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81495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76


이 사건은 저의 남편이이야기 입니다. 조선업에서 일을 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조선업에서 해고를 당하고 네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여러방면으로 직장을 구해보다 화물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화물업을 알아보다 아무런 연고지가 없는 먼 김포까지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가진돈이 없는지라 포기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그 물류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권하며 계속해서 남편에게 권유해왔습니다. 대출을 받아 일을 시작해야했지만 회사관계자의 사탕발림에 그만 넘어가 대출을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였고 하루에 2시간씩 겨우 자며 밤낮을 가지리 않고 일을 했습니다. 차에서 쪽잠을 자고 휴게실에서 세수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일을 했지만 돌아온 급여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달..세달을 버티다 생계가 힘들어진 남편은 결국 늪에 빠진것을 알고 
회사를 상대로 부당하고 억울한 입장을 적극 표명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말 목숨을 희생했습니다. 
한 가정의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다정한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유서를 남겨놓고 
한 손에는 두 아이와 저의 사진을 꼭 쥐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먹먹했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인도하기 위해 그 먼 김포로 올라갔습니다. 여기 부산은 아직 찬바람이 쌩쌩하지 않았지만 그 곳 김포는 살얼음판처럼 추웠습니다. 더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가족들 생각하며 제대로 두 발뻗고 잠한숨 제대로 못자며 못먹고 못씻어 가면 일했던 내 남편이 여기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 눈을 감았다는게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하지만 회사측으로부터 지금까지 제대로된 인사 한 번 못받았습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연락이 없던 회사를 상대로 제가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회사 대표란 사람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오기사가 죽던 그 날 업무가 마비되어 나도 손해를 보았다. 오기사에게 두 아이가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왜 아이들을 두고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정말 같은 아빠로써 이해가 안되면 짜증이난다. 경찰들이 와서 시신을 수습하던 그 현장에 나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도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다." 이런 말을 나에게 했습니다. 유가족에게 대표란 사람이 할 말인것인지. 
더이상 그 분과는 대화가 되질 않아 전화를 끊었습니다. 남편의 억울함을 꼭 풀어주고 싶습니다. 그 회사를 낱낱이 
조사하여 우리남편과 같은 억울함을 더이상 당하는 사람이 없길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