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가 이번 여름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인데,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뜨거운 논란의 '덕택'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논란거리로 가득하다.

 

"강제징용은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 "독도를 한국 고유의 영토라고 말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 주장 하나 하나 일반의 상식에 반하는 것들이다.


그 중 가장 근본적이며 포괄적인 것은 "일제는 조선을 수탈하지 않았다", "일제 지배로 조선 경제가 발전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일 것이다.


이 문제부터 집중적으로 따져보자. 이들의 주장처럼 과연 일제 지배로 조선 경제가 발전하고, 조선 대중의 살림살이가 좋아진 것일까.


▲ 경제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그가 공저한 책 표지. 스티글리츠 교수는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이 다른 나라로 흘러갈 경우 국민소득은 줄어드는데 GDP는 증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0년전 일제강점기에 적용해도 딱 들어맞는다.
 

GDP증가로 조선인의 삶이 나아졌을까


<반일 종족주의> 필자 중 한 명인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0% 이상 증가했다. 1인당 소비도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통계의 정확성은 접어두자. 일제강점기에 철도, 도로, 통신, 항만 등의 사회기반시설이 확충됐으니 틀림없이 GDP는 꽤 큰 폭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GDP가 증가했다고 조선 대중의 삶도 나아졌을까.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경제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美컬럼비아대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를 본다면 코웃음칠 것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는 "GDP는 틀렸다"고 주장한다. 2010년에는 책을 내기도 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美하바드대 교수, 프랑스 경제석학 장 폴 피투시와 함께 쓴 책인데, 이들은 이 책에서 "GDP 증가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국민을 더 못사는 사회로 몰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GDP가 경제성장의 척도가 된지 오래지만 GDP증가가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이다. 경제 성장을 측정할 때 GDP증가가 절대 가치일 수는 없다. 마약과 매춘이 늘어도 GDP는 증가한다. GDP가 늘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사고는 그래서 위험하다.


일찍이 스티글리츠 교수는 GDP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잘못된 자원 개발을 유발한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개발도상국이 적절한 규제도 없이 환경 훼손이 심한 광산개발권을 저가의 사용료를 받고 허가한다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국민들의 복지는 저하된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저서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이 다른 나라로 흘러갈 경우 국민소득은 줄어드는데 GDP는 증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선진국 투자로 금광이 개발되었는데 수익 대부분이 외국회사들 수중으로 들어갔고, 파퓨아뉴기니에는 형편없이 적은 수익이 떨어졌다고 한다. GDP가 국제자본의 수탈을 가리는 위장수단으로 활용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통찰을 100년전 일제강점기에 적용해보자. 딱 맞아 떨어진다.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일본인들은 맹렬한 속도로 조선의 토지를 장악해갔고, 광공업 자산은 90% 이상이 일본인들 소유였다. 소수의 일본인들이 토지나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을 집중적으로 소유했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민족별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


 허수열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민족별 불평등의 확대재생산 과정이 식민지시대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던 개발의 본모습"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식민지 체제가 청산되지 않는 한, 조선인들은 식민지적 경제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되었기에 해방이 이 식민지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게 허 교수의 결론이다.


그래도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개발했고, 그 덕분에 조선인들도 좀 더 잘살게 되지 않았겠냐고?

이에 대해 허 교수는 "조선이라는 지역의 개발과 조선인의 개발을 구별하지 못하는 논리 비약"이라고 말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조선인들도 있었다. 친일에 앞장선 일부 세력들이다. 그들은 '떡고물'을 톡톡히 챙기며 부를 축적해나갔을 것이다. 국민 90%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더라도 상위층 10%의 소득이 급증하면 평균소득이 올라가듯 GDP는 증가하는 법이다. GDP엔 이러한 '평균의 함정'도 있다.


▲ 1945년 해방후 경성(서울) 시내 풍경. 한국영상자료원이 2017년 3월 ‘희귀영상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해방의 역사’ 발굴공개시사회에서 공개한 사진이다.


일본학자도 비판하는 식민지근대화론


식민지근대화론은 해방 이후 질긴 생명력을 갖고 그 DNA를 유지·번식했다. 그에 따라 비판도 확산하고, 거세졌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은 9월 2일 '식민지근대화론이 틀린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경제지에 기고했다.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남미에서 한때 바람을 일으킨 종속이론에 의하면 주변 국가가 중심 국가에 예속되어 원료 공급지와 소비 시장 역할에 한정되기 때문에 산업 고도화의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고 주장한다. 종속이론이 남미의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였는지와는 별개로 적어도 식민지와 종주국 사이에서는 종속이론이 100% 성립된다. 중심 국가인 종주국 일본은 당연히 주변국인 식민지 조선을 일본 입맛에 맞게 요리했을 것이다. 조선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하지 않고 일본의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함수에 맞춘 최적화를 추구했을 것이기에 일본의 최선과 조선의 차선 이하가 조합된 최적해를 정책 목표로 선택했을 것이다. 내선일체를 내세웠기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학문의 영역을 떠나 정치 선동의 영역을 떠도는 것이니 학문적 양심을 논할 자격이 박탈된다."


"민족별 불평등의 확대재생산 과정이 식민지시대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던 개발의 본모습"이라는, 허수열 교수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일본학자도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에 나섰다.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은 최근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지식산업사)을 출간했다. 일본학자의 눈으로 일제강점기 토목업을 둘러싼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를 실증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장밋빛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도리우미 연구원의 비판 논리 역시 허수열 교수나 최중경 회장의 비판과 다르지 않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재정을 들여 조선 경제의 인프라를 확장시킨다는 총독부와 유착해 많은 이익을 취하고 경인·경부철도공사에서 보듯 조선인 청부업자들을 배제시켜 나갔다."


저자는 총독부 통계자료와 칙령은 물론 당시 토목건축업협회 잡지의 실태 조사를 통해 논지를 입증했다. 담합을 유죄로 하면서 정무통감 통첩의 형태로 지명 경쟁입찰을 도입, 청부업자를 구제하는 '악의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결국 조선으로 투자된 막대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일본인 청부업자와 지주의 손아귀에 들어가 조선인들은 가난에 허덕였다는 주장이다.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을 추정하면서 실태와 조선총독부 통계 자료 사이에서도 간극도 찾아냈다. 임금 미지급과 저임금을 통한 착취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또 "산업조사위원회가 결정한 철도 건설과 산미증식계획은 조선총독부의 예산이 조선인의 승인 없이 '조선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일본의 건설업자에게 흘러들어가는 구조였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역사적 진실찾기, 좌우의 문제 아니다


이 논쟁이 좌우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 진실 찾기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며 학자적 양심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보수 우파들 기본 생각과도 어긋나는 내용"이라고,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책을 읽는 동안 심한 두통을 느꼈다"고 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 교수는 2006년 이영훈 교수 등과 함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펴낸 보수 성향의 학자다. 이 책은 1979년 첫 권 출간 이래 지식인층의 '재야 역사교과서'로 자리잡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저술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볼 수 없는 서술들로 가득하다"고 비판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선동적 용어와 표현,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상식 이하의 감정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면서도 주장과 논리 측면에선 엄밀성이 결여된 책"이라는 것이다.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 교수는 "강제로 트럭에 태워 싣고 가는 연행이 없었다면 모두 자발적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신매매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팔레르모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무력행사,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는데, 전 세계가 합의한 인신매매 개념을 무시하고 '강제성이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가 쓴 <조선인 강제연행>이란 책을 보면 '모집과 관 알선'을 통한 동원에서도 엄청난 폭력성이 수반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조선인 피연행자는 법이 필요 없는 무법적 존재로서 물건 같은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이철우 교수는 "40년 동안 대두되지 않았다며, 뒤늦게 만들어진 가공된 기억이라고 주장하는데, 과거사에 대한 기억이 생성되고 활용되는 과정을 도외시한 단순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이 책이 노정하는 적나라한 정치적 목적과 선동적 표현은 존경받을 만 했던 저자들의 이전 연구결과에 대한 학계의 신뢰에 칼질을 가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해괴한 책을 출간함으로써 스스로 학문적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영훈 교수 등 저자들은 일제강점기, 그 잔인한 시대를 견뎌낸 조선인들의 삶은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조선 총독부 통계는 보면서 구체적 삶의 증언과 증거들은 무시했다.


▲ 일제강점기 징용 조선인 수백명이 수용되었던 군함도 시설과 노동자들. 갈비뼈가 다 드러난 앙상한 모습만으로도 당시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2017년 8월 공개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중 하나다. [국가기록원 제공]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불편한 허구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1910년 조선과 1945년 조선을 단순 비교해 그 차이가 식민지배의 성과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은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나라였다. 오랫 동안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리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많은 개발이 이뤄지고 경제가 성장했다면서 어떻게 된 일인가.


최중경 회장은 "국민의 묵직한 감성의 함성을 정연한 논리의 창칼로 바꿔 식민지근대화론을 베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다. 결국 "식민지근대화론은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불편한 허구'다.(허수열 교수)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