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일기 (산밤, 은행, 과수원 배)

2013 src

날씨가 하 좋아

점심시간을 넉넉히 잡아

엊그제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가

고향의 나날을 걷습니다.

마을들은 모두가

가을볕 아래 깊어 깊어

가을 구만리까지

가을입니다.

2013 src

채마밭이며

하다못해 담장의 갈꽃까지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2013 src

마을 안길 골목쟁이를

고요히 걸어가는 시골살이 행복을

이렇게 가슴 가득 안아 걷는

이 마음안의 행복됨의

짧게 스쳐갈 가을을

한껏 가슴으로

안습니다.

2013 src 2013 src

걷다가 토담 아래 쉬고

다시 걷다가 대문께 따다놓으신 호박 곁에 쉬고

가을볕이 좋아 자꾸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걷다가 쉬고..

2013 src

낡아가는 바람벽으로

쏟아지는 가을볕

윗쪽 지붕으로

눈부십니다.

2013 src

담장 넘어에 빨래가 마르고

갈꽃으로 나비가 나닐고

벌들이 날아와 한나절을 노닐다 가는

고향집 담장.

2013 src

가을은 깊어

호박덩이 세월로

고향은

늙어 늙어갑니다.

2013 src

변소간.

초가지붕은 아니지만

삭은 슬레이트 지붕에 앉은

가을볕도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2013 src

삽작거리.

흙바람벽 고향집에서

할아부지께서 걸어나오시고

할머니 건너마을로 마실가시고

아부지 주막거리 나가시고

엄니 밭으로 나가시던

고향집 삽작거리.

2013 src

바람벽.

정겹던

바람벽 아래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다시 걸어갑니다.

2013 src

대문 안길.

조부모님

부모님 생각에

아쉬움으로 뒤를 돌아다 보며 보며

또 돌아다 보며 걷습니다.

2013 src

고향 안길에서 만난

고향의 인심.

다 쓰러져가는 집을 뭐하러 사진을 박는데유?

옛날 생각나게스리 흙벽돌이 보이길래유.

이 산밤 좀 가져다 삶아 자셔봐유.

애써 주우신 밤을 저를 주시믄 우짠데유.

영감은 치매드셔서 아무 소용없구 낭구하다 주웠시유.

그래도 이리 어찌 받는데유.

벌거지가 좀 먹었지만 알이 실해유.

야.. 고마워유.

2013 src

뒷곁.

올해는

감 흉년으로 열리지 않고

그냥 건너뛰는 해라서

기껏 감 너댓개 매단

감나무입니다.

2013 src

은행나무.

은행은 주저리 주저리

길바닥으로 후두둑, 지천으로 밟힙니다.

냄새가 고약스러워

아무도 줍지를 않습니다.

2013 src 2013 src

안길.

고즈넉한

고향 안길을 또 걸어갑니다.

2013 src

빈 집.

가을이면 저렇게

고향을 버리고 떠나간 자리가

더욱 쓸쓸합니다.

마당으로 가득한 풀이며

무너진 담장.

처연스레 쏟아지는

가을볕.

2013 src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이들 웃음소리 높아가던 고향집.

그 많던 형제들이 옹송거리는 안방으로

군불을 지피시던 어머니.

굴뚝으로만 남은

고향집.

2013 src

세월이 가고

또 가고

가고.

모두가 가고

가을만 혼자 남은

쓸쓸한 고향.

2013 src

그래도

가을은 높아

지붕을 타고 오릅니다.

2013 src

가을볕이

참 맑아서

눈이 부십니다.

2013 src

고물개로

곡식을 널어놓은

대문께를 지나가며

기웃거려봅니다.

2013 src

고향집은 쓸쓸해도

가을햇살 해맑갛게 내리쬐는 고향마을에서

날씨 한번 참 좋은 가을날입니다.

2013 src

고요로운

헛간 지붕에도

가을이 한창입니다.

2013 src

은행알이

탱글탱글 영글어

알알이 익어가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2013 src

마을 안길에서

한길로 나왔습니다.

오리들이 한가롭게 유영하는

저 풍경에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또 한참을 오리떼가 노니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사무실쪽으로

가늠을 잡아 걷습니다.

2013 src

언제나 건너다 보는

고향산천의 풍경이지만

정겹고 정답고

예쁩니다.

2013 src

사무실로 돌아와

호주머니 불룩한 산밤을

탁자 위에 쏟아놓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다시 그대가 그립다고 읊은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금방 다녀온 고향을 향한

짙은 향수를 느낍니다.

2013 src

갑자기

누가 부르는 소리에 내다보니

과수원 갑장이 봉지 배를 싣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여름내 사무실 창으로 내다보다가

새떼가 날아와 전신주에

과수원을 향해 나랩으로 앉으면

냅다 마당으로 나가

훠이!~ 훠! 이노무 자슥들이??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곤 하던 내가

참 고마웠다고 합니다.

이 가을

그 값을 하려고

배를 한 상자 그득히 담아왔습니다.

고향의 인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