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참담한 추락,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건가?

     

  참담하다. 정말 참담하다. 어제와 그제 연이틀 온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 농락 뉴스를 보면서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끔찍하고 비참하다.

     

  그런데 이 참혹한 기분은 단지 최순실 개인이 청와대와 국정을 농락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종편이었는데!

  이젠 우리가, KBS의 수백 명 기자들이 ‘오늘은 종편 뉴스에 무엇이 나올까?’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버렸고,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도 잊었다.

     

  고대영 사장과 그 추종자들에게 묻는다. 이제 속이 시원한가? 지난 수년 간 청와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숨기고, 모른 체하고, 무시하다 마지못해 면피하기·물타기’로 일관해 온 그대들만의 ‘언론 자유’, 그대들만의 ‘공정 방송’이 가져온 작금의 결과에 만족하는가?

     

  ‘최순실’ 이름이 처음 언론에 거론된 지난 9월20일, 보도 편집회의에 실무자 대표로 참석한 기자협회장이 왜 이 문제를 뉴스로 다룰지 의논조차 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정지환 보도국장 등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 뭐가 맞다는 거지?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라며 묵살했다.

     

  10월5일 열린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는 ‘최순실’ 비리 의혹에 대한 전담TF를 구성하고 심층 취재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노측에 대해 보도본부장은 특정 정치 세력의 정략적 공세에 불과하다고 답변하며 T/F 구성 요구를 일축했다. “뉴스가 많은데 왜 꼭 야당이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하는 의혹을 국민적 의혹이라고 단정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니까 T/F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동의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처럼 ‘최순실’ 사건에 대해 남 일처럼 방관하고 이른바 ‘쉴드’를 쳐온 보도책임자들은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한 뒤인 지난 20일에서야-최순실 의혹이 거론된 지 한 달만에- 처음 ‘최순실’ 사건과 관련한 KBS만의 독자적인 취재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단독 인터뷰’와 같은 특종을 요구하는 ‘뻔뻔함’마저 내비쳤다. 그리고는 어제와 그제,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 얘기가 나올 만큼 종편과 신문이 결정타를 날린 뒤에야 KBS 보도책임자들은 오늘 아침 허겁지겁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그래놓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는 보도본부장의 당부는 무능함인가? 뻔뻔함인가? 아니면 교활함인가?

     

  이제 됐다. KBS는 저잣거리의 안주로 전락했고, KBS 기자들은 손가락만 빨며 종편 기자들에게 귀동냥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임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작금의 상황은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 얘기까지 나오는 ‘비상사태’다.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첫째,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라! 그것만이 KBS 보도본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고, 땅에 떨어진 후배들의 사기를 그나마 추스를 수 있는 길이다.

     

  둘째, 당장 ‘최순실 국정 농락’과 관련한 특집 다큐와 토론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편성하라! 우리의 취재 내용과 자료가 부족하면 앞서 취재한 외부 언론인들을 섭외해서라도 국민에게 자세하고 충분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셋째, 뉴스 편집에 취재·제작 실무자 측의 의견을 적어도 한, 두 건은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소수의 간부들이 하루종일 책상에만 앉아 모든 뉴스의 편집과 유통을 독점해서는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

     

  넷째,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의견 대립으로 결론을 맺지 못한 안건들을 조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 기구’를 노사 합의로 만들어라!

     

  이건 단순한 요구가 아니다. KBS의 위상이 땅바닥을 뚫고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작금의 사태 속에서 사측에 제시하는 진지한 제안이며 해결책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기자와 PD등 조합원이자 KBS 구성원들에게도 촉구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정말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기검열에 빠져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자! 그리고 제작 현장에서부터 당당하게 요구하고 싸워나가자!

     

    

2016년 10월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