 진격이 예상되는 지점에 대전차지뢰 800발을 매설한다 또한 포병대와 78전차대대의 증원을 받아 전차들을 연대본부에 배치한다
7월 8일 오전 6시 북한군이 천안 전면에서 공격을 개시한다 보병을 실은 북한전차들은 800발의 대전차지뢰를 매설한 지역을 아무렇지 않은 듯 통과(아마 야간에 해체한듯) 천안시로 들어와 보병을 풀어놓고 미군이 매복하고 있을듯싶은 건물과 교회 등과 차량등에 포격을 가하면서 휘젖고 다니자 연대본부의 지휘가 마비되어 버린다
연대장 마틴 대령이 전차를 박살내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자신이 직접 로켓포를 들고 북한군 전차가 80m까지 접근하는걸 기다려 로켓포를 쏘았으나 먼저 북한군전차의 포격을 받고 사망한다
연대장의 탄약수가되어 함께한 연대작전과 선임하사관 크리스턴의증언에 따르면 "연대장이 로켓 사수가 되고 나는 탄약수가 되어어느 건물안에서 적의 전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는데 전차 한대가 우리가 있는 건물쪽으로 포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연대장이 포를 쏘았는데 적전차에서 발사한 85mm포탄에 맞아 연대장의 몸이 두동강이 나고 뒤에 있던 나는 충격으로 한쪽 눈알이 튀어나왔으나 그눈알을 주워 눈에 넣은 다음 정신을 잃었다" 라고 하였다
연대장이 전사하자 연대의 전투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오전 9시 포병의 연막차장을 요청하고 34연대는 천안에서 철수하고 교통의 요지 천안은 오전 10시 북한군에의해 점령된다 마틴대령과과 함께 천안에있던 연대본부 장교들은 한사람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딘소장은 34연대의 예비대인 1대대와 21연대의 1대대로 천안에서 후퇴하는 34연대를 엄호하게하고 낙오자 수용선을 설치 후퇴하는 병력을 수습하게 한다 수습한 병력은 175명에 불과했고 박격포, 기관총등 공용화기 대부분은 천안에 유기된 상태였다 이3대대는 부산에 상륙했을때 병력이 700여명이었으나 한번의 전투로 병력의 70%를 잃었던것이다
천안에서 최초로 전차전이 있었는데 북한군전차 1대가 피격된것에 비해 미군전차 7대가 파괴되었다고 하는 기록으로보아 전차전은 북한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던 것 같고 천안에서 최초로 시가전이 있었다
미군이 방어하는 입장의 시가전이었는데 이후 대전과 북한군 후퇴시의 서울에서 더 확대되고 치열한 시간전이 있었지만 시가전은 항상 북한군에 유리한 전장이었다
이것은 지원제와 징병제의 차이 때문이다 시가전은 진지에서 조직된 대열과 지휘관의 통제하에 전투를 하는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기판단하에 각각의 건물에 엄폐,매복하여 전투를 수행하는것으로서 본질이 유격전이다
징병된 군대는 공격을 받아 대열이 무너지고 흩어지게되면 전투력을 상실하지만 (그들은 전장으로 끌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외부의 강제력과 대열의 의지가 없는 한 자신의 생명을 위험속에 내던져서라도 싸우려는 의자와 신념이 없어 곧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여 숨어버린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받쳐 싸우겠다고 지원한 병사들은 공격을 받아 부대가 흩어져도 전투력은 상실되지않고 흩어진 상태에서 각자 자기판단하에 싸운다 그래서 시가전은 지원제하의 군대에 유리하고 유격전은 징병된군대에서는 일반적으로가능하지 않다 북한의 인민군은 지원제로서 의사나 교사와 같이 어린이들이성장하면 미래에 선택할수있는 직업중의 하나이다
천안이 북한군에의해 점령되었다는 전황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북한군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다 현대식 장비를 갖추고 잘훈련된 병사들로 구성되어있다 적은 장비 사기 모두 우수하며 전술운영에 아주 노련하다" 라는 판단을 내리고 2개보병사단, 1개 공수여단, 1개 해병전투단과 전투기 700대 중전차 3개대대 (12개 중대)를 워싱턴에 제1차 증원을 요청한다
거동할수없는 부상병은 그대로 두고 심지어 총마저 비리고 무질서하게 퇴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