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
… 시다공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 저는 …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1개월에 …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 숙련여공들은 … 대부분 …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 2명이나 3명 정도를 …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 …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알지를 못합니다. …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한시 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969년 12월 19일, 전태일

 

 

 

현대사(국사) 교과서의 오류


- 독립군소탕한Okamoto박정희와 사실은 17번째인 97년 IMF

97년 외환위기를 한국동란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하였으나

최근 수년 동안 다수의 경제학자, 언론학자에 의해 과거 군사 독재 치하에서 은폐되어왔던

사례 즉 74년, 80년 5월 등 다수의 IMF 사태가 조사 연구됨.
특히 전 경제 부총리 정인용의 회고록에 의하면 한국은 65년부터 97년까지

총 17회 IMF에서 구제 금융을 받았고 오일쇼크 당시에는 모라토리움(국가부도)까지 당했음.

(외환외자 외곬 인생 40년 : 중앙일보 2001년 4월 11일, 4월 25일자)

94년, 95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의 위기를 예견한

폴 크르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라는

논문에서 60, 70년대 한국은 탁월한 노동력 때문에 선진국의 자본이 투입되어 경제가 발전하였으나

당시 정권은 양적 팽창만을 추구 - 이와 같이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을 추구하지 않는 근본이

잘못된 국가는 한계를 초래한다고 에언.
독립군소탕한Okamoto박정희 정권은 당시 경제위기를 1, 2차 오일쇼크로 포장하여 면피하였다.

그러나 경쟁국인 대만과 싱가포르 등은 만성무역흑자, 채권국가였으나

한국은 베트남, 서독, 중동 등에서 수백만 이상의 국민들이 천문학적인 외화를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의 실정으로 만성 무역적자, 재정적자 등으로 당시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와 함께 세계 4대 채무국가로 전락하고 국가부도 상태인 모라토리움까지 겪음.
97년의 경우 순외채가 GDP의 10% 규모임. 그러나 79년의 경우 약 50%이었음. 70년대 초반과 79년 이후 기업의 채무 재조정 금액은 97년 이후와 대비하여 각각 4배와 2배 규모임.
또 97년의 경우는 단기 유동성 부족 상태이나 7

9년의 경우 외채위기, 외환위기, 국가재정위기의 복합물임.

오죽 심했으면 전두환의 취임공약이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었겠는가?

그 후에도 경제위기가 지속되다 ''''프라자 협정'''' (85년)에 의한 3저 호황으로 구조조정을 지속하지 않아 97년 또 외환위기를 겪게 됨.

독립군소탕한Okamoto박정희의 치적이라고 하는 경부고속도로도 당시 정권 하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오원철의 회고록에 의하면 전국차량대수가 4만대 수준으로 관료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함.

박정희는 서독, IBRD 등에서 경제성을 이유로 차관을 거절하자 일본에서 외채를 들여와 건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전국 차량대수 100만대인 85년이 건설 적정 시기라 함.
또 설계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강남 일대는 정치자금 조달 목적으로 전문가들이 설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

 

 

 

 

전 뇌무현도 싫습니다...그렇다고 박통도 싫습니다..

 

다만..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는게 보기싫어 이렇게 글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