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나에게 양보하는 것에 대해 상대가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가 한 걸음 물러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물러선 것은 다만, 그 사람이 나와의 싸움에서 질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우선은 한 걸음 양보한 자세로 사람을 대하곤 한다. 그랬을 땐, 상대방은 단지 고마운 마음이나 오히려 자신이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나도 나를 잘 몰라서 정확히 그렇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어찌되었든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물러섰음을 인식하고 최소한의 양심으로 내가 더 물러서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 아닐까?

나는 상대방이 내가 물러선 것을 인지는 커녕 관심도 없는 태도를 취할 때 화가 많이 나고, 그럴 땐 물러선 한 걸음을 이용해 다섯걸음 내달려 상대방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으로 인해 친구나 동료를 잃은 적은 있으나, 그 결과가 내게 어떤식의 피해가 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 피해가 곧 회복되고, 더 큰 기회로 다가오곤 했다.

내 삶은 그래서인지 항상 단조롭지 못하고 평온과 격랑을 반복하며, 하루 하루 인상 깊은 나날들을 살아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난 어떤 나보다 어렸던 이는 자신에 대해 좋은 의미로 "너는 정말 착한 것 같다."라는 표현에 분노를 표출했었다.

왜일까? 착하다는 것이 자칫 멍청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나는 정말 많이 당황했고, 본의가 의심받는 상황에 대해 낙담했었다.

착하다는 의미가 멍청하다는 의미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날, 어느 순간, 착하던 사람이 벼락같이 화를 내고, 온갖 논리로써 자신을 공격해 온다면, 당신은 아마 그 착하디 착한 사람의 호의를 호의가 아닌 멍청한 생각으로 치부하고, 단지 당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런 당신과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했으며, 자신의 호의에 대한 악의에 대해 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상대를 모르지만, 그 착한 사람은 당신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 착했던 사람이 필요 없을 것이고, 그 관계가 청산된다한들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착한 사람은 이미 당신의 그 마음을 알고 있으며, 그런 당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길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지워진다는 것. 그렇게 하나 하나 지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아닐까?

당신은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고,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런 관계적 결과를 보았을 때, 정말로 멍청한 사람은 바로 당신인 것이고, 당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들 그래도 괜찮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누군가와 거래 후 하자로 인해 최대한 양보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는 이에게 원래 받으려 했던 것의 10배를 받아낸 어느날......... 그 일을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