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편..    마지막편..

 

 

  

김일성의 혁명활동 즉, 일제때 항일무장투쟁은 사실이지만,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터무니없이 강화하여 정권을 김일성 일가의 세습정권으로 만든


주된 책임도 확실히 김정일에게 있다.

 

 

또 김일성의 영도 밑에 축성해 놓았던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다 망쳐먹고


북한을 기아와 빈궁의 땅으로 전변시킨 주되는 책임도 김정일에게 있다.

 

그리고 북한의 문화를 수령절대주의 문화로 전환시킨 것도 김정일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북한 사회에 변형된


형태로나마 남아 있던 사회주의적 요소를 일소하고 북한 사회를 전체주의와


봉건주의를 결합시킨 전대미문의 개인독재체제로 전변시킨 책임이 바로


김정일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적의 면에서 평가한다면: 김정일은 <제로>(0)도 못되고


<마이너스>()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업방법과 작풍의 면에서 김정일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독재자로서의 성격 면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교해 보면 김일성은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는 독재자라는 인상을 주지만, 김정일은 성격상 타고난 독재자


같이 보인다.

 

 

김일성이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독재를 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김정일은 독재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1958년부터 1965년 4월까지 김일성의 이론서기로서 당중앙에서


당생활을 하였다.  그때에는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가 당사업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내가 1979년에 당중앙의 비서로 다시 중앙당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김정일이 당사업을 주관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중앙당으로 다시 돌아와서


너무 많은 것이 달라진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의 중앙당 생활이 국가의 최고 수뇌부에서 사는 기쁨과 긍지를 주는


생활이었다면, 다시 체험하게 된 중앙당 생활은 <독재의 고압선>바로


옆에 서 다칠세라 걱정하면서 잠시도 긴장성을 풀지 못하고 있는 불안한


생활이었다.


 

이전에는 중앙당 일군들의 당생활만 통제하는 본부 당위원회라는 상설적인


조직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에 와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본부당 위원회가


신설되었으며, 여기에는 중앙당 일군들의 조직생활을 지도하는 과와


사상생활을 지도하는 과, 그리고 비밀정보사업을 지도하는 과 등을


두고 중앙당 일군들의 생활을 2중, 3중으로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김정일은 사람들이 화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이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하고 오직 자기 한사람에게만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당조직 생활을 강화한다고 할 때에는 자기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규율을 엄격히 세우는 한편 회의를 열고 당원들이 서로 비판하게 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삼고 있다.

  

 

상호비판에서는 김정일의 사상과 지시에 충실하였는가, 충실하지


못하였는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호비판이 강화되고 당원들이


격렬하게 싸울수록 김정일의 권위는 높아지게 된다.

 

 

그는 당생활에서 무풍지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어떤 자그마한


결함이 나타나도 그것을 큰 사건과 같이 만들어(이것을 <사건화)라고 한다)


가지고 당세포들에서도 사상투쟁을 벌이게 하고 본부당적으로는


<대논쟁>과 <사상투쟁회의>를 빈번히 벌이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당원들의 생활을 잔잔한 상태에 두는 것을 반대하고


늘 풍파를 일으키고 들볶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김일성은 회의에서도


긍정적인 예를 많이 들어 사람들을 고무해주고 부정적인 것은 적게


비판하였다.

 

 

김일성은 늘 "긍정으로 감화하는 방법으로 부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부정을 비판하는 것을 위주로 할 것을


요구하며 강한 상호비판의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회의가


<혁명적>분위기 속에서 잘 되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또 회의에서 비판에 잘 참가하지 않는 사람을 혁명성이 없다고 배격하며


남의 결함을 목청을 돋구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을 혁명성이 강하고


수령에게 충실한 당원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투쟁하는 것을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므로 본부 당위원회에서 중앙당적인 <사상투쟁회>나 <대논쟁>을


조직하도록 지시한 다음에는 자기 집무실에 앉아서 <텔레비죤>


(폐쇄회로 화면)을 통하여 회의 정형을 자세히 살펴본다.


 

김정일은 정치적 지도에서는 각 부서들이 정책안을 제의서 형식으로


올려 비준(결재)받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그는 새로운 문제와 원칙적인


문제는 예외 없이 제의서를 제출하여 비준받도록 엄격한 제도를 세웠다.

 

 

이것은 김일성때에는 거진 없었던 현상이다. 당중앙위원회 안에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위시하여 여러 부서들이 있다.  부서에는


여러 개의 과가 있으며 몇 개과를 지도하는 부부장이 있다.


 

부서 책임자인 부장이 있고 몇 개 부서 또는 한 개 부서를 담당하여


지도하는 비서가 있다.  비서가 한 개 부서만 지도할 때에는 부장을


겸하게 되는데 대체로 큰 부서인 경우에 비서가 부장을 겸한다.

  

 

큰 부서에는 자기 부문 사업에서 독자적으로 책임지는 제1부부장이


몇 명되기 때문에 부장이 여러명 있는 것과 같다.  제1부부장은


부부장과 동격이 아니라 부장과 동격이라고 볼 수 있다.


 

매개 과에서는 정책과 관련된 제의서 또는 정세자료보고를 작성하여


부부장, 부장을 거쳐 비서에게까지 올라와 통과되면 매주 한번씩


부서별로 문건을 김정일에게 올린다.

 

 

현재는 그가 당총비서이지만 그 전에는 총비서대리인으로서 사실상


총비서나 다름 없었다.  당중앙 각 부서들에서 올리는 제의서들과


보고서들의 양은 방대하다.


 

내가 사업한 국제부만 해도 매주 30건40건이 되었다. 중앙당 외에도


내각과 외무성, 군대, 사회안전성, 국가안전보위부 등 직접 제의서를


올리는 단위들이 있다.

 

 

김정일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제의서는


모두 자기가 직접 보고 결론을 준다.  심지어 비서들이 직접 올린 문건인


경우 내용이 중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비준한 문건을 직접 자신이 특수한


봉투에 넣어서 친필로 비서이름을 쓰고 봉인하여 내려 보내준다.


 

이 모든 것은 방대한 작업량이지만 김정일은 이 사업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처리한다.   김정일의 중앙당 부서와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제의서>를 통한 사업이다.


 

그런데 제의서를 비준해 주는 형식에서 차이가 있다. 김정일이 자기


이름과 날짜를 친필로 써 준 것은 무조건 집행해야 할 법적 문건으로


된다.

 

 

날자만 써준 것은 제의서를 올린 부서가 책임지고 집행할 수 있다. 


줄만 두 개 써준 것은 집행해도 좋고 안해도 좋으니 부서결심에 따라


하라는 뜻이다.

 

 

중요한 부서들에서는 1주에 한번 제의서를 올리는 것 이외에 매일


수시로 모사전송기를 통하여 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결론을 받는다. 


이와 같이 김정일은 직접 사람을 대상(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의서>


라는 문건을 통하여 사업한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의 정치는 <제의서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김일성은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정치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일의 정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술파티>이다. 


 

김정일은 <술파티>를 자주 조직하는데 여기에는 예술인들이 참가하여


공연을 한다. 원래 이 파티는 김정일이 자기의 <가신단>을 꾸리기


위하여 마련한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자기가 신임하는 일군들을 참가시켜 술을 먹여놓고 그 성품도


검열하며 특히 측근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충성을 다하도록


만들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술파티인만큼 술을 잘 먹고 잘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자주


참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자리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듣고


말하게 되면 그것이 곧 정책으로 될 때가 있다.


 

술파티에서 술이 좀 취한 후에는 김정일 한 사람에 대하여서만 절대적


경의를 표할 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위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술파티에서는 김정일 한사람밖에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의 요구가 철저히 집행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은 이런 자리에서 집행하기 어려운 지시를 즉흥적으로 내렸다가


조령모해(朝令暮解)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래 김정일은


이해타산을 빨리 잘하지만 성격이 너무 급하고 변덕스러워 즉흥적으로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를 내릴 때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그는 한때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사람은 평양시계공장에서


생산한 국산품 시계를 차라고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주체>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양시계공장에서 생산되는 시계는 매우 낙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시계를 차고 외국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또 여성들이


흰 저고리에 까만색 치마를 입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으나 중앙당의


여직원 이외에는 이 지시에 잘 따르지 않고 있다.

 

 

그는 겨울에는 눈이 있어야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중앙당 구내에서는


눈을 치지 말라는 쓸데없는 지시까지 하였다.


김정일은 자기가 친필로 비준하여 준 제의서도 그 후에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제의서를 올린 사람을 비판하고 처벌한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교시편찬 과장은 김정일이 학생 때부터 비범한


사상이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을 동원하여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김정일 문헌집을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100%조작한 것이다.) 과장은 하나하나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출판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 내용이 어느 개인의 권위를 높여주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제기되자 과장과 문헌집필에 동원된 교수들을 처벌하고 문헌집을


전면 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김일성은 쓸데없는 형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사람들을

 

수령에게 절대 복종시키기 위한 형식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맹세문과 축하문 같은 것을

 

최상의 정중성을 다하여 올리도록 하였으며 김일성의 동상과 열사릉 에

 

화환을 증정하는 의식을 진행하게 하였다. 

 

 

또 명절 때마다 각 직장들에서는 수령께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모임을


하게 된다.  이때에는 먼저 김일성을 칭송하는 노래와 김정일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선서가 끝날 때는 김일성의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와


김정일의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김일성 때는 아래 사람들한테 선물을 보내거나 자기가 차리는 연회에


초청할 때 별다른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명절에 선물을 받을


때도 선물명세서를 책임간부들이 나가서 전달하고 배려에 보답하겠다는


<결의토론>을 5명 정도에게 시킨다.

 

 

또한 연회초대장도 책임간부들이 나가서 일정한 의식을 진행한 다음


초대장을 수여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수령의 배려로 느끼도록 하기


위한 의식이 많다 보니 김일성, 김정일에게 맹세문과 감사문을 올리는


모임도 자주 가지게 된다.


 

연말인 12월 31일 밤에는 국가적인 송년회 또는 신년맞이 모임이 진행된다. 


이런 경우에 김정일은 공식모임에는 참가하지 않고 측근자들,


티멤버들을 모아놓고 따로 논다.

 

 

그러다가 밤 12시나 새벽에 중앙당 부서 책임자들에게 "지난해에


모두 일을 잘했다. 새해에 더욱 분발하여 큰 승리를 이룩하자"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을 모사전송기로 보내준다.

  

 

그러면 정월초하루인 명절날에도 부서 책임자들이 비상소집을 하여


김정일의 신년 축하 편지를 받드는 의식을 하고 결의문이나 맹세문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김정일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정일은 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 주의사항을 강조하게 한다. 


그 하나는 당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적 간부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공개적인 것보다도 비밀리에 무엇을 하기 좋아하며 남이 잘 되는 것을


아하지 않고 질투하는 것은 김정일의 성격상 특징 같이도 생각된다.


 

김정일은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연회를 차리는 것보다 자기 측근자들을


모아 놓고 놀기를 좋아한다.

 

 

그는 낮에 일하는 것보다 밤에 놀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질투심이 병적으로 강하다.

 


김일성은 자기에게 충실한 부하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건방진 사람은 미워했지만 자기에게 충실히 복무하는 사람은


대중의 신망이 높다고 하여 질투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충실한 부하도 대중의 신망이 높으면 질투한다.

  

 

또 다른 나라에서 일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 지도자가


인민들 속에서 신망이 높아도 질투한다.



물론 이러한 김정일의 성격상 특징은 결국 그의 철저한 이기주의적


사상관점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공개할 수 없는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자질을 높이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원칙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과 모략의 방법으로 자기에 대한 환상을 조성해보려고 애쓴다.

  

 

그는 남한과의 경쟁에서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테러와 모략의 방법으로, 그리고 무력 침공의 방법으로


이기려고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으며 공개할 수 없는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그는 이러한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당생활에서 비밀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면서 신문에 공개된 것


이외는 모두 비밀이기 때문에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비밀이 새나간다고 하여 당중앙의 부부장 이상 간부들의 부인은 원칙상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김정일은 자기에 대한 우상화를


위하여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간부들에


대하여 좋게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숭배를 반대한다고 한다. 자기는 인민의 영도자이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지만 다른 간부들은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개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도당 책임비서가 일을 잘하여 인민들 속에서 신망이 높게


되면 꼭 교체해버린다. 때로는 인민들 속에서 개인에 대한 환상을 조


성하였다고 하여 <반당분자>의 모자를 씌워 숙청해 버리기도 한다.


 

그는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외의 인간관계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주의, 지방주의를 <종파의 온상>이라고 배격하며 동창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친목회를 모두 반대한다.

 

 

심지어 그는 사제지간 관계나 선배후배관계를 따지는 것도 반대한다. 


그의 요구는 "수령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깝게 지내고 수령과 먼 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곁가지>를 반대하도록 전당에 조직적으로


지시하여 김일성의 후처(김성애) 아들들인 이복동생들을 대중과


절연시키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웠다. 


 

김정일의 이복동생들로부터 사소한 선물을 받거나 편지를 받았다 하여


직위에서 파면되고 추방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반대중은 <곁가지>: (뜻:즉. 김일성 후처인 김성애의 자식들을 뜻함.) 


대상과는 인사도 하지 않고 만나서 악수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반대로 김정일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응당한


호의를 표시하지 않을 때에는 크게 노한다.   그는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있는 가무단을 매우 사랑한다.

 

 

원래 이 가무단들은 김정일을 위하여만 복무하게 되어 있지만 때로는


김정일이 당중앙 일군들에게 <큰 배려>를 돌려주어 그 공연을 보여


줄 때가 있다.

 

 

이때 중앙당 간부들이 박수를 잘 치지 않았다 하여 김정일은 중앙당


일군들 속에서 사상투쟁을 벌이도록 지시한 일이 있다.  그 후부터는


김정일이 사랑하는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볼 때는 중앙당 간부들이


손이 아프고 팔이 저릴 정도로 오랫동안 박수를 쳤으며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몇 번 막이 올랐다 내렸다 할 때까지 박수를 치고 더 이상


공연자들의 반응이 없어야 자리를 뜨게 되었다.


 

김정일은 자신을 무조건 따르는 추종분자들을 동원하여 자기를 세계가


공인하는 대정치원로로 21세기의 태양으로, 만능의 천재로 떠들게


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떠드는 북한의 수령의 위대성과 북한의 비참한 현실은


천양지차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확실히 김정일의 독재는 가혹하고


그의 독재 능력은 탁월하다. 

 


그는 바로 이 <탁월한> 독재능력으로 자기 아버지를 망치고


북한 사회를 망쳤으며 그를 추종하는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망치고 있다.

 

 

앞으로 그가 이 탁월한 독재능력에 의거하여 남한과 외국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고 7천만 우리 동포들에게 유례 없는 재난을 가져오지 않을 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  과거 황장엽의 글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