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의 마지막 주말 인천에 위치한 대한항공 운항훈련원을 찾았다. 대한항공 운항훈련원은 국내 최대의 항공기 시뮬레이션 훈련소로 연간 2,400명의 대한항공 소속 현역 조종사들이 교육을 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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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운항훈련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83년으로 민간 항공사로는 최초로 B747-200 항공기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화제가 됐었다.

이후 양적 질적 발전을 거듭한 대한항공 운항훈련원은 현재 B777-200 시뮬레이터(1대)를 포함해 B747-400(2대), B737-800(1대), B737-900(1대), A330(1대), A360(1대) 등 총 7대의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시뮬레이터의 대당 가격은 대략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 선으로 실제 항공기의 10분의1 수준이다. 시뮬레이션 훈련은 말 그대로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가상으로 항공기를 조종하는 훈련이다. 실제 항공기로는 체험하기 힘든 각종 상황을 설정해 조종사의 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이 시뮬레이션 훈련의 목적이다.

훈련 강도도 상상 이상이다. 대한항공은 모든 조종사를 대상으로 6개월에 한 번씩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으며 가상비행이지만 같은 평가에서 2회 탈락한 조종사는 운항을 중지시키고 있다.




보잉항공기 6개 기종 시뮬레이터 설치
조종석 앉으니 LA공항이 실제처럼 눈앞에
착륙 땐 너무 긴장해 ‘쾅’하드랜딩


실제로 앉아본 B777 항공기의 조종석은 예상보다 단출한 모습이었다. 기자의 시뮬레이션 훈련을 맡은 운항훈련원 정재만 부장은 “B777 항공기는 최첨단 항법 시스템과 전자식 조종장치를 갖춰 B747 등 기존 항공기에 비해 성능은 월등하지만 조종은 더욱 간편해졌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왼편에 위치한 기장석에 앉자 전방에 설치된 200도 스크린에 LA 국제공항의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B777 시뮬레이터는 LA 국제공항을 비롯해 인천국제공항, 뉴욕 JFK 국제공항 등 전 세계 주요 공항의 데이터를 모두 갖추고 있어 어디서든 이착륙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이날 훈련은 항공기 이륙 준비와 이륙, 착륙 순서로 진행됐다. ‘프리플라이트 체크리스트’에 따라 진행되는 이륙 준비과정은 조종석 천장에 설치된 항공기 내 전자장비의 퓨즈박스인 서킷 브레이커 체크부터 시작된다. 이후 연료, 전기 등을 통제하는 오버헤드 패널, EICAS 모니터를 통해 플랩 및 러더의 작동상태, 엔진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항공기의 내비게이션인 FMS 장비를 이용해 항공기의 중량에 따른 이륙속도 등을 계산한 후 목적지인 인천국제공항까지 항로를 입력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륙 준비가 끝나자 항공기는 활주로를 따라 이동, LAX 25번 활주로에서 이륙을 시작했다. 조종석 중앙에 위치한 쓰로틀레버를 작동시키자 GE90-115B 엔진이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B777-300ER 항공기에 장착되는 GE90-115B 엔진의 추진력은 최대 8만4,700파운드로 현재 전 세계에서 운용중인 엔진 가운데 가장 추력이 큰 엔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FMS 장비를 통해 계산된 이륙 속도는 140노트(161마일). 항공기의 자세와 고도, 스피드를 알려주는 PFD(Primary Flight Display)는 순식간에 140노트를 찍었고 조종간을 살짝 당기자 육중한 이륙감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6개의 유압 실린더는 항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작동해 중력 가속도까지 느끼게 해줘 실감나는 훈련을 돕는다. LA-인천 노선 운항고도인 1만3,000피트에 도달해 목적지인 인천국제공항 방향을 확인한 후 자동운항 스위치를 누른 후에야 조종간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곧바로 이어진 착륙 훈련은 이륙에 비해 더욱 긴장감이 감돌았다. 항공기 착륙은 적절한 속도 감속과 안정적인 하강이 포인트. 숙련된 조종사들에게는 일상인 착륙이 초보 조종사인 기자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PFD 모니터가 알려주는 기체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항공기는 아래위로 요동쳤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응시하며 조종간을 잡고 있는 두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항공기의 고도가 높다는 경보가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B777 항공기의 자동 속도 조절장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활주로에 내려앉았지만 결국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하드랜딩’을 하고 말았다. 약 30여 분간 짧게 진행된 시뮬레이션 훈련이었지만 항공기를 내손으로 직접 조종해 본다는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본보 심민규 기자(왼쪽)가 B-777 시뮬레이션 훈련에 앞서 대한항공 운항훈련원 정재만 부장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정재만 부장이 B-777 시뮬레이터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 넓게, 더 편하게, 더 즐겁게

■B777-300ER 탑승기

실제로 체험해 본 B777-300ER의 신기재 좌석은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LA-인천노선에 투입된 B777-300ER 항공기에는 퍼스트 클래스인 코스모 스윗(Kosmo Suites) 8석, 비즈니스 클래스인 프리스티지 슬리퍼(Prestige Sleeper) 56석, 이코노미 클래스인 뉴 이코노미(New Economy) 227석의 총 291좌석이 장착됐다.

일등석인 코스모 스윗은 기존 일반 일등석보다 15.3cm 좌석 폭을 넓혀 VIP들에게 최고급 호텔과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며 일반석인 뉴 이코노미도 인체공학적 설계로 승객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해 장시간 비행에도 피로도를 크게 낮췄다는 평가다. 비즈니스 석인 프리스티지 슬리퍼는 신기재 항공기에 탑재된 좌석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프리스티지 슬리퍼는 기존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 비해 30%가량 크기가 늘어나며 좌석이 180도로 완전히 누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LA를 출발해 인천까지 비행하는 11시간 동안 가장 많은 업그레이드가 있었다는 프리스티지 슬리퍼를 이용했다. 180도로 펼쳐지는 좌석은 일등석에 버금가는 안락함을 제공했다.

평면 좌석 이외에도 좌석마다 설치된 개인용 LED 독서 램프는 승객의 눈높이에 맞게 방향과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며 옆 좌석 승객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제공하는 프라이버시 칸막이도 크기가 커졌다.
또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인 전 좌석 AVOD도 기존 대비 크기가 대폭 확대된 16:9 비율의 와이드 모니터, 항공기 외부 전격 감상 서비스 등 하드웨어·소프트웨어도 대폭 업그레이드 됐다. 선택할 수 있는 영화도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최신작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