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미군이 최초로 충돌한 7월 5일 오전 8시 현재 미군은 1번 국도 축선을 따라 다음과 같이 병력을 차례로 배치한다


오산 북쪽의 죽미령에 진지를 구축한 스미스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오산 남쪽 갈곶리에는 국군17연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진지의 북쪽 은계마을에 일부병력을 전진배치하고 있었다


오산 남쪽 평택과 안성에는 러블리스대령이 이끄는 미34연대가 배치되었고 그후방으로는 스티븐스 대령이 지휘하는 미21연대가 전의 조치원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7월 5일 오전 10시 죽미령의 스미스부대 방어진을 돌파한 북한군 선발대 탱크가 국군 17연대가 방어하고있는 은계마을에 모습을 나타냈다


기다리고있던 국군17연대에서 탱크를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으나 유효사거리를 훨씬 벗어난 거리였고 진지만 노출해주는 꼴이 되었다


즉각 전차포와 기관총이 진지를 향해 불을 품었고 로켓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전사하자 바로 갈곶리의 본진으로 퇴각했다


오전 11시 북한군 선발대 탱크들이 갈곶리 국군 17연대 본진으로 들이닥쳐 전차포와 기관총으로 로켓병들을 궤멸시킨후 방어진을 돌파하여 그대로 후방의 서정리 방향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 몇대의 탱크와 함께 북한 보병들이 모습을 나타내 포병대의 지원포격으로 국군의 진지를 유린한후 압박해오자 국군 17연대는 동요되고 뿔뿔히 흩어져 평택 안성을 거쳐 천안으로 철수한다


평택 안성에 진지를 구축한 미34연대는 2개 소대를 로켓포3문과 기관총 1정으로 무장시킨후 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전진배치하여 도로상에 대전차 차단진지를 구축한다


7월 5일 오후 6시 무렵 서정리에서 북한 전차 1대가 남하하는것을 발견 로켓포를 발사했으나 역시 탱크 가까이에 접근하지못하고 유효사거리 밖에서 사격했다 탱크는 포탑을 돌려 포와 기관총으로 응사 미군들이 사망하자 본진으로 후퇴한다


그무렵 딘소장이 평택의 연대본부를 방문하여 보고를 듣고 오전에 스미스부대가 북한군과 교전했다는것과 오후에 오산 남쪽 서정리에 북한군 전차가 출현했다는것 그리고 그시간까지 평택으로 철수한 스미스부대원이 없다는것으로 미루어 스미스부대가 북한군에 포위되어 전멸한것으로 판단한다


7월 6일 새벽 1시 비에 흠뻑젖고 혼이나간 스미스부대 낙오병 4명이 돌아와 스미스부대가 북한군 전차와 보병에의해 궤멸되어 거의 모든 병사들이 죽었다고 보고를 한다


딘소장을 대리하여있던 번즈준장이 러블러스연대장에게 최선을 다해 현진지를 고수하되 후방경계를 강화하여 퇴로를 확보 스미스부대의전철을 밟지 말라고 지시한다


7월 6일 새벽 3시 미군은 1번 국도상의 입성천 교량을 폭파한다 4시 30분 서정리를 돌파한 북한군 전차 선발대가 안개속에 모습을 나타내어 끓어진 교량앞에 멈추어서자  일제히 박격포 포격이 시작되었다


 북한군은 즉각 전차포로 대응하면서 산개해 개울을 도하하여 전진하였다 전차와 보병의 합동작전으로 뒤따르던 보병들도 일제히 산개하여 공격을 개시하면서 박격포 포격을 유도하던 관측병이 전사하여 포격이 멈추게되고 전차의 포탄이 고지로 날아오고 북한군 보병들이 돌격해오자 미군들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사격개시" 라는 지휘관의 외침에도 고지위의 미군들은 거의 모두 사격을 하지 못했다 병사들은 북한군이 자신들을 정말로 죽이려한다는것을 믿으러하지 않는듯 그저 입을 벌린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북한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청년들은 국가라는 괴물에의해 고향에서 만리나 떨어진 틀림없이 자연도, 풍속도 음식도 낯설었었을 한반도로 끌려온것이다 이들은 죽으려 온것이 아니다 이들은 살고싶은 젊은이들이었고 또 살아야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북한군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는사람은 분대장과 소대장뿐이었다  자신들이 총을 쏘지 않으면 북한군도 자신들에게 총을 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지휘관은 2개 소대는 엄호하고 부대는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퇴할 준비를 하라 하지만 먼저 B중대를 엄호한다" 라고 외쳤지만 그딴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마지막으로 남는 부대가 되는것만은 피해야한다는듯 모두들 일제히 참호에서 뛰어나갔다


야전배낭도 팽개치고 실탄도 챙기지 않았다 심지어 총도 팽개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많은 병사들이 참호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채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밖으로 몸을 내밀기를 거부했다

 

34연대가 평택에서 철수했다는 보고를 들은 딘소장은 깜짝 놀라 진상을 알기위해 짚차를 타고 63km나 되는 천안으로 달려갔다 뷴노한 딘소장은 "누가 평택에서 철수해도 좋다고했나"며 책상을 내리치면 소리질렀다


그러나 딘소장의 분노와 관계없이 평택안성은 7월 6일 북한군에의해 점령된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당장에 34연대를 되돌려 평택을 수복하라고하였지만 야간이라 적의 매복에 걸려들기 십상이라는 참모들의 제지로 딘장군은 내일 부대를 북진시켜 적과 교전하고 34연대는 금후 명령이 있을대가지 현위치를 고수하라고 명령하고 대전의 사령부로 복귀하였다

 

 


평택역에서 탄약을 하역하여 트럭에 실고 갈곶리로 향하려던 국군 17연대에 갑자기 호주공군기 4대가 나타나 폭격을 하여 화약을 적재하고 있던 화물열차가 폭팔하고 평택역과 인근 건물들이 파괴되고 많은 사상자들을 발생한다

육본에서는 흰천과 흰페인트로 아군임을 표시하라는 지령이 내려왔지만 그러한 표시는 아무나 할수있는것으로 효과는 없었다 미군은 아군임을 알려주는 특수한 조명탄을 사용하고있었는데 그러한 특수조명탄을 왜 군군에게는 제공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오폭이 1회에 그치지않고 계속된것으로보아 그들은 오폭에대해 별로 주의하지 않은것같다 어자피 상관없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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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오폭은 서울에서 후퇴하던 국군의 차량행렬과 피난민행렬에도 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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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전쟁터에서 생명의 가치가 인종, 국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는것만큼 비극적인것은 없을것이다

미군은 승객용열차와 차량으로 이동하고 한국군은 도보로 이동하거나 동물용으로보이는 화물칸에 빼곡히 쓸어담았다

더우기 저철도와 열차는 한반도인들이 건설하고 운영하는것이 아닌가

마치 영국지배하의 영국군과 인도군을 보는것같다

 

도보로 배치받은 오산 갈곶리로 이동하는 국군17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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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하는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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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이동하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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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로 대전에서 평택으로 이동하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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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로 평택으로 이동하는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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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는 6명의 북한군 병사들의 눈빛이 탱크의 철갑이라도 뚫을듯한 기세이다 미군이 이길수없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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