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령, 홍진과 최용건은 민족대표와 


빨갱이대표로 같이 북만주로 이동하게 


된다. 사실 대등하기보다는 최용건이 


보좌하는 관계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홍진은 임정(임시정부의 줄인말)의 


어른이고 최용건은 임정에 의해 키워진 


자식이라고 볼수 있으니까 말이다.  


유일당을 위한 노력은 삼부통합 국민부의 


탄생으로 빛을 보나 싶었지만 한 사람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바로 김좌진이다. 


당시 유일당에 적극적인 만주정파가 


신민부의 민정파였는데 군정파 수장인 


김좌진은 반대하고 "한인총연합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나가게 된다. 


그냥 나가면 좋았을텐데 민정파 


회의장소를 습격하여 여러사람을 죽게 


만들어버린다. 한마디로 난장 피우고 


나갔다고 할수있다. 국민부는 시작도 


전에 타격을 받아 어영부영 없어지게 


된다.  


김좌진의 말년을 말하려면 쇄락해가는 


영웅의 뒷모습을 보는거 같아 가슴이 


아프다. . 김좌진은 왜 난장을 피웠을까? 


이해 안가는 것도 아니다.


만주에서는 자신이 짱이었는데 


임정대표라고 나타나 우두머리로 모셔야 


한다니 짜증이 난거겠지. 독립운동에 


몸바친지 오래되었는데 일제가 망하기는


커녕 강해지기만 하니까 희망을 


잃었다. 


젊은 날 고생했으니까 만주 조선인의 


짱이나 되자고 생각한거같다. 한마디로 


젊은 날의 독립투사가 "군벌화"된 거다. 


거기다 김좌진의 한인총연합회는 


항일보다 반공을 우위에 두고 


있었다. 


김좌진은 모든 정파의 공적이 되었다. 


홍진 입장에서도 유일당에 방해되니 


제거해야 했고 빨갱이들도 제거해야 했고 


신민부 민정파도 제거했으면 했을 것이다.


결국 1930년 김좌진은 이복림이라는 


조선빨갱이 화요회 무장대원 이복림에게 


암살당한다. 누가 배후인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원래 큰 인물이 


암살될 때는 묻히는 법인거 같다. 케네디 


암살 배후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것도 


그렇다.. 조선인 중에 누가 감히 김좌진 


암살배후라고 나서겠는가? 공적이 될께 


뻔한데 말이다. 


당시 만주상황을 보면 암살배후는 


최용건이 유력하다. 최용건일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아직까지는 혼자 


주장하는거라 소수의견이라 할수 있는데 


사실 모두가 아는 비밀이기도 하다.


밝혀서 좋을것이 없으니까 모두 입 다물고 


있는거도 있고, 후일 중공 당사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겠다ㅎㅎ. 김좌진 암살배후가 


최용건이라는 이유를 말씀 드리겠다. 


김구 암살범이 백의사 안두희로 


밝혀졌을때 누가 제일먼저 배후로 


지목되었는가? 바로 안두희의 상관 


백의사 단장 염동진이다. 당시 최용건의 


직책은 세가지였다.


조선빨갱이 만주총국 군사부장이었고, 


유일당운동 만주빨갱이대표였고, 


중국빨갱이 빈현서기였다. 이복림을 


무장대원으로 키운 직속상관은 


최용건이다. 안두희의 경우에는 


염동진이 바로 나오는데 이복림의 


경우에는 최용건이 안나오니 신기할 


정도다.  


이복림은 방아간에서 두발로 김좌진을 


암살하고 도주한다. 김좌진 부하 두명이 


총을 들고 추격하는데 이복림은 도주하면서, 


추격자들마저 사살하고 도주에 성공하게 


된다.


6연발 권총이였다. 도주하면서 두명을 


4발로 죽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급소만 정확하게 저격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복림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특수부대원 


정도는 되는것 같다. 이복림은 나중에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항일연군 조상지의 


부대에서 합동유격사령관이 된다.  


누가 이복림을 키울수 있었을까? 최용건은 


전술했다시피 의열단원이었고 황포군사학교 


교관이었다. 정규군사훈련은 물론 암살 


등의 테러분야 교육까지 가능한 인재였다. 


그래서 만주로 오자마자 화요회 군사부장을 


맡을수 있었던 거고 이복림,허형식 같은 


무장대원을 키울수 있었던거지. 


최용건은 유일당운동 공동대표로써 


또한 화요회 군사부장으로써 김좌진 


제거압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제거하진 않았다. 그래도 만주하면 


김좌진이고 왕년의 전적이 있는데 바로 


제거할수 있겠는가.


이복림이 김좌진 밑에서 6개월을 


일했다고 한다. 김좌진을 끝까지 


설득하지 못하자 마지막에 읍참좌진했던 


것이다. 


만주는 김좌진의 죽음과 함께 민족계열 


주도의 항일운동에서 빨갱이 주도의 


항일운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만주항일운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30년대가 시작되게 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