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원산 상륙해야"     ▲ 19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쇄암리 일대에서 해병대 주관으로 한미연합 연안상륙훈련이 실시됐다.
10·9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에는 '전쟁 망령'이 떠돌고 있다. 전쟁을 불사할 각오가 돼 있을 때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꽁무니를 뺄수록 전쟁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입장, 국지전을 인내하고서라도 국제적 대북 제제노선에 동참해야 한다는 견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주문까지 '막말' 수준의 '전쟁 불사론'이 정치권에서 잉걸덩이가 되고 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평화가 목적이라면 수단도 평화적이어야 하며,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발언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남북간 무력충돌을 단 1%라도 낮추자는 데 있다며 제제나 군사력으로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 수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호전적 잠재의식과 농담 사이

19일 오후 4시 강화도 해병대 연대본부 건물 앞.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해병대의 공육연합-합동 연안 상륙훈련 참관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버스 앞에서 이상로 사령관(중장)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인제 의원 "북측에도 해병대와 같은 조직이 있나요?"
이상로 사령관 "육전대라고 있습니다."
김성곤 국방위원장 "이런 훈련을 매년 하나요?"
이상로 사령관 "네. 연안 상륙작전인데, 작년에 포항에서 했고, 이번에 의원님들께 (해병대가)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보여드렸습니다."
공성진 의원 "다 했으니까, 내년에는 저쪽에 상륙을 해야겠네요."
송영선 의원 "그렇지, 그렇지. 내년엔 원산으로 가야 돼, 원산으로."
이상로 사령관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시 이 상황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관계자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하는 훈련을 마친 사령관한테 내년엔 원산으로 상륙하자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평소 그들의 호전적인 잠재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라고 개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성진 의원과 송영선 의원의 평소 발언과 연계시켜볼 때 그들의 사고 깊은 곳엔 전쟁 이후에 벌어질 끔찍한 상황을 염려하는 무언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며 "국회의원 신분에서 원산상륙 같은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우려했다.

"대북정책, 비실비실 싸고 있는 게 옳으냐"

▲ 잇단 '전쟁 불사'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공성진(좌),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
19일 밤 전화통화를 통해 '원산 상륙' 발언의 본의가 무엇이냐고 묻자, 송 의원은 "본의는 무슨 본의냐, 유치찬란해서 말을 못하겠다"며 "농담으로 한 것"이라고 잘랐다.

이어 "원산으로 가자는 것은 상륙훈련을 철저히 해서 북쪽이 우리를 함부로 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군이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송 의원은 "국감 때 육해공 다 가보니까 군이 북한 핵이 터진 걸 예의주시한다고 하면서 정작 핵전쟁 대비 방안이 없다고 해서 준비하라고 한 것"이라며 "우리가 강력한 힘을 가질 때만이 저쪽(북한)에서 감히 전쟁을 시작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질책했다.

그는 '저축론'을 설파하며 "집 사려면 저축해야 하듯이 평화를 지키려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많은 돈을 내야하며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전쟁 없는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북정책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적이 있었냐"며 "여태 퍼다 줬는데 기껏 핵이나 터뜨리는 상황에서 뭘 잘했다고 따지냐, (대북정책이) 비실비실 싸고 있는 게 옳은 거냐, 말이 되는 걸 갖고 기사를 쓰라,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공성진 의원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버스에 먼저 타서 그런지 그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합참 기획부장과 악수하고 다른 장병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빠서 그런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었던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은 "그 상황을 알고 있지만 심각하게 한 얘기가 아니라 우스갯소리였으니 기사화하지 말라"며 "의원들의 말이 말을 낳는 상황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태은 해병대 대변인은 "사령관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말씀했다"며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전달했다. 19일 늦은 밤까지도 사령관과의 직접 통화를 요청했으나, 해병대측은 끝내 거절했다.

전쟁 발언 쏟아내는 까닭

▲ 19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쇄암리 일대에서 해병대 주관으로 한미연합 연안상륙훈련이 실시됐다.
이와 관련,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제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농담 삼아 전쟁 불사론을 피력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국회의원인 사람들의 기본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평소에는 안보불감증을 주창하면서 현역 군 사령관에게 그런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제보자는 "외피는 농담이지만 속내에는 평소 갖고 있는 호전적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며 "2차, 3차 핵실험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농담을 한 거라면 뼈가 있는 농담"이라고 비판했다.

"훈련 잘하라는 데 대한 답변이었다" 해병대 사령부 정훈공보실 해명
한편 <오마이뉴스> 보도 후인 20일 오후, 해병대 사령부 정훈공보실은 "이상로 사령관은 송영선 의원의 질문이 아닌 이인제 의원의 질문에 대답했을 뿐"이라고 공식 해명했다.

이 의원이 "이런 연안상륙훈련을 매년 실시하냐"고 묻자 이 사령관이 "매년 김포와 포항에서 실시하고 있다, 특히 다음 주에는 포항에서 한국군 최초로 사단급 상륙훈련을 실시할 계획"라고 답했고, 이에 이 의원이 "그럼 그때도 훈련을 잘 하시기 바란다"고 말해 이 사령관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보자는 "공성진 의원이 버스에 먼저 탔기 때문에 전혀 상황을 모르겠다고 말했다니 놀랍다"며 "사령관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버스에 타고 있던 국회의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덧붙여 "해병대 사령관과 공 의원의 발언을 정확히 들었다"며 "내 정신이 이상하다면 모를까 정상인 바에야 절대 잘못 듣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같은 문제의 전쟁 발언이 계속 터져나오는 것과 관련,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아무리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괜찮다는 식의 접근은 반평화적인 것"이라며 "안보불안증을 유발할 수 있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