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완전한 일본인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滿洲日報 1942.3.24)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 상증의 전달이 있고 폐식 하였다."(滿洲日報 1942.3.24)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박정희를 지도했던 일본인 장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 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일본 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한 일본 외교관이 『국가와 정보』라는 책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만주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동료)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 장화에 점퍼 차림인데 말 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 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강창성 전 보안사령관)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 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동경의 한 요정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기시 수상 앞에서 맹세 ..)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전 자민당 부총재 오노 반보쿠)
 
박정희가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한 완전한 일본인이란 이유를 대기위해 근거가 될 만한 글들을 대충 모아봤다.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지닌 분들이라면 대충 읽어도 박정희가 어떤 의식을 지닌 인물인지 충분히 느끼시리라 생각된다. 박정희를 옹호하고자 하는 변명이 일왕에게 충성한 황국신민이 되기 이전인 교사로 재직시 박통 제자들의 증언이라니 이또한 참으로 궁색하다. 박정희의 친일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후인 일왕에게 충성한 황군이후의 일인데, 객관적 자료란게 고작 교사로 재직시의 민족교육 타령인가. 그 민족교육도 스승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는 제자들의 눈물어린(?) 미화·왜곡된 증언이라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