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정권 초기
첫 공개하는 귀한 사진들

만일에 이승만이 없었다면 6.25때 미국이 참전해 대한민국을 구해 주었을까?
전 세계에서 초대대통령의 동상이 없는 국가는 대한민국뿐, 북한은 김일성동상이 5,000여개 된다는데...오늘의 대한민국을 외국인은 미스테리국이라 한다.



1945-46한국주둔 미군이 찍은사진들
아래 사진들은 미군종포토 저널리스트인Don O"Brien이 1945-46년 한국에

일본군
무장 해재를 위해 한국에 진주한 미군과 함께 한국으로 와서 찍은 사진들이다.
96505067_d0bb72b6c7
한국노인과 사진작가 O'Brien

316445847_291ae1fdd0_z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출발전 미통신대. 차앞 범퍼에 세워저 있는 도구는 찰조망을 자르는 장비.

유럽에서 기록사진을 촬영하든 미통신부대

(미군은 통신 부대가 기록 사진을 찍는 업무를 담딩한다)는 히틀러의 패망으로 배를 타고 58일간의 긴 항해 끝에 유럽의 반대쪽에 있는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일본이 항복을 하고 그해 9월 이들은 오키나와에서 배를 타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상륙하는 미군과 함께 인천에 상륙했다.

인천항에 도착한 기록사진 요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88335914_506c802219_z
악의가 없는 천사 같은 어린아이의 눈을 가진 이 노인이 정말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한강에서 배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평화로운 모습으로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92856553_e9e656e42a_z
핵폭탄 두발을 맞고 항복한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모습.

나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귀국을 했는지 항상 궁금했다. 해방직후, 아버님 친구도 일본에서 돌아왔으나 그들은 고위직에 있었는지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에서 내렸을 정도로 일본에서 잘 살았었다.

이야기는 1960년초, 아버님 친구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때 직접 그분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윗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옷을 입고 돌아왔는지 상상을 할수가 있게 되였다.

94098090_50ba887fa3_o
서울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모습

103940945_22412bcf2b
일본군 무장 해재를 위해 진주한 연합군 환영 행진. 이들이 신은 군화와 복장이 아마 일본군의 군복이 아닐가하는 추정을 해본다.

109454106_21fe04a41b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 이북에 진추한 소련군인들과 Don O'brien.

이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로 부터 6.25 전쟁 휴전후 이들이 저지른 만행을 정말 많이 들어서 이들이 나는 어릴때 괴물같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북한에 진주한 많은 소련군인들이 형무소에 같여 있든 죄수들도 섞여 있엇다는 사실을 나이들어 문서를 검색해서 알게 되였다. 평양에서 피난온 연세 많은 이웃으로 부터 소련어로 다와이(내놔), 호로쇼(좋다), 니엣(No)라는 말을 배울 정도였으니 수많은 소련군의 만행을 들으며 자랐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을 통칭해서 로스케로 불렀다.

4276927463_a08ea01620_z
사진작가 Don O'brien의 집차 앞에서 사진을 찍은 로스케.

내가 들은 소련군의 만행 한토막, 시계를 가져 보지 못했든 소련군은 길에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팔을 검사해서 차고 있는 시계를 모조리 뺏어서 자신의 양팔에 차고 다니다가 태엽을 감을지 몰라 작동하지 않는 시계는 버렸다고 했다.

3546709332_a8d8ed9cdb_z
밀기울이나 곡물 껍질로 만든 검은 빵을 가지고 다니며, 베개로 이용해 잠잘때 사용하다가 배가 고프면 비고 있는 검은 빵을 뜯어 먹으며, 영하 30도의 한 겨울에도 철길에서 철로를 베고 잠을 잔다는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모습.

군표(점령지에 주둔한 군대가 발행하는 돈으로 현지에서만 통용이 가능하다)를 찍어 들고 다니며 가위로 잘라 가며 사용한 소련군의 영향으로 북한 경제에 큰 혼돈을 주기까지 했다. 내가 상상했든 괴물의 모습 못지 않게 이들에게서 야비함과 잔인함 마져느껴진다.

3894782980_6efd2a8127
Don O'brien이 소련군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38선을 향해가다 철로에 서있는 일본군의 장갑으로 무장한 열차를 발견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상륙하는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장갑 열차의 모습이다.

3956478984_b1d01923c7_z
장갑열차를 끄는 장갑 증기기관차의 위용.

Lt
John R Hodge 미육군 중장. 남한을 통치하는 군정장관 하지 중장이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LoweringJapaneseFlag1945
일장기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미군

Surrender1945
중앙청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총독

2518556793_e3aeed9b2b
중앙청에 있는 행사장을 찍은 천연색 사진

111087982_e0d401139e
1946년 귀국한 이승만 대통령 환영행사

113882759_730ee6b10f_z
군정장관 하지 중장에게 화환을 증정하는 소녀들

113516319_5a03b4bd25_z
서울 근교에 있는 작은 기차역. 사진을 찍은 오브라인은 아름다운 역사에 매료 되였다고 했으나 서울근교 어디에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114578665_61ba24efe0_z
이승만 전 대통령 환영행사

116056855_9be5d6f224_z
36년간 일제의 만행에 지친 모습을 지난 노인

116945917_7a44ce0859_z
시가행진을 지켜보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내부모님 세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119572852_7c5e5dcdb0_z
담뱃대를 물고 구경하는 짚신을 신은 노인

120942921_3794ec2c16_z
연합군 환영 가두 행진을 하는 보이스카웃과 구경하는 시민들

122211766_924f6eb17b_z
강원도 동해안에서 찍은 사진에서 보이는 노인은 눈길에서 비록 집신을 신고, 여기저기 기은 두루마기를 입었으나, 이분의 눈에서 발산하는섬득할 정도로 무서운 눈빛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보이며, 일제에 압제에도 끄떡없이 버터낸 무서운 저항력을 간직한 기가 ?율망愎?

123409294_d9124dae75_z
서울의 시장

135088462_a73ed4392e_z
하지중장과 서있는 이한국인은 키가 미국인과 같다. 집회에서 통역을 하시는 모습은 아마 한국에서 그당시 미국유학을 다녀온 저명한 인사가 틀림없다.

하지 장군이 남긴 일화가 있다.

그 내용은 한국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자 장군은, 계란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해서 현실을 무시한(현실을 몰라서) 말로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회자되였든 말을 남겼다.

136090447_f9216ee398_z
눈길을 걷는 농부

136640677_9ec40eb2c2_z
한국 철도 종사자들 교육용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한강 철교를 촬영하는

오브라이엔

457868028_72fe1d590c_z
물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한국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이 보이는 이한장의 사진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공통 분모인 어떤 역경도 이겨내는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458207823_a1e387dc59_z
만 4년간 남태평양에서 운행했든 고물이 되여가는 C47 미군 수송기. 화물과 승객을 동시에 수송하는 이화물기는 한국에서 미군의 수송업무를 당당하기 위해 배치 되였다.

458677616_a0d5eeb34f_z
젊은 어머니와 자식

460571112_293e5882f6_z
부산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 객차. 회물칸을 개조해 승객을 운송했다.

466122509_6736391525_z
풍경

481340799_a6339de72c_z
사과를 승객들에게 파는 상인

483784259_bb2b8835aa_z
일본에서 귀국한 할머니와 손주

2227910275_310494966f_z
일본에서 귀국한 가족

968343944_be9d42f33e_z
절구질하는 소녀

1483164198_2c20ce1d47_z
똥짱군을 이용해 받에 인분을 뿌리는 농부. 이런 모습은 경기도 지방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나 볼수 있었든 모습이다.

114377539_1983ab5221_z
사진작가의 ?자를 타고 있는 농부

1525759209_bec3df646d_z
연합군 환영 현수막 걸린 건물 앞을 여유롭게 유유히 지나가는 마차 행렬.
광복후의 서울은 현재와 달리 일본 처럼 차량은 왼쪽 통행이었다.

1531948829_e40d32cf03_z
작가는 이사진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분하지 못했으나 내가 보는 사진속의 인물은 여자가 틀림없어 보인다.

2072133638_adc2fa0485_z
널뛰는 소녀들

2126398695_7165f68753_z
이노신사가 목에 걸치고 있는 털목도리는 개털 목도리가 틀림없다. 일제는 만주지방에 주둔한 왜병들의 겨울철 옷을 만들기 위해 묶여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길개를 잡을수 있는 권한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를 잡아 고기는 먹거나 팔고 가죽은 일본정부에

바쳤다.
개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겨울 목도리는 육이오 전쟁중에도 주로 만주지방에서 내려온 동포들이 많이들 사용했다.

2232960445_574e9b74f5_z
한국 언론 사진 가지들

2297101416_af2d9c5509_z
신탁통치 반대 격문

2298724540_77e0998418_z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는 알수 없으나 성조기를 든것으로 보아 미군환영 행사장 처럼 보인다.

2401997704_795346e9a9_z
행사장을 경비 하는 미군

2407036001_289aea5716_z
남대문과 전차

117844255_d66cd80551_z
서울의 홍등가. 영문으로 미군의 출입을 금지하는 팻말이 붇어있고 뒷쪽에 미군 헌병도 보인다.

2415540307_47262b39f6_z
작고한 배우 김승호의 영화 마부를 생각나게 하는 조랑말이 끄는 마차와 마부

2476232339_d293638416_z
어릴때 기억에 남는것 중의 하나가 인력거다. 서울 어디에서나 볼수 있었든 인력거, 어머님과 함께 타기도 했든 이인력거는 육이오 전쟁 수복후 서울로 돌아오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러 어린나에게 굼금중을 불러 일으겼었다.

2486043875_25bd93be91_z
보이 스카웃

4791613758_801a974de1_z
서울 시내 모습

2520887087_953bc1f442
이들의 모습으로 보아서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가족 처럼 보인다.

2522432574_1bdb535cea_z
과일을 팔고 있는 아낙들

2575393942_f462865cae_z
경복궁 경회루 지붕에 난 잡초를 보면 눈물이 날정도로 애처롭다. 일제는 조선인들만 고통을 준게 아니고 문화재까자 돌보지 않아 지붕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2688824661_e7020cc5bd_z
무슨 이유로 시가 행진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2738384858_e457648bb5_z
지붕으로 보아 일본인들이 두고간 부동산인 적산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 처럼 보인다.

3251929484_856a27766c_z
창덕궁 비원...

3345647736_ed3a9802e8_z
음식을 먹고 있는 두여인

3435760811_0d52637daf_z
모자

3539982370_ddd70df4d8_z
새로 조직한 국방 경비대

4216017315_544f53207c_z
인천에 서있는 증기 기관차

4233473301_7f264fd428_z
철도 전복 사고 현장

4254560499_582d578833_z
화재가 발생한 서울의 한 건물

4279469094_65cea2523f_z
일본군대가 남긴 파라슛을 점검해보는 사진작가

4325182337_75d4c7509d_z
시가행진을 구경하는 시민들

4325331819_b15047fba2_z
동대문 근처로 추정되는 건물과 전차

4484318764_ecc27e66e2_z
시내 전차

4793798426_9714de0a9d_z
물깃는 모습

4795065618_2f629b2c76_z
각반을찬 패잔 일본군 가장과 등짐을 진 그의 자식.

4909786983_1ca28c05d7_b
일본군의 무장해재를 하면서 미군이 접수한 군수품중 일본군의 99식 소총은 회수해서 한국국방 경비대가 사용했으나 그외 군수품의 행방은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 그 궁금증을 풀수있는 사진이 바로 김포비행장에 줄줄이 서있는 일본군 전투기다.

연합군이 Code Name Sonia로 불렀든 이전투기들은 Mitubishi K1-51 Type99 기종이다. 20여대로 보이는 이전투기들은 건국후 들여온 10대의 연습기 창랑호 보다 백배나 전투력을 갖춘 기종이다.

이전투기들 다 어디갔지?.
진주한 미군은 일본 열도와 한국내에 남은 일본군의 모든 전투기나 탱크와 각종무기는모조리 잘라내거나 아니면 불도저로 갈아뭉개 고철로 만들어 한대도 남기지 않았다.
이차대전후 나치 독일이 남긴 무기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장비는 미군이 연구용으로 선택된 몇개의 무기는 예외였다.

4806444444_4d0860f0df_z
동대문 밖으로 보이는 사진

4854993698_8a0dc1f110_z


4897349703_e7689d5d6a_z
삼척에 있는 한 탄관

4930655652_7d0b615cc4_z
미군이 접수한 마약.

아편으로 알려진 이마약은 일본이 한국인을 이용하기 위해 아편을 사용했다는 증거물로알려졌다.

아편까지 이용해 한국인을 착취한 이들에게 동일본 대지진때 의연금을 걷고 낸 한국인들, 그렇게 36년을 격고도 도와주면 독도문제 들고 나오지 않을것 처럼 믿엇든 한국인들 참 너무 순진하다. 좋은 일본 사람은 죽은 일본넘외에 없다는게 나의 믿음이다.

그당시 이런글 읽으면 아마 나를 보고 모진 사람이라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 또다시 대지진나면 정부에서 조금 도와주고 민간 차원의 모금이나 도움은 절대 없기를 바랄 뿐이다.

5155213289_f013d70d67_z
한국사진사들과 가깝게 지낸 작가와 한국 사진사들

5405163272_8ac613eae8_z
일본군의 각번을 차고 도끼질하는 이남성은 아마 일본군에 징집 되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5449323390_73fe55c3ce_z
나뭇짐진 노인

135657215_04a9996579
남산에 세워진 신사 앞에서 있는미군과 미군의 찝차 모습에서 조선이 해방 되였다는 사실을 읽을수 있고, 소녀가 신고있는 게다짝과 신사의 생생한 모습에서 일본이 남긴 잔재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가 있다.

사진의 신사가 있든 대지는 현재 도서관과 공연장으로 변했다. 원래 남산에는 두개의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사진에 보이는 남산위 신사와 현동국대 근처에 또다른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