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실험- 통일로 가는 아픈 통과의례

 

 

지난 10월 9일 아침에 있었던 북한의 핵실험은 그것이 진정한 핵실험인지 아닌지의 진위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그보다 며칠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엄포가 아닐 것으로 확신했다.
  
  10월 8일부터 무술(戊戌)월이 시작되는데 필자는 금년 초부터 무술월이 되면 무언가 결정적인 일의 단서가 시작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금년 1월 3일자 "병술년 국운전망"이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올린 칼럼에서 올해 안에 남북통일로 가는 구체적인 조짐이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 일은 금년 양력 6월 갑오(甲午)월에 시작되어 10월 무술(戊戌)월에 걸치는 일에서 기원한다고 밝혔었다.
  
  당시 필자는 그런데 그 일이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말하기가 두려웠다. 두 가지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가능성 중에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었고 또 하나는 북한의 핵실험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처음에는 북한에 핵이 있느냐의 여부를 놓고 없기를 희망했었고 핵 보유를 선언한 다음에는 핵실험이 없기를 기원해왔다.
  
  그러나 필자는 북한의 핵 보유가 오래 전부터의 일관된 의도이자 핵심정책이라고 믿어왔다. 2000년 6월 경진년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아 이제 북한이 핵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섰구나' 하고 여겼다.
  
  냉전이 끝난 이후, 전통적인 우호국이던 중국과 러시아 모두 국익과 경제 문제에 급급한 나머지 북한의 안위, 특히 김정일 체제의 안전을 담보해 줄 힘이라곤 핵무장의 길밖에 없다고 김정일 위원장이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바라는 바는 사실 대단히 단순하다. 첫째, 미국이 자신이 지배하는 북한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것, 둘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시장경제에 참여하여 외화를 벌어들여서 그것으로 인민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핵무장을 전제하지 않고는 최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있다.
  
  필자는 김 위원장의 판단이 틀린 것인지 옳은 것인지의 여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핵무장이 스스로를 옥죄는 자충수(自充手)일 수도 있고 역으로 기사회생의 묘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생각과 계산이 김 위원장의 머리 속을 오고갔겠지만, 한편으로 핵무장과 같은 최후의 물리력을 지니겠다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주변의 지지와 충성 세력이 이탈하는 위험성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위원장 동지는 인민들이 조만간 다 굶어죽을 판국에 손을 놓고 있단 말인가, 핵을 들고 미국과 최후의 담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하는 얘기가 들려올까봐 두려웠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비이성적이라는 얘기는 그다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 역시 인간이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이며 부친이 물려준 체제와 인민들을 번성케 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지녔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만 비극은 김정일 위원장의 위치가 스스로 가지는 독재와 폐쇄 체제에 기인한다.
  
  그 양반인들, 중국이 무섭게 번영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부럽지 않았을 리 만무하고 미국을 혼내준 베트남이 미국과 통상을 트면서 욱일승천의 기세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인도가 핵을 지닌 다음 세월이 지나자 급기야는 미국의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중국은 번영에 앞서 모택동 체제가 제거되어야 했으며 베트남 역시 일인독재 체제가 아니라는 것, 인도 역시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쥐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정세 변화에 따라 미국과 통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비극은 그 모든 원인이 일당독재가 아니라, 일인독재 사실상의 왕조체제라는 점에 있다. 남측이 원하는 평화와 경제협력을 통한 개방은 그것이 전면 개방으로 이어질 경우 체제의 안전에 치명적인 독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 양반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모든 문제와 비극은 자신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 권력을 쥔 인간이 '문제는 내게 있소'라고 선선히 권력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역사 이래 드문 일,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도 하다.
  
  그런 김정일 위원장은 경자(庚子)일에 태어났다.
  
  이번 핵실험이 있었던 날은 10월 8일, 신미(辛未)일이었지만 그 전날이 경오(庚午)일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7일, 일요일에 김정일 위원장이 핵실험을 결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올해가 병술(丙戌)년이니 그에게는 대단히 힘든 한 해였고 그 결과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미국과의 담판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핵 실험을 단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얘기지만,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은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세계 경제에 참여하여 인민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그것만 된다면 핵탄두 같은 것은 조선반도에 한 발도 없어도 된다는 그들의 말이 진실인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핵탄두를 가지고 미국과의 담판을 마무리하고 백악관에서 미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통해 전 세계 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좋다는 언질 하나를 미 대통령으로부터 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월남전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역작용으로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절대 강국을 확인하고자 하는 신보수주의의 흐름 속에서 북한과 같은 나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미국이 원하는 것 또한 사실은 단순하다.
  
  네가 먹고 살고 싶다면 취해야 할 조치는 다음과 같다.
  
  1단계로서 핵을 전면 폐기할 것, 2단계로서 지구상의 절대강자인 나에게 와서 강자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갖추라는 것이다. 그러면 호구지책은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독재체제도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어느 기간까지는 특별한 사정을 감안하여 인정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을 관리해가면서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미국이 보여주는 북한에 대한 분명하고도 일관된 태도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현 단계에까지 와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이 들어줄 리 만무하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미국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또 현 단계에서 미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방안 역시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모든 옵션이 다 있다고 말하면서 전쟁 시뮬레이션이야 여러 번 해보겠지만, 본질을 말하면 그것은 으름장에 불과하다.
  
  전쟁 시에는 남한의 인명손상과 경제파탄만이 아니라, 자칫 잘못될 경우 중국과 일본, 멀리는 러시아까지 끼어들어 동북아시아 전체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열강 간에 전쟁 의도가 없었어도 동유럽의 후미진 시골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결국 대 전쟁으로 이어진 것과 같은 참극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일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려면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그리고 러시아 너희들은 내가 북한을 쳐들어가면 협력하거나 최소한 가만히 있을거지 하는 확인, 둘째, 남한 너희들은 최소한 백 만 명은 죽겠지만 그래도 감내할 수 있겠지 하는 확인, 셋째, 일본 너희들은 형님이 전쟁하는데 금전적으로나 돕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어 하는 확인,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다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서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을 선제 핵 공격하는 일은 현재 단계에서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번 핵 실험으로 인한 전쟁은 없다.
  
  이처럼 협상도 될 리 없고 전쟁도 될 리 없는 묘한 대치 상태가 현재의 핵 위기 국면인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북한이나 미국 모두 계산해 본 지도 오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기분 나쁜 것은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공갈 협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핵 게임에서 우리가 인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무섭고도 한편 지루한 이 으름장 놀이를 타개하는 묘안은 정녕 없는 것일까?
  
  북한을 나쁘다고 욕해봤자 헛일이고 미국더러 양보하라고 해도 헛일이다.
  
  최근 일고 있는 포용정책의 지속 여부, 그것은 이미 문제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포용정책의 공과를 구태여 따지자면 지난 몇 년간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감소시켰다는 점에서 인정받아야 할 것이고, 북한이 핵이라는 한 칼을 가는데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일조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책의 타당성을 떠나서 지금에 와서 더 심각하고 한심한 현실은 이미 핵의 인질이 된 우리로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포용한다, 핵을 개발하여 남북한 한민족의 앞날을 위협하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포용 하지 않는다. 핵을 가진 상대를 놓고 긴장감을 높이는 꼴이니 어렵다. 상황은 이런 것이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물론 필자 같이 작은 사람이 그것을 알 리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고 본다.
  
  필자가 추산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지난 1948, 무자(戊子)년 9월 9일에 생겨난 북한 체제는 60 년이 지난 2008년 9월까지가 수명이다. 통일의 기운은 지난 1984년 갑자(甲子)년에 시작되었기에 그로부터 30 년이 지난 2014 갑오(甲午)년에는 명실상부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2008년에서 2014 년 사이의 6년간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북한 내부에 실용주의적 세력이 득세하면서 통일로 가는 길목을 준비하게 된다.
  
  지금의 핵 실험은 통일을 향한 1984년부터 2014년에 이르는 30년에서 모든 일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시점, 즉 정확하게 75 %가 경과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지만 훗날 보면 그것이 통일로 향한 고통스런 통과의례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핵이 사용되는 일도 전쟁이 나는 일도 모두 없을 것이다. 당장의 핵 실험으로 인한 위기 국면도 다음 달 11월이 되면 진정세로 돌아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