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을 성폭행하고 계엄군에게 뒤집어씌운 폭도들의 만행


5.18국가유공자들 중에는 광주사태 기간 중 여성을 강간한 성폭행 범죄자들도 여러 명 있는데, 그 경위는 광주사태 때 여성을 강간한 무장시민군들을 광주사태가 끝난 후 주민들의 신고로 잠시 유치장에 수용되어 있었고, 1980년 여름에 단 하루라도 유치장에 수용되어 있었으면 모두 5.18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18국가유공자들 중에 성폭행 범죄자들이 있는 점이 시정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광주사태 38주년 기념식 때 문재인이 내린 지시는 그 방향이 거꾸로 가는 지시였으며, 그 황당한 지시에 따라 6월 8일 ‘5.18 계엄군 등 성폭력 조사단’이 출범하였다.

jtbc 방송에서의 김선옥의 미투
 

1. 김선옥이 5.18 국가유공자가 된 근거

    김선옥이 대한민국 국군에 엄청난 누명을 씌우는 미투 증언을 하여 그녀가 5.18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계기로 2001년에 김대중 정부가 그녀를 5.18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근거는 단 하나, 1980년 5월 25일 저녁에 그녀가 악성 유언비어를 방송한 것이라는 데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전남대 음악교육학과 4학년 학생이었던 김선옥은 본래 운동권도 시민군도 아니요, 그녀가 5월 22일에 도청에 들어온 목적은 시민군 활동이 아니라, 김창길 학생을 도와 무장반란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좋은 목적으로 도청에 들어왔지만 거기에는 간첩들도 들어와 있었고, 그 중 한 명의 간첩에게 속아 그녀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방송을 하여 역사의 격랑의 회오리 속 중심에 있게 되었다.

광주에서 중학생들의 총기 반납을 호소한 최규하 대통령 

    본래는 최규하 대통령과 김선옥이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민간인들이 5천 정이 넘은 총과 30만발이 넘는 실탄과 수십 톤의 다이너마이트 폭발장치와 수백 개의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었을 때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기 회수였다. 그런데 강제로 회수하면 시민군과의 전투 중에서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자진 반납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김선옥의 목적 역시 폭도들을 설득하여 자진해서 무기를 반납하게 하는 것이었다.

    김선옥은 처음 나흘 동안은 도청 안 상황 파악이 안되었다. 지금도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은 윤상원은 중남미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벤치마킹하여 광주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체 5.18 사기꾼들에게 속고 있다. 하물며 김선옥이 그때 누가 어느 편인지를 빨리 파악할 수 있었겠는가? 전남대 명노근 교수의 요청에 따라 김창길 학생이 무기 반납을 위한 수습위원회를 만들었으나 어느새 북한군(혹은 간첩)들도 수습위원회 완장을 차고 있었으므로 외관으로 피아 구별이 안되었다. 수습위윈이었던 김선옥은 누가 시키는 일을 하였고, 그러다보니 불순세력이 시키는 일도 하여 불순세력에게 이용당하기도 하였다. 5월 25일 광주를 방문하신 최규하 대통령은 중학생들이 총을 가지고 다니며 아무데나 총질을 하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아 중학생들의 무기 반납을 호소하시는 연설을 하셨다.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께서 연설을 하신 시점이 광주사태의 향방을 위한 중요 시점이었다. 그때까지는 도청 안에서 김창길을 중심으로 한 애국 학생들 및 애국 청년들과 윤상원을 중심으로 한 무장반란파의 백중지세였다. 그러나 그 날 최규하 대통령 연설이 방송된 직후 김선옥이 불순세력에게 속아 한 유언비어 방송이 저울 추가 무장반란파로 기울어지게 하였다. 오후 8시경에 도청 상황실에서 김선옥은 (간첩으로 추정되는) 30세 가량의 폭도가 써주는 대로 방송 마이크를 잡고 "방금 들어온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산수동에 사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시민 여러분 깊은 애도를 표하여 주십시요"라고 악성 유언비어 방송을 하였다. 최 대통령은 중학생 무기 반납을 호소하셨고, 김선옥은 중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허위 사실 유포로 최 대통령의 호소를 무력화시켰다. 당시 도청 상황실 방송은 광주 전 지역에서 들리는 방송이라 그 영향이 아주 컸다.

    김선옥의 악성 유언비어 방송이 무장반란파가 도청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일조하였으며, 그 방송 직후 윤상원은 임시혁명정부에 상응하는 기구를 조직하고, 무기 반납 조건으로 최규하 대통령 퇴진을 내걸었다.

2. 경찰에 성폭행 당하고 국군에 누명을 덮어 씌운 김선옥의 미투

    김선옥이 비록 본의 아니게 불순세력에게 순간적으로 이용당한 것이었지만 유혈 폭동 심리를 자극하는 악성 유언비어 방송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말의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난 5월 초에 jtbc와 한겨레신문과 5·18영창특별전 등 여러 채널을 통해 5.18을 더욱 왜곡하는 미투 증언을 하였다.

    언론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처럼 김선옥이 계엄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광주사태는 5월 27일 아침에 끝났고, 광주경찰서 수사관들이 담양 창평중학교에서 교생 실습 중이었던 그녀를 검거한 날은 7월 3일이었으며, 그때 광주에는 계엄군이 전혀 없었다. 당시 수사를 계엄사에서 한 것이 아니라 합동수사본부에서 하였고, 합동수사본부의 주체는 광주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이었고, 단지 몇 명의 군 검찰관이 보조 역할을 하였을 뿐이었다.

    7월 3일 ‘여자 대빵 데리고 왔구먼. 얼굴이 반반하네. 데모 안 하게 생긴 년이. 너 이년, 인자 무기징역이다’라고 말한 수사관들은 군인들이 아니라, 광주 경찰들이었다. 중앙일보는 "폭행과 고문으로 점철된 조사가 끝날 무렵인 9월 4일"이라고 하였으나 (http://news.joins.com/article/22605595 ), 그녀는 폭행과 고문을 받지 않았다. 그녀가 검거된 이유는 먼저 연행된 시민군들이 진짜 주동자들이었던 윤한봉과 이재의와 윤상원 등 광주운동권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그녀의 이름을 댔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눈에 보아도 수사할 이유가 별로 없어 경찰 수사관이 7월 4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잠깐 조사하고, 군 검찰이 8월 5일 단 한번만 몇 분간에 걸쳐 몇 개의 질문을 하였을 뿐이다.

     "무너진 스물세살 대학생의 꿈…출소전날 수사관이 성폭행" 제하의 2108년 5월 8일자의 박준배 기자의 기사도 악의적 소설에 가깝다. 박 기자는 김선옥이 광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이감돼기 전 고문 수사를 받은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그녀 담당 수사관이었던 경찰 경사 장광식이 작성한 총6매의 조서 중 끝 페이지를 제시한다. '2. 조치 및 의견'에서 장 경사가 김선옥의 허물을 따듯하게 덮고, 마치 변호사처럼 그녀를 변호하며 불구속 입건 의견을 내는 것이 눈길을 끈다. 요즘 인권변호사 문재인의 악질 정치 검사들이 없는 죄를 만들어 내며, 아무 죄도 없으신 박근혜 대통령을 2년 넘게 구속하고 있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7월 4일 경찰이 작성한 김선옥 조서

▲ 김선옥이 검거된지 하루만에 작성된 조서. 최근 여론몰이하는 가짜 뉴스와 달리 김선옥 담당 수사관은 계엄군이 아닌 경찰이었다.


     박준배 기자는 김선옥이 "광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이감돼 하루종일 무릎꿇고 지내야 하는 힘든 영창생활을 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말은 유치장 안에서는 눕거나 쉬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꼿꼿한 정좌 자세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사실의 수사적 표현인데, 그러면 왜 박 기자는 인권변호사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유치장 규칙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가? 김선옥은 최장 구속 기간 6개월을 다 채우지도 않고, 불과 두 달만에 바로 석방되었으며, 수갑을 차고 재판정에 끌려나간 적도 단 한번도 없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아주 짧은 영창 생활은 지금 일부러라도 하고 있으며, 김선옥의 경우 그 보상으로 거액을 지급 받았고, 자녀에게 상속되는 5.18국가유공자 특혜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인권변호사 정부는 이미 70세 가까운 고령에 허리가 아프신 박근혜 대통령을 최장 구속기간 6개월을 훨씬 넘겨 벌써 16개월째 유치장에 감금하고 잠시도 누으시거나 쉬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 엄격한 유치장 규율을 6개월 이상 강요하면 인권 침해이므로 헌법이 최대 구속기간이 6개월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인권변호사 문재인 정부가 국법을 어기며 인권유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시론] 5·18 계엄군 성폭력 의혹 철저히 규명돼야" 제하의 2018년 6월 8일자 연합뉴스 기사는 이렇게 사실을 왜곡한다: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맡았던 김선옥 씨가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으며..." (연합뉴스 2018.06.08).

    9월 4일이면 이미 계엄이 헤제된지 한참 지난 때라 광주에 계엄군이 존재하였을 리 만무하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연합뉴스는 모르는가? 더구나 김선옥 본인도 수사관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하였지 계엄군에게 당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김선옥은 광주사태 때 군인 그림자도 본 적이 없었으며, 광주사태가 끝난지 5주 지난 7월 3일 검거된 후 군인을 본 때는 8월 5일 군 검찰관을 잠깐 대면한 것이 전부였다.

    김선옥은 계엄군이 아닌 경찰 간부에게 성폭행 당하였다. 우리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그녀는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에 8월 5일 한 명의 군 검찰관이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잠깐 그녀를 대면한 것 외에는 그 어느 군인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경찰서 유치장은 군인이 접근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어느 군인이 전혀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여자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광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찾아올 수 있는가?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군복을 벗어야 하는 중징계를 받을 것이다.

    가해자 인적 정보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는 달랑 이 한 줄뿐이다:

    폭행과 고문으로 점철된 조사가 끝날 무렵인 9월4일, 소령 계급을 달고 계장으로 불리던 수사관이 김씨를 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갔다. 수사관은 비빔밥 한 그릇을 사먹인 후 여관으로 데려가 김씨를 성폭행했다 (중앙일보 2018.05.06).

    경찰관도 계급장을 단다. 따라서 김선옥이 보았다는 소령 계급장은 경찰 계급장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더구나 계장이라는 호칭은 군인에게는 없고 경찰에게만 있다. 계장은 경찰서장을 지칭하느 호칭이다. 만약 가해자가 군인이었다면 군인은 명찰을 달고 있기 때문에 김선옥이 가해자 성명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군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광산경찰서 유치장 안에 수감된 사람을 외출시키는 권한을 가진 이의 범위는 광산경찰서 서장으로 좁혀진다.

    7월 22일 발행된 아래 문건도 김선옥 씨에 대한 구속집행 권한이 군인이 아닌 경찰관에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창현은 경찰관 중에서 소령이란 계급을 사용하던 유일한 경찰관이다. 그러나 조창현 경찰관이 김선옥의 구속 집행 확인을 해 준 날은 7월 22일이고, 김선옥이 성폭행 당한 날은 9월 5일이므로 그가 가해자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선옥 구속 확인서 

▲ 김선옥 구속과 석방 권한은 군인이 아닌 경찰관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건.


    7월 25일자의 아래의 두 장의 피의자 심문조서도 김선옥을 수사한 수사관들은 경찰관이었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이 심문조서를 작성한 두 명의 경찰관은 김광식 경사와 전봉직 경장이었다.

피의자 김선옥 심문조서 첫 페이지
피의자 김선옥 심문조서 끝 페이지 

    전기한 바와 같이 김선옥은 광주사태 때 군인 그림자도 본 적이 없었으며, 무장군인은본 적이 없었고, 그녀가 딱 한번 본 유일한 군인은 군 검찰관뿐이었다. 8월 5일 검찰관 중위 김주덕과 검찰 서기 하사 박규성을 대면하여 몇 분간 형식적인 간단하고 짦은 문답이 있었다. 이것이 요즘의 문재인의 악랄한 정치검사들처럼 없는 죄를 만들어 엮기 위한 심문이 아니라, 빨리 석방되도록 돕기 위한 요식 절차였다. 그 후 열흘이 지난 8월 16일 기소 유예 결정이 내려지고, 9월 5일 석방이 집행되었다. 김선옥이 도청 방송실에서 에비군 스피커망을 통해 광주 전지역에서 들리는 마이크를 들고 악성 유언비어 방송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은 크게 엮일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군 검찰관은 그런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그녀에게 최대로 유리하도록 공을 들여 짧은 조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날짜가 8월 5일이요, 김선옥이 성폭행 당한 날은 9월 4일인데다가 군 검찰관 김주덕의 계급은 중위였고, 그녀가 본 가해자 계급장은 무궁화 하나만 있는 계급장이었으므로 김 중위가 가해자가 아닌 것은 아주 분명하다. 경찰관 계급도 무궁화로 표시되므로 김선옥이 본 수사관 계급장은 계장으로 호칭되던 경찰서장급 경찰관 계급장이었음이 분명하다.


3. 시민군의 집단 성폭행 탄로나게 한 문재인의 자충수


    "‘5.18 계엄군 등 성폭력 조사단’ 출범…피해 접수·조사 착수" 제하의 6월 8일자 KBS 뉴스에서 김채린 기자가 "계엄군이 여성들만 골라 차에 태워 납치한 뒤 어둑어둑한 야산에서 성폭행했다"고 보도하면서 "백운동 어디! 백운동 쪽으로"라고 적힌 5.18기념재단 구술 채록 자료"를 보여주는 순간 백운동에서 시민군에 의해 자행된 집단 성폭행 범죄가 드러난다 (https://youtu.be/BLzyqScVH_Q 0:19-0:24).


    시민군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 Y씨의 경우 벡운동과 남평을 왔다갔다하며 나주에서 무기 탈취하던 시민군 다섯 명에게 집단 성폭행당하였다. Y씨는 그때 경신여고 1학년이었고, 집은 남평에 있었으며 남평에서 무기탈취하던 난동자들이 시민군 군용트럭에 그녀를 태워 백운동 인근으로 태워와 저녁에 성폭행하였다.

    Y씨의 구술 채록에서 김채린 기자가 보도하지 않은 중대 사실이 있다. Y씨의 경우 1988년 이후의 정신질환의 원인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막 출범하면서 그녀에게 2억 천만원이 넘는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여 주었는데, 오빠가 오늘날의 수십 억원에 해당할 당시로서로는 꽤 거액이었던 그 돈을 자기가 관리해 주겠다고 하였고, Y씨도 아직 20대 초반의 미혼녀라 가만 있었는데 오빠가 그 돈을 전부 떼먹었고, 어언 30년이 지나 Y씨는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는데도 언론이 그녀 인터뷰를 하는 최근에야 천 칠백만원만 되돌려주어 재판을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가 오빠에게 떼인 보상금을 되돌려 받을 길을 하소연하였으면 KBS가 그런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인권변호사 문재인도 그 문제부터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자들을 군용트럭에 태우고 다닌 시민군들 

▲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무수한 사진들과 문헌들은 시민군들을 여성들을 군인트럭에 태우고 백운동 일대를 누빈 사실을 보여준다.


    "계엄군이 여성들만 골라 차에 태워 납치한 뒤 어둑어둑한 야산에서 성폭행했다"는 김채린 기자의 자기 말로 바꾼 표현이지 Y씨 본인의 표현이 아니다. Y씨 말은 자기가 군인 트럭에 실려갔다는 것이고, 여자들을 군인 트럭에 싣고 다닌 폭도들은 백 프로 시민군들이었다. 김채린 기자와 KBS는 광주사태 때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백운동에 간 적이 있는지의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가? 만약 김채린 기자가 이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이것은 KBS는 물론 문재인도 개망신을 당하게 될 언론 사고. 가짜뉴스 사고이다.

여자들이 시민군 차를 타고 다닌 사실을 증언한 김정순

▲ 무장시민군들이 여자들을 시민군 차를 타에 테우고 전라도 전 지역을 누빈 사실을 증언한 일신방직 여공 김정순 (김정순 1991, 164),


    서울에서 출발하여 밤새 열차 타고 5월 19일 광주에 도착한 11공수여단에는 트럭이 없었다. 여성 등 많은 사람들을 군용트럭에 태우고 백운동 등 광주외곽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유일한 무장세력은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이에 아세아자동차에서 군용트럭과 지프 등 6 백 여대의 차량을 탈취한 시민군뿐이었다. 폭도들이 도청을 점령하려 하니 도청 기밀문서를 사수해 달라는 광주경찰의 요청에 따라 공수부대는 도청을 사수하고 있었을 뿐 전혀 광주외곽으로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김채린 기자와 KBS와 문재인을 다음 둘 중 하나라도 입증을 해야 한다: (1) 광주사태 기간 중 계엄군이 백운동에 간 적이 있는지를 입증해 달라. (2) 5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계엄군이 단 한번이라도 여자를 군용트럭에 태운 적이 있는 지의 여부를 조사해 달라.

    광주사태 때 무장폭도, 즉 시민군이 총 들고 자기 집에 침입하면 시민들이 강도사건 신고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 게다가 총 들고 민가에 침입한 자들 중에서는 여성을 강간한 자들도 있었다. 광주사태가 끝난지 70일 지난 후 광주의 한 경찰서장에게 성폭행 당한 후 그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국군에 누명을 씌우는 미투 고백을 하였던 김선옥은 보급부장 천순남의 조원이었는데, 5월 25일 저녁 8시 반경에 김선옥이 간첩이 적어준 쪽지대로 악성 유언비어 방송을 하고 있었을 무렵 천순남은 황금동에 무장강도가 출현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했었던 일화를 이렇게 증언한다:

    궐기대회가 끝나고 9시경 도청으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여섯 명이 함께 있었는데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고 동지애 하나로 행동하고 있었다. 무전기 3대를 우리가 탄 차에 배급받아 그날 저녁 상황을 판단하여 위험한 일이 있으면 도청에 알리기로 하였다. 상무관 앞에서 차에 타고 대기하던 중 밤 10시경 무전기로 "황금동 콜박스에 강도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버스를 타고 황금동 콜박스 거리로 갔는데 어디에서 강도사건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순남 1988).

    서류 조작에 의한 가짜 5.18민주유공자들 말고 정말로 상무대 영창 생활을 했었던 5.18민주유공자들은 5.18민주유공자들 중에 강간범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 그런 사실을 양심선언하거나 증언했었다. 왜냐하면 상무대 영창에 수용된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광주사태 때 성폭행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거나 도둑질을 한 무장폭도들도 모두 5.18민주유공자로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아래 손남승의 증언은 실로 5.18민주유공자들 중에 강간범이 있다는 사실의 증거들 중 하나이다.

시민군 성폭핵범에 대한 증언

    손남승은 윤상원과 이재의를 돕는 전남대 운동권 학생으로서 광주사태 당시 도청 상황실에 근무하며 무장반란 일지를 기록하였다. 당연히 손남승은 5.18측과 시민군측에 가장 유리하게 증언을 하였지만 그래도 무장시민군들 중에 강간범들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시민군 전투조는 대부분 북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시민군이라고 부르는 광주시민들은 모두 기동순찰대 대원들이었다. 경찰이 모두 도망간 광주에서 경찰 대역을 하는 무장단체를 기동순찰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5월 22일 이재의가 임명한 기동순찰대원, 즉 시민군이 총을 들고 광주시를 순찰하다가 가정집에 무단침입하여 여자를 강간한 사실을 손남승은 이렇게 기록한다:

24일 밤에는 차량도 배분되고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특히 치안유지에 신경을 썼는데, 도청 주변의 빈 건물 등의 요소요소에 2인 1조의 정찰조를 파견했다. 이들에게는 랜턴과 총을 지급해서 보냈다. 무전을 때리고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한번은 노동청에 파견했던 1명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노동청은 이미 불에 탄 뒤라 텅 비어 있었다. 확인조를 보냈는데 그들이 정찰나갔던 그 사람과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자기는 집에 있는데 정찰나갔던 남자가 총을 들고 와서 위협하여 강간했다고 했다. 당시 상황실 옆에는 치안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치안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다음에 경찰이 제 기능을 찾을 때 그곳에 넘겨주기 위해서 그는 조서를 작성했다. 근무하라고 파견해 놓았더니 범법행위를 했다 해서 그 사람은 손을 뒤로 묶인 채 많이 맞았다 (손남승 1988).

    손남승의 증언과 관련하여 첨언하면 문재인의 자충수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사실은 문재인의 애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비화이다. 어째서 윤상원을 위한 시민군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만 있고 시민군 대장 박남선을 위한 시민군 노래는 없는 것인가?

    박남선의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중퇴였고, 방위병 근무를 하였으며, 광주사태 일어나기 1년 전에도 폭력전과가 있어서 집행유예 신분이었다. 그런 그가 M16유탄발사기를 들고 다니며, 공수특전단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니 운동권 학생 손남승은 물론 윤상원도 깜쪽같이 속았다. (손남승이 속으니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자도 속아 시민군 대장이 공수부대 예비역 장군으로 등장한다.) 5월 25일 저녁 김선옥의 악성 유언비어 방송 직후 윤상원은 박남선을 상황실장으로 임명하며, 그를 상황실장으로 임명한지 불과 30시간만에 그의 M16유탄발사기 오발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방위병 출신 박남선이 공수특전단 출신을 자처하며 스스로 시민군 대장 행세한 것이 거대한 5.18 사기극의 시초였다. 만약 문재인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려면 5.18 의 도덕성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5.18 성폭행 의혹만 조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박남선의 군 복무 기록도 조사하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앞에서 우리는 Y씨는 백운동 인근에서 다섯 명의 시민군에게 집단 폭행한 사실을 살펴 보았다. 주월동이 백운동 인근이었으며, 주월동에는 시민군 행세하는 강도들과 도둑들이 우글거렸다. 5월 26일 아침에 박남선은 역시 자기처럼 중학교 2학년 중퇴 학력의 19세 윤석루를 기동타격대 대장으로 임명하고, 기동타격대 조직을 그에게 맡겼다. 윤석루는 훗날 김대중이 평민당을 창당하였을 때 김대중 경호원으로 특채된 인물이다. 윤석루는 광주사태 당시 주월동에는 무장폭도들과 난동자들이 우글거렸던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25일부터 이재호씨와 기동타격대를 조직했다. 기동타격대라니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외곽 치안책임대였다. 행정이 공백상태였기 때문에 이 상태를 메꾸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급한대로 포스터를 제작, 외곽지대를 돌며 붙이고 다녔다.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다음 번호로 전화하라」는 내용이었다. 25일 저녁부터 강도 도범 포격범 등을 신고받아 몇 명 잡아내기도 했다. 우리는 조사 능력도 없고 범인들을 데리고 있는데 문제가 있어 이들을 계엄사에 넘겨줬다. 특히 주월동 신우아파트 난동자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月刊朝鮮 특별취재반 1988, 433-434).

    주월동을 누비던 무장강도들과 도둑들과 난동자들은 오늘날 5.18민주유공자 행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민들의 신고로 윤석루가 기동타격대를 인솔하고 출동하여 체포하였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결국 윤석루의 기동타격대는 5.18민주유공자들을 체포하였던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금번의 문재인의 자충수를 계기로 드러나는 사실들 중의 하나는 5.18민주유공자들의 명단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