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국언론이나 중국의 개인적인 군사 블러거들은 조중연합군의 지휘권이 중국의 팽덕회장군이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맥아더가 추수감사절 공세 (1950.10.25부터 11.5까지 운산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한후 패전의 구실로 내세운것이 우리는 인민군에 패한것이 아니다 중국 백만대군의 인해전술에 패했다고 변명에서 나온것이고 한국의 북한 폄하와 중국의 중화주의가 작용하여 중국군 주력군설이 널리 퍼지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고 추수감사절 전투에서 미군을 청천강이남으로 밀어낸 주력은 인민군이었고 중국군은 운산전투에서 5만정도의 병력이 인민군에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중국군의 지휘권은 인민군총사령부가 가지고 있었고요 

 

이것은 인민군 김일대장이 조중연합군을 대표해서(인민군 3인 중국군 2인) 휴전회담을 진행한것으로 입증이 됩니다 휴전회담은 서로의 주력군과 하지 그지휘를 받는 부대와는 하지 않지요 그런 휴전회담은 무의미하니까요 그리고 당시 인민일보 보도와 맥아더 사령부의 전선현황발표로도 이를 명백히 증명할수있습니다

 

휴전회담 대표단은 인민군 3인 중국군2이고 남일이 조중연합군을 대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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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 1950.11.8 보도입니다

 

조선인민군이 최근 조선 서북부에서 작전중 중요한 승리를 쟁취했다 

이전투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인민군총사령부의 통일적 지휘하에 인민군과 하나가 되어 전투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참가하에 조선인민군은 온정 운산 일대에서 이승만괴뢰 2군단 4개사단과 미군을 압박하여 미침략군을 청천강 이남으로 몰아내었다 11.1-11.4까지 4일간 전투에서 불완전통계에 따르면 적 1480여명 사상,1800여명을 포로로 하였다- 조중연합군이 인민군 총사령부의 통일적 지휘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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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1.5자 맥아더 사령부의 전선발표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운산 온정 지구에서 유엔군은 중요한 전투를 하고있다

유엔군이 예기한것보다도 강한 적의 저항에 봉착한것만은 사실이며 적을 물리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할것으로 보인다


공산괴뢰군이 왜 그주력부대를 운산지구에 투입 공격하였는지 그의도는 아직 분명치않으며 그들의 병력도 지금은 알수없다


그러나 이지구의 적은 대체로 북한괴로군 제8, 제12, 제45, 제18등 각사단과 제 105및 제17기갑연대 그리고 제25및 제 26여단으로 인정된다


이들은 전부 북한 괴뢰군으로서 그총병력은 아직 알수없다 현재 적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는 통신및 보급선의 단축 병력증강 그리고 궤멸되었던 부대의 재편및 한낸한 기후이다 그리고 북한괴뢰군은 전쟁초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계속해서 압록강 건너로부터 보급을 받고 있다-이상

 

 

 

전쟁의 당사자인 맥아더 사령부는 적어도 자신이 누구와 전투를 하고있는지 알수있을것이고 맥아더사령부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북한군을 어느 사단이고 어느 여단 인지 특정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중국군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전투에 중국지원군이 참전을 했지만 중대단위로 인민군에 배속되었기때문에 독자적으로 작전하는 중국군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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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을 전반기 5차전투와 후반기 진지전으로 나눕니다

1차 운산전투와 2차 장진호전투가 끝난후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하여 모택동을 만납니다(위의 사진)


중국지원군에대한 김일성의 높은 평가를 듣고 모택동은 " 나는 줄곧 2가지 문제를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전장으로 보내는 우리 지원군이 과연 자기발로 일어서서 조선전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할수있을지와 현재의 낙후한 우리지원군의 무장으로 현대적인 장비를 갖춘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수행할수있을지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지원군은 미군과 전투를 수행할수있을뿐 아니라 능히 승리할수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의 내근심은 불필요한것이었습니다"


온갖 잡동사니 구식소총을 들고 압록강을 건네 보내며 모택동은 지원군의 존망을 염려했던것이고 (미국 일본 소련 유럽등 온갖 구식소총을 보유함) 그래서 모택동이 지원군을 보호하기위해 직접 인민군의 배속하에 전투를 치러야한다고 지시했던것입니다


김일성으로부터 용맹한 중국지원군은 충분히 홀로설수있다는 격려를 받고 두사람은 독립적으로 작전할수있는 중국지원군 사령부를 창설하기로 합의합니다 (이걸 한국언론이나 중화주의자들은 조중연합사령부라고 왜곡하는거임) 물론 스탈린과 협의가 되었고 스탈린이 현대적무기를 지원군에 보급하기로 하엿습니다


그래서 중국바이두에 항미원조를 검색해보면

1,2차 전투까지는 조선인민군에 협력하여 전투를 하였다고 나오지만 그이후의 전투에서는 조선인민군과 함께 또는 조선인민군과 어깨를 걸고 전투를 하였다고 나옵니다


중국지원군 총사령부는 팽덕회가 사령관을하고 인민군전선사령부 부사령관이었던 박일우가 부사령관을하였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전선에는 팽덕회를 수반으로하는 중국지원군사령부가 있었고 김책인가 장건X인가를 수반으로하는 인민군전선사령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민군 전선사령부는 전선과 후방 모든것을 총괄하는 인민군총사령부의 예하 조직이고 인민군총사령관은 김일성이었으므로 조직상 팽덕회의 중국지원군전선사령부도 인민군총사령부의 예하 조직이 되는것입니다 중국지원군은 장진호전투를 마치고 그때부터 김일성과 모택동의 허락하에 지원군사령부를 창설하여 홀로서기를 한것입니다

 


중국지원군의 무기는 갖가지소총과 수류탄, 박격포가 전부여서 중대단위 이상의 전투를 독자적으로 수행할수없어서 중대단위로 인민군에 배속된것이고 반면에 인민군은 맥아더 사령부가 " 북한군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며 현대적 장비로 무장한 잘훈련된 부대이다 적은 장비, 사기 모두 우수하며 전술운영능력이 뛰어나다 " 라고 평가할만큼 전투기 포병부대 전차기갑부대를 갖추고 소련사관학교에서 정통으로배운 현대전교리와 일본관동군과의 전투에서 습득한 유격전을 자유자재로 혼용하여 잔투를 수행하는 노련한 부대였습니다 그래서 모택동이 인민군을 믿고 중국군을 맡겼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