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환호성, 때론 마냥 침울한 장소. 프로야구 구단버스는 시시각각 온도가 변하는 공간이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는 곳. 하지만 선수들에겐 아늑한 자취방과도 같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의 구단버스를 탐방했다. 9월27일 스포츠조선 취재진이 구단의 양해를 얻어 서울 원정숙소인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잠실구장까지 가는 구단버스에 동승했다. 비록 짧은 거리였지만, 구단버스에 취재와 사진 기자가 동승한 건 처음이라고 팀 관계자가 귀띔했다. 잠실구장 도착 후부터는 경기 시작 이후까지 1, 2호차를 번갈아 드나들며 팬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구단버스내의 일상을 샅샅이 지켜봤다.

 ▶PM 2:02 숙소 출발

 오후 1시40분쯤 삼성 원정숙소에 도착했다. 대당 1억5000만원짜리 리무진 구단버스 2대가 리베라호텔 앞에 정차돼 있었다. 1시50분쯤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속속 버스에 올라탔다.

 취재진은 2호차에 올랐다. 27인승 버스 2대가 움직이니 빈 좌석이 많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겨우 한 자리를 얻어 앉았는데 아차 싶었다.

 어째 공기가 안 좋다. 평소 선수들과 친분이 깊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불청객이 돼버렸다. 모두 시선을 피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저멀리 박석민이 음악을 들으며 멀뚱멀뚱 있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피해 버린다. 이거 계속 이러면 안 되는데....

 오후 2시2분, 드디어 2호차가 움직인다. 1호차에는 감독과 투수, 타격, 배터리코치가 탄다. 주로 해당 파트 선수들이 동승한다. 2호차에는 수석과 수비, 주루코치와 내외야수들이 탄다.

 구장으로 향하는 버스내에서 선수들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한대화 코치는 "호텔에서 미팅을 미리 하기 때문에 버스 안에선 그냥 멍하니 있게 된다"고 말했다. 류중일 코치는 이동하는 동안 잠실구장에 원정 라커룸 시설이 열악해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PM 2:24 잠실구장 도착

 이날 삼성이 두산에 이기고, 부산에서 한화가 롯데에 지면 삼성은 4위를 확정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2호차가 강남 사거리의 정체에 걸려있을 때, 구단 운영팀 직원이 한대화 수석코치에게 묻는다. "코치님, 만약 오늘 우리가 먼저 이기면 한화쪽이 끝날 때까지 잠시 운동장에서 대기할 수 있을까요?"

 한대화 코치는 "생각해봅시다"라고 답한다. 4위를 확정지으면 간단한 축하 행사를 하려는 구단의 계획을 알린 것이다. 모든 상황을 다 가정해야 하는 구단 운영팀 직원과, 동선을 되도록 방해받지 않으려는 선수단은 친하면서도 항상 약간의 긴장관계다.

 선수들은 버스가 잠실구장 1번 게이트 앞쪽에 정차하는 순간, 말없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 30여명이 선수들을 반겼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제서야 선수들이 조금씩 웃으며 아는체를 한다. 박진만은 "본래 야구장 갈 때는 그래요. 절처럼 고요하게"라고 말했다. 양준혁도 "그럼 그 타이밍에 웃고 떠들 일이 뭐 있겠어"라고 거들었다.

 ▶PM 3:40 1호차 내부

 선수들은 경기 한시간 전인 오후 4시쯤 원정버스를 다시 찾는다. 2호차를 4년간 운전한 정성일 기사는 "경기 한시간 전쯤 차에 와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세탁물을 놓고 가고, 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몰려오기엔 조금 이른 오후 3시40분. 이번엔 1호차에 올랐다. 투수 두 명만 있다. 안지만과 윤성환이다.

 1호차 뒤쪽 좌석에 이날 선발투수인 윤성환이 이어폰을 꽂은 채 잠에 취해 있다.

 전날 많이 던져 대기조에서 빠진 중간계투 안지만은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다. 혹시나 선발투수가 깰까 조심하며 안지만과 몇마디를 나눠봤다.

 "버스가 숙소같은 느낌인가"라는 질문에 안지만은 "쉴 데가 마땅히 없으니까"라면서 "여기서 쉬다가 애국가 울릴 때 다 나가서 대기합니다"라고 설명했다.

 3시50분쯤 버스 뒤편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윤성환이 "우~웅" 기지개를 펴면서 깼다. 버스 도착후에도 1시간20분이 넘게 잔 셈이다. 윤성환은 "미리 나가면 길게 있어 (몸이) 처지니까, 버스에서 자는 게 버릇이 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PM 4:00 올 때와 달리 시끌벅적한 2호차

 이번엔 다시 2호차. 어느새 버스 내부는 에어컨 바람으로 상당히 시원해져 있었다. 박진만 박한이 현재윤 등 야수들이 젖은 유니폼을 새것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야구장 올때의 정적만 흐르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앗, 카메라다", "나의 모습, 보여줄 수 없어!", "야구선수 몸매가 모두 이런 줄 알면 안돼", "조금 있다가 몸 좋은 애들 오면 찍어요!" 아주 난리다. 밖에서 보면 새까만 유리창이니 다들 안심하고 훌떡훌떡 벗는다. 땀흘리고 난 뒤에 시원하고 아늑한 곳에 돌아오니 다들 유쾌한듯 장난기가 넘친다.

 박진만은 언더셔츠를 거꾸로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어깨쪽 솔기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옷 거꾸로 입었다"고 지적해주자 박진만은 "아님. 징크스임" 하면서 웃었다. "언더셔츠의 미싱 자국이 밖으로 있어야 볼을 던질 때 (겉 유니폼에) 탁탁 걸리는 느낌이 있다"면서 "징크스라기 보다는 뭔가 세밀한 느낌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린 언제 생방송 보나

 잠시 버스 밖에 나왔는데 차 안에서 "푸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다시 들어가보니, 외야수 박한이였다. 운전석 위에 달린 평면 TV에선 SBS 버라이어티 '패밀리가 떴다'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박한이가 밝힌 구단버스의 법칙. 장거리 이동 때는 고참일수록 뒤에 앉는다. 반대로 원정구장에 와서 차를 대놓고 그 안에서 쉴 때는 고참이 앞좌석에 자리잡는다. TV를 보기 위해서다.

 박한이는 "선수들은 TV 프로그램을 제 시각에 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 주로 이 시간에 재방송을 조금씩 보는데 어떨 땐 1년 전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본다"고 말했다.

 ▶PM 4:30 1호차 지킴이는 마무리투수

 다시 1호차로 옮겼다. 오승환과 선배인 이상목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 때문에 다쳤잖어"(이상목) "왜 저 때문입니까"(오승환) "어제 스트레칭하다가 니 말 때문에 너무 웃어서 옆구리에 담이 왔잖어 인마."(이상목)

 원래 이상목은 27일 선발로 거론됐는데, 전날 잠실구장 외야 스트레칭 때 갑자기 근육통이 생겨 선발이 28일로 미뤄졌다. 잠시후 오승환이 정색을 하면서 "선배님, 저 덕분에 하루 늦어져서 잘 될 겁니다"라며 웃었다. 선배도 피식 웃는다.

 뽀송뽀송한 유니폼으로 싹 갈아입은 안지만이 다른 투수들과 함께 하차했다. 때마침 1호차 곁으로 100여명의 군인들이 지나가다가 "삼성 파이팅!" 하고 외쳤다. 안지만은 "군대 파이팅!" 하고 답했다.

 잠시후 5시. 경기가 시작되자 구장 안쪽에선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다음날 선발투수인 이상목도 5시가 조금 넘자 야구장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버스에 남은 선수는 오승환 뿐이었다. 오승환은 "마무리투수도 보통 경기 시작하면 덕아웃으로 가는데 오늘은 날이 쌀쌀하기 때문에 4,5회쯤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후기

 이날 삼성이 이기면, 야구장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에 다시 한번 동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0대5로 두산에 완패했다. 같은 시각 부산에선 한화가 롯데에 리드하고 있던 상황이라 삼성의 4위 수성에도 먹구름이 끼려는 분위기였다.

 오후 8시. 되돌아가는 버스에 탑승하는 건 포기했다.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돌아가는 버스는 공기가 다르다"던 한대화 코치의 말이 기억났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날 삼성 버스에선 "앗~싸, 땡큐" 하는 감탄사가 터졌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기 직전에 한화가 롯데에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삼성은 이튿날인 28일 두산에 10대9로 승리하고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 김남형 기자 scblog.chosun.com/star2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