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개시일은 애초에 6월 5일로 정해졌으나 날씨 탓에 하루 연기됐다. 디데이(D-Day) 새벽에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안 5곳에서 동시에 작전을 개시했다. 유타와 오마하에는 미군, 골드와 소드에는 영국군, 주노에는 캐나다군이 각각 상륙했다. 이날 하루에만 15만6000명이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1만2000대의 항공기와 7000여 척의 함정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은 4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포함해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배경인 오마하 해변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3000명에 달하는 미군이 죽거나 다쳤다. 연합군은 끝내 독일군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하며 교두보를 확보했고, 두 달 뒤에는 파리가 수복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역전시켜 연합국이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