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는 통일이 좋아요 12.한국전쟁 전후의 100만 민간인학살-학살의 참상(2)

 

 

1. 해방 직후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 4·3 항쟁

1947 31일 경찰에 의해 시위군중 6명 사망,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다.

4.3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으며 테러와 고문이 잇따랐다.


홍보동영상 4.3 다큐 영상

 

 

2. 1948 4 3 ~ 1954 9 21일까지의 민간인 학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 제주 4.3

 

 

3. 동족의 가슴팍에 총부리를 들이댈 수 없다며 일어섰던 14연대의 봉기, 10.19 사건

여순 반란을 진압했던 국군 지도부는 상당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출신이었다.

1948 10 19일부터 10 27일까지 민간인 학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 - 여수 14연대 반란

 

 

4. 자신의 권력 유지의 핵심이었던 악질 친일파들의 청산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이승만

그는 노골적으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194897 ~ 1949 6 6일 친일청산의 실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32 - 반민특위 - 승자와 패자

 

 

5. 사라졌던 '역사의 법정', 친일파 청산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1949 66, '특위습격 사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2 - 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6. 전쟁 초기, 30만 보도연맹원 대다수는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무참히 학살됐다.

1949 6 5일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조직했던 대한민국 반공 단체, 국민보도연맹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9 - 보도연맹 l - 잊혀진 대학살

 

 

7. "쌀 준다" 해서 도장 찍었는데, '살생부' 된 희대의 살인극

[이제는 말할 수 있다] 30 - 보도연맹 ll - 산 자와 죽은 자

 

 

8. "대구, 부산 방면으로 피난을 시켜주겠다" 그리고 그들은 총을 쏘았다.

1950 726일 부터 1950 7 29일 민간인 학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9 - 노근리 사건의 진실

 

 

9. 학살 전에 이미 학살 할당량이 정해져 있었다!

1950년 말부터 1951년 초 민간인 학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4 - 00사단의 사라진 작전 명령서

 

 

10. 노무현 전대통령, 2006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해야"

 

 

 

국민 여러분,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하나하나 매듭지어갈 때,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4.3위령제 추도사 중 발췌, https://goo.gl/Cg7U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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