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과연 민주화에 진정한 공헌자인가 ---

 

흔히 말하기를,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 투사라고 부른다.

이거 완전히 새빨간 거짓 선동이다.

김영삼, 김대중씨는 박정희를 독재자로 몰아세우면서,

자기들이 민주투사인양 가장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자들이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살았었고,

내 눈으로 똑바로 박 대통령을 보았었다.

 

당시 나는 시골 농촌에 살았었다.

나의 아버지는 시골 동네 이장일을 보았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골 농번기가 되면 어김없이 시골 농촌에

내려 와서는 농부들과 함께 일하면서 막걸리를 즐기셨다.

농번기가 되면 동네 어른들은 우리집에 모였었다.

그리고는 동네 어른들은 면장, 군수를 찿아다니면서

이번 농번기에 꼭 우리 마을에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자고 하였다.

당시 농촌 마을은 박 대통령의 농촌부흥 운동으로 가난을 벗어나게 되었다.

당시 전국의 농촌 마을은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 하였다.

만일, 박 대통령이 정말 독재자였다면,

과연 당시 농촌 농부들이 이토록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

하였겠는가.

 

나는 1970년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모대학에 다녔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중화학, 중공업이 집중 육성되던 시기였다.

당시 국민들은 세계 최하위 빈곤국가에서 우리가 중진국

진입이라는 희망과 꿈에 벅차 있었다.

대통령과 국민은 하나가 되어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일만

하였다.

 

자칭 민주화 투사들은 말하기를,

"70년대에 유신헌법은 유신독재체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거 또한 거짓된 민중선동에 불과하다.

당시 유신헌법 체제 동의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 하였다.

우리는 유신체제로 인해 더욱더 중화학, 중공업 등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진국 진입이라는

희망을 낳게 되었다.

우리는 80년대가 가장 호황기 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80년대에 꽃피운 시기는 박 대통령의 유신헌법 개정

통과로 인한 경제개발 덕이었다.

 

만일 당시 유신헌법의 개정 통과가 불발로 끝나고,

자칭 민주화 투사란 분들이 집권 하였다면,

우리나라는 끔찍한 상황이 이미 일찌기 발생하였을 것이다.

 

70년대에 대학가는 연일 데모로 얼룩져 있었다.

여기에 선봉에 선 자가 김영삼, 김대중씨였고,

김대중씨가 특히 심했다.

김대중씨는 대학가 강단에 서서 당시 학생들에게 민중선동을

일으키면서 학생운동에 불을 놓았다.

당시 김대중씨의 수제자들이 현재 집권 열우당의 실세들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에게는 이들 데모만

주동하는 학생들을 너무 싫었다.

학교는 툭하면 휴강 하였다.

당시 모범 대학생들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말을 빌려보자.

" 저 개XX들, 또 데모질이다"

"저 개XX들중에는 어떤놈들은 김일성 초상화 밑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이란 책을 숨어서 몰래 본다고 하더라"

"저 개XX들 하고는 말도 하지 마라"

 

일반적으로 70년대는 민주화 투사가 독재자와

맞서 싸운 얼룩진 시기라고 교육을 받아왔다.

이것은 철처히 오도된 잘못된 교육이다.

자칭 민주화 투사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는

자기들을 미화하기 위한 위장선동에 불과하다.

당시 나는 박 대통령 시절에 어린 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내 눈으로 박 대통령을 똑바로 보았었고,

당시 상황을 진실되게 말하는 것뿐이다.

 

박 대통령은 절대로 독재자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가난한 우리나라를 부강한 국가로

이끈 훌륭한 대통령이시고,

우리 국민들을 절대로 억압하지 않았다.

단지, 당시 박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몰두하고 있을때,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으면서 민중선동을 일으키며 데모만

주동하였던 작자들만 탄압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자칭 민주화 투사인 김영삼, 김대중씨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가.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를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IMF 사태를

초래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체제하에서,

IMF 조기졸업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외국자본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우리기업을 외국에

헐값으로 팔아 버렸다.

작금의 외국인들이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IMF 체제하에 무려 170만명의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 몰렸다.

한 가정이 4인임을 감안할 때 무려 700만명이

고통을 겪게 되었다. 누가 이들의 아픔을 달래 줄 것인가.

 

김영삼, 김대중씨는 나라를 집권하면서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로 얼룩졌었다.

최근에는 국정원의 도청 비리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들이 나라를 위한 진정한 민주투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영삼 대통령은 나라를 부도나게 하였지만,

이 분은 반공이념이 투철 하였다.

그래서 당시 안보는 불안하지 않고,

국민들이 그런데로 마음 졸이지 않고 살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나라가 위기로 치달을 시 금융개혁 입법을 시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여야 대권주자를 비롯한 정치권이 개혁시도를

방해 하였다.

결국 우리나라는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

당시 정치권은 썪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간첩 한마리도 안 잡고,

더구나 북한이 남한을 향해 뚫어놓은 땅꿀조차도

발견하지 않았다.

작금의 우리의 현실이 안보 불안으로 국민들이

너무나 고통을 겪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혹시 부정에 개입할지도 모르는 친인척을 엄중하게

감시 하였다.

박 대통령의 친형은 가난한 농부로 여생을 보냈고,

친 누님은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또한 가난하게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청렴결백한 생활을 하였다.

박 대통령의 침실 화장실에는 물을 절약하기 위해,

벽돌 한장을 놓고 살았다.

또한 박 대통령은 돌아가실때 보니,

20년된 다 떨어진 혁띠와 손목시계를 차고 계셨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돌아가시자,

전국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당시 나는 시골 농촌에 가보니,

할머니들이 정화수 물 한그릇을 떠 놓고는

박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당시 전국에 농촌의 할머니들은 다 이랬다.

그래서 당시 일간지 신문에도 이런 기사가 많이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씀하셨다.

"민주화는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잘 살게 될때

진정한 민주화가 성숙될 수가 있다"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덕분에 선진국 진입을

꿈꿀수가 있었고,

이로인해 중상류층이 두터운 층을 이루게 되었다.

두터운 중상류층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히 민주화를

이룩할 수가 있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이어지며서 우리나라는 나라경제가

힘을 잃으면서 중상류층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중상류층의 몰락은 민주화를 몰락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진정 민주화에 공헌한 분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란 말이더냐.

 

우리는 최소한 세상을 똑바로 알고 살자.

거짓 선동꾼에 제발 속지 말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