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기체에 의한 최악의 항공기참사 ... 520명 사망한 일본항공  JL 123편 

 

1985년8월12일, 일본항공의 JA8119 점보기가 하네다공항에 착륙하였다. 기종은 국내선수요가 많은 일본항공사의 요청에 의해 보잉사가 B747-100기종을 국내선전용으로 만든 B747SR(Short Range)으로 이날도 아침부터 사뽀로와 후쿠오카를 다녀오는 길이다.

 

< 1985년 8월12일 추락한 일본항공 JA8119기의 손상된 모습가상도>

   - 이미지출처 : http://en.wikipedia.org

 

JA8119편은 이날 마지막 일정인 JL123편으로 승무원 15명을 포함한 524명의 탑승객을 태우고 18시12분 도쿄의 하네다공항을 이륙하였다. 이륙 후 300노트(약 550km/h)의 속력으로 고도 23900피트에 이를 때 갑자기 기체가 떨리고 충격이 전해지면서 기체가 통제불능에 빠지게 되었다. 기장은 긴급사태임을 느끼고 도쿄에 회항하려고 하였으나 기체는 이미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시작하였다. 객실도 R5비상구에 균열이 오고 객실기압이 떨어져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비상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 통제불능에 빠진 JL123편의 추락항로 >

- 이미지출처 : http://www.airdisaster.com/special/jl123_5.jpg

 

조종석에서의 조작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지만 조종석에서는 기체 밖을 볼 수가 없어서 정확한 상황판단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조종사는 하네다공항의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사고기를 하네다공항으로 유도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통제불능에 빠져 엔진의 추력에 의존하여 곡예비행하듯 날아다니다 18시56분 이륙한지 불과 40분 만에 오수타카산 능선에 추락하여 4명의 생존자를 남기고 탑승객 520명이 사망하여 단일기체로는 가장 최악의 사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 사고기 JA8119 B747SR기가 손상받은 부위 >

  - 자료출처 : 일본운수성항공사고조사보고서 (일본항공 JL123편)

  

추락원인은 7년전 수리한 부분의 결함 ...... 금속도 피로를 느낀다.

 

추락한 사고기체를 조사하여 밝혀낸 사고의 원인은 객실 뒤의 압력격벽에 (pressure bulkhead)균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압력격벽은 4만피트의 고공에서도 객실의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벽으로 객실의 맨 뒷 쪽에 설치되어 있다.  압력격벽이 찢겨져 이탈되면서 동체후미의 tailcone 손상을 입고 유압시스템이 파괴되었고 수평꼬리날개와 수직꼬리날개를 손상시켜 elevator, ailerons, rudder 등의 조향장치들이 작동불능에 빠진 것이다.  

 

JAL123-747-tailstrike.gif

< 사고기가 1978년 오사카공항에 착륙할 때의 사고상상도 >

  - Tailstrike : 바퀴보다 동체가 먼저 땅에 닿아 끌려가는 현상

  - 자료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747-tailstrike.gif 

 

< Pressure Bulkhea에 균열이 오면서 찢겨지고 뒤의 유압시스템을 치고 나가 파손되었다. >

   - 이미지출처 : http://shippai.sjt.go.jp/en/Search

 

이 사고기는 7년 전에 오사카공항에 착륙하면서 tailstruck(동체후미가 활주로에 끌리는 현상)를 일으켜 동체후미의 하부와 압력격벽을 보잉기술진에 의해 수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채택한 수리방법에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에 압력격벽을 수리하면서 손상된 부분을 새로운 판넬로 막는데 한 장이 아닌 두 장의 판넬을 막아 연결부분이 압력을 많이 받아 쉽게 금속피로도가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금속피로도는 단순한 내구연한이 문제가 아니라 주변 상황에 의한 물리적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힌디.

 

< 왼쪽 : 올바른 수리방법    오른쪽 : JA8199기의 잘못된 수리방법 > 

   - 자료출처 : 일본운수성항공사고조사보고서

 

즉 지상에서는 압력격벽의 앞쪽(객실)가 뒤쪽(동체후미)이 모두 지상과 같은 기압이지만 고공을 순항중일 때는 객실 안쪽은 지상에서 보다 약간 낮은 반면 격벽의 밖은 크게 낮아져서 압력격벽에 기해지는 압력의 차이가 커져 이착륙할 때 마다 압력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되어 아무리 강한 금속이라도 균열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장거리비행을 하는 경우 보다는 이착륙 회수가 많은 단거리비행을 하는 경우 발생할 확율이 높다고 한다. 결국은 1978년에 JA8119기의 Tailstruck 사고 후 수리를 맡았던 보잉사가 사고책임을 상당부분 안게 되었다고 한다.

 

 

JL123편 점보기 추락사고와 닮은꼴 ... 중화항공 CI611편 점보기

 

그런데 이와 너무나 닮은 사고가 17년 후에 중화항공에서도 발생하게 된다. 2002년5월25일 15시06분 타이베이공항을 이륙한 중화항공의 CI611편 B747-200기(등록번호 B-18255)가 이륙한지 불과 20분 만인 15시28분 쯤에 레이다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고기 B-18255기는 1979년6월에 제작된 것으로 총비행시간이 64,810시간, 비행회수는 21398회로 23년 가까이 된 기체였지만 최근에 받은 정기점검에 아무 지적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중화항공 CI611편은 이륙 35000피트 상공에 이르기 까지 두 차례 정도 관제탑과 교신이 있었지만 그때 까지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CI가 사고를 당한 시점에 주변을 비행하던 CX항공기에서 CI611편의 응읍위치표지(Emergency locatoins Indicator)의 신호를 받았다고 전해질 뿐이다. 이번 사고는 관제탑에서 전혀 CI611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직후 테터, 공중납치, 공중충돌, 기체결함 등을 포함한 여러 가정이 나돌았다. 그중에는 중국의 미사일에 피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중국정부는 이를 정식으로 부인학고 타이완측의 구조작업에 협조하게 되었다. 

  

< 사고해역에서 수거된 CI611편 사고기의 일부 : 조종석(좌)과 동체끝부분(우) >

  - 사진출처 : 대만飛航安全委員會 사고조사보고서

 

사고 후 구조상황을 정리하면 시신을 확보한 225명의 희생자중에서 신원이 밝혀진 승객은 175명이었다고 한다. 동체도 조종석이나 날개 등 약 15% 정도 회수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뒷좌석에 앉았던 승객들은 대부분 옷이 벗겨졌거나 짲어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체가 뒤쪽에서 공중분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가 된다. 화재는 없었던 듯 기내잡지 및 서류, 승객들의 가방, 사진, 심지어는 대만달러 까지 사고지점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중화항공 B-18555기도 22년전 일본항공 JA8119기와 똑같은 사고로 수리 ...... 

 

그런데 사고기도 일본항공 JA8119기와 마찬가지로 22년 전인 1980년 2월에 홍콩의 카이탁공항에 착륙하다 tail strike를 일으켜 동체 하부를 수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 기체는 객실내 기압을 유지할 수 없어서 승객을 태우지 않고 (ferry flight) 당일에 타이베이로 돌아와 다음 날 임시조치를 취하고 3달 후인 1980년5월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기술진에 의해 정식으로 수리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이때는 일본항공의 JA8119기 사고가 발생하기 전. 압력격벽이 금속피로도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고 밝혀지기 전이었다.

 

< 중화항공 점보기가 홍콩공항 착륙할때 손상된 부분 > 

  - 사진출처 : 대만飛航安全委員會 사고조사보고서

 

중화항공 점보기도 수리부분에 문제가 있어 금속피로현상이 생겨 추락한 것까지 일본항공 점보기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B-18255기가 tailstrike로 손상받은 부위는 동체 후면의 아랫쪽이었다. 당시 홍콩공항의 보잉관계자는 홍콩에서 초기점검을 받을 것을 권했으나 중화항공은 사고기를 승객을 탑승시키지 않은채 타이베이로 귀환시켜 다음날 밤을 세워 응급조치를 하였다. 그리고 석달 후인 1980년5월23일 부터 26일 까지 중화항공 자체기술진에 의해 최종수리작업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기는 보잉이 규정한 SRM(Structure Repair Manual)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고 그것이 사고기가 공중분해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CI611편 사고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22년전 기체수리작업에 관한 문서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사고기의 로그북과 당시 수리작업에 관여했던 책임자의 증언에 의하면 중화항공기술진과 보잉측 사이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벍혀졌다, 중화항공측은 tailstrike 사고부위의 수리작업을 minor repair에 속한다고 판단하여 자체기술팀이 보잉구조수리규범(Structure Repair Manual)에 따라 수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거해야 하는 부위가 커서 어려움이 따르자 보잉의 현지서비스팀 FSR(Field Service Representative)한테 훼손부위를 제거하고 새로운 조각으로 교체하는 SRM에 제시된 방법 대신 그 위를 덮어 씌우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중화항공기술팀은 보잉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보잉측이 자신들이 제시한 방법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헤손된 부위를 절단하지 않고 그 위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수리한 것이다. 그러나 보잉측은 당시에 중화항공측으로부터 그런 자문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결국은 tailstrike로 수리한 부분이 metal fatigue에 의해 기체에 균열이 오기 시작하였고 사고기가 순항고도인 35,000피트에 도달하기 직전 동체후미부터 갈라져서 공중분해된 것이라고 한다.  

    

최초의 제트여객기추락사고원인도 객실창문틀의 metal fatigue가 원인

 

제트여객기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보잉사의 B707기와 더글라스사의 DC-8이지만, 세계최초의 제트여객기는 영국의 Comet기였다. Comet기가 보잉 B707이나 DC-8처럼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초기에 데서양에 추락한 사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는데 그때 추락사고의 원인도 지상과 3만피트 상공의 온도나 기압 등의 물리적인 환경을 이겨내지 못한 metal fatigue 현상이 객실창문의 구석부분에서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화항공 점보기 추락사고에 안도의 한 숨을 쉰 사람은 ?


중화항공 CI611편 보잉 B747-200기의 사고소식이 전해지자 태국의 저가항공사 오리엔트타이항공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큰 한 숨을 쉬었다. 중화항공 사고기는 사고당일 홍콩왕복이 중화항공으로서의 마지막 비행으로 홍콩에서 귀환하면 태국의 오리엔트타이항공에 $1.45백만달러(약 16억원)에 팔려가기로 하였다고 한다. 태국 오리엔트타이항공은 중고 점보기를 도입하여 인천 및 홍콩노선과 전세기위주로 영업하는 태국의 항공사인데 일본항공이 사용하던 점보기를 가장 많이 도입한 항공사였다. 

 

 < 일본항공 JA8166기가 태국 오리엔트타이항공으로 매각되어 HS-UTV로 등록되어 도장준비를 하고 있다. >

  - 2010년5월30일 방콕 수완나붐공항 촬영   

 

참고문헌 :

JAL JL123편 :  일본운수성항공사고조사보고서 

                       - http://www.mlit.go.jp/jtsb/eng-air_report/JA8119.pdf

CAL CI611편 : 대만飛航安全委員會사고조사보고서

                      -  http://www.asc.gov.tw/downfile/CI611_Report_English_VOL_1.pdf

* 출처 = 김동주원장의 여행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