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주(貞懿公主, ?∼1477)는 세종이 즉위 전에 출생하였으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오빠 문종(文宗)이 1414년(태종 14)에 출생하였고, 동생 세조(世祖)가 1417년(태종 17)에 태어난 사실에 비추어 1415년(태종 15)에서1416년(태종 16)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1428년(세종 10)에 정의공주(貞懿公主)에 봉해졌고, 안맹담(安孟聃)과 가례(嘉禮)를 치렀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1428년(세종 10)에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가 1432년(세종 14)에 연창위(延昌尉)로 개봉되었다.
정의공주는 연창위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안여달(安如獺)·안온천(安溫泉)·안상계(安桑鷄)·안빈세(安貧世)이고, 1녀는 정광조(鄭光祖)의 부인, 2녀는 한치례(韓致禮)의 부인이다. 한치례는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아들로, 덕종비 소혜왕후의 동생이다. 1462년(세조 8) 12월에 연창위가 사망하자 2남 안온천이 시묘살이 중 22세로 졸하였고, 1477년(성종 8) 2월에 정의공주가 사망하자 4남 안빈세도 시묘살이 중 32세로 사망하였다.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웠는데, 역산(曆算)에 능하였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이 잘 풀리지 않아 여러 대군들과 공주에게 풀어보도록 하였는데, 공주가 이를 풀어 세종의 칭찬을 듣고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세종이 창제된 훈민정음을 공주에게 주어 민간에서 시험해 보도록 하자, 공주는 그 결과를 세종께 바쳤다고 전해진다.
정의공주는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 연창위 안맹담과 함께 세종 승하 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文殊寺)를 중창하였다. 안맹담도 평소 불경을 읽고, 살생을 싫어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는 등 공주 부부는 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공주는 1469년(예종 1)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죽은 연창위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정의공주 간행 『지장보살본원경』은 보물 제96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