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한세기 현대화되는 한국철도 (1995)

 이 땅에 철마의 기적소리가 울려 퍼진지 한 세기. 구한말 격동의 물결과 더불어 달리기 시작한 우리 철도는 근대산업 문명의 대동맥으로 이 나라 산업,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성장발전의 견인차로 선도적 역할을 다해왔다. 철도의 발전은 곧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에 직결되었기에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철마는 한 세기의 긴 역사와 전통 그 숱한 수난과 영광을 나눈 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우리 철도는 구한말 석탄이나 광산채굴권을 노리는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철도 부설 문제가 시작되자 대한제국 농상공부에 공무아문을 둔 것을 효시로, 궁내부에 철도과를 두고 1896년 미국인 제임스 모세에게 주어진 경인선 부설권이 일본 철도 합작회사에 넘겨지면서 1899년 9월 18일 노량진 제물포간 33.2 킬로미터의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니, 이 땅의 산야에 철마의 기적이 처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에는 호남선과 경원선, 1922년 천안 장항 간 장항선, 1936년 전라선, 1939년에 청량리 춘천 간 경춘선, 1942년에 중앙선이 차례로 개통됨으로써 오늘날의 철도 골격이 대체로 형성되었다.

 일본 통치 36년간에 우리 철도 역사는 악재와 수탈의 역사로써 철저한 식민지 정책 속에 일본 제국주의의 병참기지 확보와 대륙 침략의 수단으로 건설되어 갔으며 1910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이 설치되면서 철도는 일제의 수중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오랜 기간 혹사당하는 아픔을 겪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도 잠시 철도는 남북으로 반쪽씩 분단되는 비극을 맞게 되고 해방으로 시작된 3년간의 미군정 과도기를 거쳐 운영권은 우리 손으로 넘어왔으나 자재 부족, 재정 핍박, 사회 혼란 등으로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남한만의 철도총량은 선로 연장 3738km, 기관차 488대, 객차 1280량, 화차 8424량, 역 300개소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수난 속에서도 우리 손으로 철도의 재건에 힘써오던 중 뜻하지 않은 또다른 민족적 비극이 한국 철도의 발전을 가로막고 말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괴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 전쟁에서 수송로의 제약과 차단은 전략상의 제일 목표이기에 철도는 적의 철저한 파괴목표물이 되었으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철도의 차량, 선로, 신호, 교량 등 주요 시설물은 절반이상 파괴되어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6.25 한국전쟁은 우리 철도를 만신창이로 만들었으며 직원들은 군 징용 특별조치에 따라 종군하게 되었으며 수송본부를 영등포로 수원으로 대구로 부산으로 이동해가면서 피난민 수송이나 군사전략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일선 군경 못지않게 공헌을 하는 가운데 많은 철도 직원들은 희생되어 갔으며 남은 직원들은 처참하게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는데 낮과 밤이 없이 힘을 쏟아 부었다.

 정부가 수립되면서 경제발전과 국토건설 계획에 따라 자원의 개발과 기간산업 육성을 위하여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철도 복구 및 부설이었기에 영동, 태백, 문경선 등 3대 산업선이 우리 기술진으로 건설에 착수했다. 1953년에는 대양 사천 간 사천선이 55년에는 점촌 가은 간 문경선과 영주 천안 간 영동선 57년에는 제천 함백 간 태백선 59년에는 충주 봉양 간 충북선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선의 건설은 한국 최대의 에너지 자원의 보고인 영동, 태백, 문경 지구의 자원개발을 활발히 촉진시키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역경제의 균형발전을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새로운 철도건설이 추진되었다. 63년에는 능곡 의정부 간 서울 교외선과 부평 경포대 간 영동선의 연장, 65년에는 사천 삼천포 간 진삼선, 66년에는 영주 점촌 간 경북선, 67년에는 예미 증산 정선을 잇는 정선선, 68년에는 진주 순천 간 경전선, 73년에는 고한 황지 간 태백선이 각각 개통됨으로써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횡단하는 새로운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철도가 창설된 이래 계속 사용돼 오던 증기기관차는 주요 동력차로써 석탄을 연료로 운행되었으나 전쟁 중에도 포화를 견디면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1951년 UN군이 전시수송용으로 공수해온 디젤 기관차가 처음으로 한국 철도에 등장하고 종전 후 4대를 인수받아 운행을 개시하면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디젤 기관차가 도입되어 1967년 8월 30일을 끝으로 증기기관차는 마지막 운행을 다하고 디젤기관차 시대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경제개발의 성공적인 추진에 따라 급격히 늘어나는 물동량을 원활히 수송하기 위해 주요 간선에 복선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1965년 경인복선 개통을 시작으로 78년에는 서대전 이리간 호남선 복선 개통. 80년에는 조치원 봉양 간 충북선 복선 개통. 88년에는 이리 송정리간 호남선 복선 개통으로 수송 효율을 높이게 되었다. 영동, 태백지구에서 생산되는 석탄, 양회 등 주요 산업물자를 중부 내륙지방으로 수송하는 중앙선이 60년대 후반부터 이미 선로 능력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자 열차의 견인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철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1973년에는 청량리 제천 간 중앙선 전철이 74년에는 제천 고한 간 태백선 전철이 개통되고 이 구간에 전기기관차가 도입, 운행됨으로써 우리 철도의 처음으로 전기기관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날로 늘어나는 수도권의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 위하여 1971년 수도권 전철화 사업도 착수했다. 74년 8월 15일 경부선에 서울 수원 간 경인선에 서울 인천 간 경원선에 용산 성북 간 전철을 개통시켜 전기동차 운행을 시작으로 수도권 교통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90년대 들어와서 안산선, 과천선, 분당선, 일산선이 차례로 건설되어 하루 평균 수도권 주민 160만 명을 실어 나르는 편리한 교통수단에 하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철도는 장거리 대량 수송이 장점으로 무엇보다 먼저 신속성,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열차의 안전 확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현대화해야할 분야는 신호체계의 자동화이므로 재래식 신호방식을 전기식 자동신호방식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이였다. 그 첫 번째가 열차집중 제어장치인 CTC화로써 1968년 중앙선에 제천 봉양 간에 설치하기 시작하여 77년에는 수도권, 88년에 제천 영주 간 92년 경부선 전 구간에 CTC화를 완공하여 현재 27%의 CTC화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일정한 열차 운행 기간에 한 개의 기차만을 운행시켜 안전을 도모하는 종래의 폐색장치 즉 통표 폐색방식을 무통표 전기식 자동 폐색 방식으로 바꾸는 ADS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열차 운행에 고밀도 고속화를 이룩하게 되었으며 열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진입하더라도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열차 자동 정지 장치인 ATS를 전 구간에 100% 완공함으로써 서울 부산 간 열차 운행시간을 종전에 6시간 40분대에서 4시간 50분대로 다시 현재 4시간 10분대로 대폭 단축하게 되었으며 열차의 안전도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한편 건널목에는 열차의 진입을 자동적으로 알려주는 자동 경보장치와 자동 차단기를 설치하고 자동차 통행이 빈번한 건널목은 지하도, 고가도로 등으로 입체화함으로써 늘어나는 건널목 안전사고 예방에 주력해왔다. 주요 통신 장비로는 방송단국 1053대, 자동교환기 65대, 사령전화장치 92대, 열차무선전화장치 6959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역무 자동화 장치로는 84개 역에 자동발매기, 자동 발권기, 자동 개·집표기, 역 단위 전산기 등 총 1831대의 장비가 중앙정산장치에 온라인으로 연결되어있다.

 철도차량을 정비하고 수선하는 차량 정비 시설로는 최신 시설을 갖춘 대단위 차량 정비창으로 서울 철도 차량 정비창, 대전 철도 차량 정비창, 부산 철도 차량 정비창 등 3개 중추선 정비창을 비롯하여 경수선을 담당하는 16개 기관차 사무소 및 10개 객화차 사무소와 동차 및 전동차를 전담 수선하는 사무소를 설치함으로써 차량 수선과 정비능력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1927년 7월부터 우리 기술진에 의해 서울 철도 차량 정비창에서 처음으로 증기기관차를 자체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59년 인천 공작창에서는 처음으로 객차제작에 착수하여 본격적인 국산 차량 생산에 돌입하였으며 1980년에 건설된 대전 철도 차량 정비창은 연간 객차 980량 화차 4600량을 수선할 수 있는 대단위 현대식 정비창으로 발돋움했다.

 이처럼 우리 기술진에 의한 차량 제작 기술의 습득과 기술 축적은 국내 차량 제작 생산 능력에 기틀이 되어 1986년에는 순수 우리기술로 설계된 스테인리스 새마을 객차와 여객열차 전용 디젤 전기기관차를 제작하였고 1987년에는 전후 동력형 새마을 동차까지 생산하게 되었다. 이들 차량에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오물 처리 장치, 승객의 안전을 위한 자동승강문, 6채널 음악 방송 장치 그리고 독서등이 설치되어 여객 서비스가 더욱 향상되었고 1994년에는 장애자를 위한 객차도 개발되었다.

 또한 도시 대중 수송을 위한 전동차는 VVVF 제어방식을 도입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대우중공업은 연간 전기 기관차 320량, 전기 동차 770량, 디젤 동차 600량, 객차 970량, 화차 4000량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대 정공, 한진 중공업도 이와 유사한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8.15 광복당시 선로 연장 3738km였던 철도는 그 후 산업선을 비롯한 각 지선의 건설과 기존 선로의 복선화로 본선, 측선 총 37개선에 총 선로 연장은 6558km로 늘어났으며 교량 3203개소, 터널 452개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선로를 유지, 보수하기 위하여 24시간 주야 선로 보수 작업이 보선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종래에는 수작업에 의존하던 선로 보수작업은 멀티플 타이템퍼, 바라스트 컴팩터, 바라스트 크리너, 바라스트 레규레터, 스위치 타이템퍼, 궤도 검측차, 모터카 등 현대화된 장비를 투입하여 기계화 작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1971년 9월부터 컴퓨터를 도입, 운영하고 있는 철도는 1981년부터 승차권 전산발매를 시작으로 급여, 자재, 고정자산, 차량 검수, 승무원 관리 업무 등 철도 업무 전반을 전산화하는 데 이어 철도종합 운영정보 시스템인 크로이스를 구축하여 여객 화물 수송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부족한 역무시설을 민자를 유치하여 현대화된 역사를 건립하기 시작, 89년에 서울역 민자 역사와 동인천 민자 역사를 개관한 데 이어 91년 영등포 민자 역사를 개관했으며 부평, 부천, 대구, 안양, 왕십리, 청량리, 대전, 수원, 일산 등 주요 도시에 민자 역사 건립을 추진 중에 있어 국민 생활 편의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데 철도가 앞장서 나가고 있다.

 1988년 1월 26일 개관을 보게 된 경기 의왕시 부곡 소재 철도 박물관은 철도 한 세기의 발전 과정을 국민에게 알리는 교육장으로써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울역 및 부산역 등 주요 역에는 전용 미술관을 건립하는 등 문화 공간도 확충하여 철도 이용고객의 정서적 서비스 충족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경기도 의왕시에는 철도 박물관 외에 차량 제작사인 대우중공업, 철도전문대학, 철도산업기술연구원, 교통공무원교육원이 소재하고 있어 철도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철도 여행상품 개발에 힘써온 철도청은 패키지 관광 상품으로 경주, 부곡, 설악산, 해운대행 신혼열차와 충주호, 수안보, 울릉도, 백암, 주왕산, 흑산도, 거문도, 백도 행 관광열차, 무주 리조트 행 스키열차, 백암 부곡 행 온천열차, 주말 등산열차 등을 개발 운영 중에 있으며, 한국과 일본 여행을 차표 한 장으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한국 일본의 철도를 고속 여객선 부관훼리호 비틀2호 등으로 등으로 연계수송하는 한일 공동 승차권, 외국인을 위한 코레일 팩 등 종합 패키지 상품을 개발, 운영중에 있다.

 철도 전문 인력을 양성, 확보하기 위해 1905년부터 철도 이원 양성소가 설치된 이래 철도 종사원의 교육 훈련 기관인 교통 공무원 교육원이 운영 중에 있으며 1919년 경성 철도 학교로 설립된 철도 고등학교는 많은 인력을 배출하고 1986년 2월 28일 폐지되어 2년제 철도 전문대학으로 계승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 철도는 전라선의 직선화 개량으로 이 구간의 속도 향상 및 광양 제철 화물 수송에 대처하고 서울 구로 간 삼복선 전철. 수원 천안 간 복복선 전철. 중앙선 복선 전철. 경원선 의정부 동두천 간 복선전철. 수인선 복선전철. 경의선 서울 문산 간 복선 전철. 부산 울산 간 복선전철 등을 계속 추진하여 늘어나는 간선망의 수송 수요에 대처하고 대도시 교통난을 완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철도 부문에 대한 투자의 부진과 도로의 상대적 발전으로 차량이 늘어나면서 도로는 심한 적체 현상을 나타내는 등 교통 부문 간의 불균형과 교통난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시정하고 심화되는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속철도의 건설이 검토되었으며 1989년 7월 고속 전철 건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서울 부산 간 경부선 고속전철 기본 노선을 확정하고 92년 3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발족시킨 후 고속철도차량 형식 선정을 위해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 3개국에 제의 요청서를 발송하여 93년 8월 20일 프랑스 알스톰사를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하여 94년 6월 14일 프랑스 떼제베와의 차량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92년 6월 30일 천안 대전 간 시험 구간에 대한 건설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앞으로 서울 부산 간 430.7km의 경부고속전철이 완공되는 21세기 초에는 운행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두시간대에 운행되는 꿈의 철도 노선이 될 것이며 통일 후에는 북한 철도와의 연결은 물론 중국의 TCR 철도 러시아의 PSR 철도 및 유럽 철도와도 연결될 날이 멀지 않았다.

 앞으로 경부 고속철도를 비롯하여 호남 고속철도, 동서 고속철도 등이 건설되는 21세기 초에는 기존의 재래선은 화물을 전용으로 수송하는 기능 재편이 이루어져 화물 유통 분야에 획기적인 변혁을 맞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안전하고 신속한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열차는 넓고 안락한 의자와 실내 공간, 완비된 냉난방, 차내 식당에서의 즐거운 식사, 감미로운 음악, 차내에 설치된 무선 공중전화로 어떤 용무라도 해결하는 통신수단 이러한 전천후 서비스는 철도여행에서만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우리 철도가 근대문명의 총아로 이 땅을 달리기 시작한 이래 한 세기의 연륜 속에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삼만 칠천여명의 인력으로 611개 역에 1일 여객열차 1867회 화물열차 535회 등 2400 이장을 투입하여 1일 평균 223만명의 여객과 1일 평균 15만 8천 톤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가 기강 산업의 원동력으로 발전해왔다.

 이제 우리 철도는 과거의 권위적 경직적인 자세로부터 우리의 의식과 체질을 과감히 탈피하여 언제나 철도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고객의 입장을 우선하는 고객중심 경영체제를 구축해나가는 데 앞장 설 것입니다. 또한 국유철도를 공공성과 기업성의 조화와 경영의 자율성이 잘 보장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재정된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더욱 발전시켜 철도를 하루빨리 현대화해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출처: http://achimount.tistory.com/42 [새로움에 다가서는 기억 Achimount Media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