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쇠고기 발언 삭제 요청'을 폭로해 주목을 받았던 <코리아타임스> 김연세 기자가 8일 청와대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단 운영위원회는 8일 회의를 열고 김연세 기자에 대해 "9일부터 1개월간 청와대 출입을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출입기자단 운영위원회에는 인터넷매체를 제외한 신문사, 방송사 기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연세 기자는 이날 오전 한승수 국무총리의 '한미 쇠고기협상' 대국민 담화 발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미국을 순방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보다 먼저) 한미 쇠고기 협상 소식을 전한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친 사실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비보도'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동관 대변인이 대통령 '쇠고기 발언' 비보도 요청"

 

김연세 기자는 질문 과정에서 "한국에서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을) 발표하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 CEO들과의 간담회 때 그곳 참석자들한테 미리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고 웃으시면서 말했고, 박수치는 것들이 TV에 나왔었다"며 "처음에 박수를 유도한 것은 한국인 참석자였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어 "취재를 끝내고 나왔는데 청와대 관계자들이 한다는 얘기가 '이것은 한국에서 농식품부가 발표할 것이니까 대통령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 쇠고기 발언은 전부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공개했다.

 

김 기자는 또 "당시 호텔(프레스센터)에 있던 기자들이 반발을 하자, 이동관 대변인이 기자실을 찾아와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대통령께서 웃으시면서 박수치고 이런 것들을 국민들이 TV를 통해서 보면 기분이 좋겠느냐, 좀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프레스센터에 있던 <오마이뉴스> 기자는 이동관 대변인의 비보도 요청에도 '호랑이굴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이 대통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하려고 했던 청와대의 행동을 고발한 김 기자의 질문은 이날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됐고, 광우병 파동으로 성난 여론과 맞물려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특히 김연세 기자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가 하면 "김 기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poj0809), "김 기자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kuss3535) 등 네티즌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국무총리실은 온라인상에서 정부 브리핑을 중계하고 질의응답을 받을 수 있는 e브리핑(전자브리핑) 사이트에서 김 기자의 질의응답 속기록을 삭제했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김 기자의 질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대국민 담화 기자 양심고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고, 유튜브 등에서도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미국 방문중인 17일(현지시각) 한미재계회의 만찬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이명박

징계 사유는 '괘씸죄'?

 

그러나 김연세 기자가 청와대 출입기자단 운영위원회로부터 1개월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이유는 '대통령 쇠고기 발언 삭제 요청'을 폭로한 것 때문이 아니다.

 

김연세 기자는 문제의 질문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며칠 전 이동관 대변인이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민간업자의 몫'이라고 했다. 미국 시민단체들이 미 농무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서 얻은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도축업자들이 가공회사들에게 쇠고기를 공급할 때 소의 월령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거나 허위로 기재하는 사실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운영위원회측은 김 기자를 중징계하면서 그 사유로 "이동관 대변인의 실명을 거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민간업자의 몫"이라는 발언은 이동관 대변인의 요청으로 인해 모든 언론에 '청와대 관계자' 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소개돼 왔다. 취재원(이동관 대변인)과의 실명 비보도 약속을 김 기자가 파기했다는 것. 

 

김 기자의 '죄목(?)'은 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방미 기간 중 기자간담회에서 "오바마와 힐러리도 선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 대선이 끝나면 찬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한국 대통령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며 이 발언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했다. 기자들은 김 부대변인의 요청을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 끝에 찬반 투표를 벌였고, 김연세 기자와 <오마이뉴스> <국민일보> 기자 등 3명만이 반대 입장을 표명해, 결국 비보도 요청을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김 기자는 이 요청을 거부한 채 이 대통령의 관련 발언을 보도했다. 당시 운영위원회측은 김 기자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하지 않다가 이번 징계 사유에 포함시켰다.

 

김연세 기자는 이번 운영위원회의 징계 방침을 수용한다면서도 "문제의 핵심은 청와대가 비보도 요청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측은 김 기자의 '대통령 쇠고기 발언 삭제 요청'에 대해 "언론인의 금도를 넘어선 악의적인 사실 왜곡"이라며 반박했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해명자료를 내고 "이동관 대변인은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정부 발표시까지 보도 자제를 당부하였을 뿐"이라며 "국내에서 공식 발표가 되기 전에 미국에서 먼저 발표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당시 대통령이 웃고 박수를 쳤던 것도 사실과 다르다"며 "대통령이 박수를 친 것이 아니라 한미FTA 비준을 지지하는 참석자들이 친 것이고, 더욱이 박수를 유도한 이는 미국측 대표로 참석한 한국인이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