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터지고 보름쯤 뒤인 1950년 7월 11일. 전북 이리시 이리역 상공에 미국극동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2대가 나타났다. 당시 이리 지역은 전선도 아니었고, 적군의 징후도 없었다. 그러나 B-29는 이리역과 평화동 변전소 등에 폭탄을 퍼부었다. 느닷없는 폭격으로 이리역 철도 직원과 승객, 인근 주민 등 최소 91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 미공군 B-29의 이리역 오폭 사건 2달 뒤인 1950년 9월 16일 이리 철도 조차장을 폭격하는 미공군 B-26.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5일 앞두고 미 해병대 소속 F4U 전폭기가 인천 월미도 상공에 나타났다. 콜새르라고도 불리는 이 전폭기는 양 날개에 소이탄의 일종인 네이팜탄을 한 개씩 장착하고 있었다. F4U 편대는 월미도 촌락에 네이팜탄 등을 투하해 마을을 불태우고 집밖으로 뛰쳐나오는 주민들에게 기총소사까지 했다. 

지난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날 미 해병대 15항모전단 전폭기 총 33대가 월미도 동쪽 마을에 세 차례에 걸쳐 네이팜탄 95발을 퍼붓고 기관포까지 발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미군의 월미도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1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 1950년 9월, 미군 폭격으로 불타는 월미도.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1951년 1월 20일, 미국 공군 F-51 머스탱과 F-80 슈팅스타 전투기 10여 대가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곡계굴 일대를 네이팜탄으로 폭격했다. 당시 곡계굴에는 피난민과 인근 주민 300여 명이 전화를 피해 숨어있다가 네이팜탄 불길과 연기에 참변을 당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신원을 확인한 곡계굴 미군 폭격 민간인 희생자는 모두 167명이다. 피난 온 무연고 사망자를 포함하면 희생자는 36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 1951년 1월 20일 F-51 등 미공군 전투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내부에 대피해 있던 인근 주민과 피난민 등 300여 명이 사망한 충북 단양 곡계골 입구와 위령비.

 

이처럼 한국전쟁 기간에 미공군의 오폭 등으로 한반도 곳곳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는 한국전쟁기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규명해 달라는 신청이 모두 172건 접수된 바 있다. 이 가운데 미군 공중폭격 관련 사건이 120건으로 70%를 차지했다. 희생자 수로 보면 공중폭격 관련 비율이 훨씬 높아 진다. 신고된 전체 희생자 5천여 명 가운데 무려 90%인 4천8백여 명이 미공군 폭격 관련 사망자였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안병욱 교수는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6.25 전쟁 때 발생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의 경우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이 전체 발생 사건의 5-10%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조사 신청이 안 돼 조사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영상자료 열람실에서 한국전 당시 미공군 폭격 영상 기록을 열람, 수집하는 뉴스타파 취재진

 

뉴스타파는 지난해부터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 양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금까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당시 미공군 작전 영상기록을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에서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미군이 직접 촬영한 폭격 영상 46건, 7시간 분량을 발굴했다. 대부분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들이다. 

취재진은 이 영상을 분석해서 한국전쟁 때 미공군이 군사적 목표물뿐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역 등에도 무차별 폭격을 가한 사실을 생생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 공군은 전쟁 초기에는 군사 목표를 정밀타격하는 ‘전술폭격’ 정책을 취했다. 하지만 1950년 11월부터 맥아더의 지시에 따라 군사적 목표뿐 아니라 대도시를 무차별 융단폭격해 초토화시키는 ‘전술폭격’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미공군은 이른바 싹쓸이 폭격에 가장 효과적인 소이탄의 일종인 네이팜탄을 마구잡이로 활용했다. 미군이 한국전쟁 3년간 한반도에 투하한 네이팜탄은 32,357톤에 이른다. 

 

▲ 미공군이 한국전쟁 작전 중 소이탄인 네이팜탄을 투하하는 장면 출처 :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뉴스타파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그동안 수집한 미공군 폭격 영상을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美 공군 폭격 '초토화 작전' >에 담아 공개한다. 전쟁 초기 월미도 모습에서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인 1953년 7월 27일 밤, 마지막 출격 영상까지 담았다. 또 미국의 초토화 작전으로 주요 도시가 대부분 80-90% 파괴되는 경험을 겪은 북한의 트라우마가 북한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