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후보자가 감히 “국민 여러분은 개, 돼지, 지렁이만도 못합니까”라고 외칠 수 있을까.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가 한창이던 1985년 이맘때 ‘신민당 돌풍’으로 유명해진 2·12 총선이 실시됐다. 당시엔 후보들이 모여 정견을 발표하는 합동유세가 있었다. 서울 어느 유세장에서 신민당 후보가 연설을 그렇게 시작했고, 청중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며 웅성거렸다. 그런데 곧바로 “개·돼지도 자유를 뺏기면 멍멍 짖고 꿀꿀대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전두환 독재에 왜 침묵합니까. 앞장서 싸울 테니 찍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고, 환호가 쏟아졌다.


가마득히 잊고 있던 35년 전 기자 초년생 시절의 취재 기억을 되살린 것은, 바로 그 민주화 세력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권의 모습이 당시에 그토록 반대했던 5공 체제를 닮아가기 때문이다. 코드 인사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채우고, 군소 야당을 끌어들인 ‘4 + 1’로 입법부를 행정부 시녀로 만들고, 교묘한 궤변과 현란한 이벤트 및 관변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장악하려 든다. 그런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된 최근엔 국민을 개·돼지인 양 여기는 행태까지 적나라해졌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고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권력범죄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겁박하며, 청와대 선거 개입 공소장 공개까지 막았다. 검찰을 권력 주구로 만들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도 개혁이라고 우긴다. 위헌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더니 준비단장에 친문 인사를 앉혔다. 이젠 계면쩍어하는 기색조차 안 보인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대응 혼선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그대신 신속한 재정 집행과 적극적 가짜 뉴스 대처를 지시했다. 여당 지도부는 5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다”고 했는데, 그 뒤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여당의 가짜 뉴스부터 엄정히 다뤄야 함에도 야당과 언론 탓을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일자리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고용의 질도 개선됐다고 했는데, 역시 가짜 뉴스다. 세금으로 유지되는 허드레 일자리를 100만 개 이상 만든 데 따른 눈속임이기 때문이다.

흠결투성이의 코드 인사들을 막무가내로 임명하는 것은, 일단 취임하면 국민은 금방 잊어버리고 그들에게 굽실거릴 것이란 확신 위에서 가능하다. 정책 실패 탓에 젊은 세대의 내 집 꿈은 멀어지고, 집 한 채 일군 중산층은 세금 폭탄에 시달리게 됐음에도 투기 탓으로 돌린다. 북핵 위협이 더 커졌음에도 국민에게 계속 대북 환상을 주입한다.

그런데 이런 속임수 전술이 통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데 더해 천문학적 국가 채무까지 떠맡을 3040세대는 문 정권의 최대 피해자이지만, 여전히 확고한 지지층이다. 국민 절반 가까이는 콘크리트 지지층이고, 나머지의 절반 정도는 재정으로 ‘매수’하면 그만이다. 자식보다 매월 기초연금 30만 원 주는 문 정부가 낫다는 노인도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35년 전과 현재 정치 상황에는 유사점이 상당히 많다. 당시 여당은 1·2중대로 불리던 관제 야당을 거느렸다. 1구2인 중선거구제에다 비례대표 3분의 2를 제1당이 갖는 선거법으로 여대야소를 제도화해 놓았다. 야권은 정통 야당인 신민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어 신한민주당으로 등록해야 했다. 김영삼·김대중과 이철승·이기택 등 다양한 세력이 뭉쳤고, 선거를 겨우 25일 앞두고서야 창당을 완료했다. 야당의 종로 후보 논란도 컸는데, 원로 이민우 씨를 공천해 대성공을 거뒀다. 불리한 선거법을 돌파하기 위해 특정 지역엔 복수 공천을 하고 ‘아빠는 A 후보, 엄마는 B 후보’ 캠페인도 했다. 지금 비례정당 고육책과 같은 맥락이다.



정당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권은 경제에 집중해 상당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도 국민은 2·12 총선에서 가차 없이 심판했다. 결코 개·돼지가 아니었다. 다수 의석은 유지했지만 정권 몰락이 시작됐다. 문 정권 후반 들어 경제·안보는 추락하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친다. 이러니 운동권 정권이 쿠데타 세력보다 나라를 더 망친다는 얘기도 나돈다. 4월 총선은 어떨까. 국민의 개·돼지 여부는 물론 국가 흥망과 문 정권의 운명도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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