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중에 하나가 카빈 소총에 의한 사망자인데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아 주십시오~~

 

사망자 중에 M16 보다 칼빈 소총으로 죽은 사람이 많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현존하는 5.18 사망자에 대한 검시 자료 원본은 군부 측의 보안사가 작성한 '광주사태검시참여결과보고', 광주지검이 작성한 ' ‘5.18 관련 사망자 검시’, 광주시청에서 작성한 검시조서, 3가지가 있습니다. 카빈 사망자만을 따져보자면, 보안사 검시 자료는 카빈 사망자 21명, 광주지검의 검시 자료는 26명, 광주시청 검시 자료는 12명입니다. 세 자료에서 모두 카빈 사망자로 일치하는 사람은 8명입니다.

 

5.18을 폄훼하려는 사람들은 제5공화국 발표를 근거 삼아 카빈 소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이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5공화국의 광주사태 사망자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폭도들 대다수가 난동을 부리다 사망했으며, 계엄군은 최소한의 자위권만 행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빈 사망자가 많다는 것은 사망자에 대한 책임은 계엄군에 있지 않고 광주 시민 측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5공화국 발표 중 5.18 사망자의 사인에 대한 발표자료는 2가지가 있습니다. 1982년 국방부가 펴낸 '계엄사'와 1985년 안기부가 발간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상황"입니다.

 

최근 들어 특히 지만원이라는 보수 네티즌이 이러한 자료들을 자주 인용합니다. 1980년에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 5.17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 등을 신군부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록하기 위해, 제5공화국의 국방부는 1982년 '계엄사'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계엄사'에는 카빈 사망자, M16 사망자를 구체적으로 분류한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총상 사망자 중 88명이 폭도 자신들의 난동으로 죽었고, 29명만 계엄군에 끝까지 대항하다 사살당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만원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카빈 사망자가 더 많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계엄사' 내에 구체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자료는 전혀 없습니다. 1985년 안기부에서 발간한 5.18 자료에는 카빈/M16 분류가 있으며, 카빈 및 기타총상 사망자가 94명, M16 사망자가 38명으로 나와있습니다.

 

지만원은 이 자료에서 사체 검안위원회의 보상금 지급 내역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것 역시 당시 검시 과정에 참여했던 문형배 교수(원광대 의대)가 카빈 사망자가 많아진 이유를 증언하여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1980년 당시 군에서는 M16 총탄을 맞은 경우 군에 저항한 것으로 판단하여 폭도로 분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와 목사들이 반대했다. 당시 의사 2명과 목사는 난동자(폭도)로 분류될 경우 위로금 등이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양민(비폭도)으로 분류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다.

 

처음 폭도로 분류된 것은 20여명이 조금 넘었으나 군에서는 이 정도의 비율이면 곤란하다고 하여 격론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38명이 폭도 분류되어 늘어났습니다. 이 같은 과정 때문에 사체 검안위원회 회의 결과 M16보다는 M1이나 카빈 사망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국방부 과거사위 12.12 5.17 5.18 조사결과보고서 126쪽)

 

5.18 민주화운동이 진압된 이후 검시에 참여했던 전호종교수(조선대 의대. 병리학)는 사체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려면 부검까지 해야 하는데 당시로서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체가 썩어 가는 중이었고, 게다가 부검을 하려면 검찰의 수색 영장과 가족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검시에 참여한 의사들은 단지 사체의 외형만 보고 검시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검시에 참여한 의사들은 총알이 몸 속에 들어간 사 입구와 몸을 뚫고 나온 사 출구의 외습니형적 상태만 기록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 입구보다 사 출구의 크기가 더 크면 M16, 카빈 소총은 사 입구와 사 출구의 크기가 차이가 나지 않으면 카빈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망자를 분류했습니다. 사출구가 없는 맹관총창의 경우 비교가 어렵다는 점이 있고, 더구나 근거리 사격, 원거리 사격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가려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카빈과 M16을 정확하게 가려내지 못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만원은 M16도 카빈도 아닌, 기타 총상으로 분류된 경우에도 예비군 무기고에서 나온 무기에 의한 총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검시 자료를 직접 살펴보면, 다른 종류의 총기에 부상당해서 기타 총상으로 기록한게 아니라, 도저히 M16과 카빈 둘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없어서 총기 미상으로 분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계엄군 측에서는 M16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계엄군은 기타 총상 사망자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1988년 광주특위 청문회만 봐도, 계엄군은 M16 이외의 총기도 사용했습니다. 당시 박태권 통일민주당 의원은 계엄군이 27일 하루에만 "M16 9,646발 M2O3 19발 수류탄 12발 TNT25[파운드] 권총 667발 M6O 925발 66LCW 260발 연막탄 18발 최루탄 150발 오색신호탄 70발 화염방사기 7대 통합계 1만1,792발을 쏘았다"고 말했습니다.(제 144회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 제 7 호)

 

다음은 계엄군의 무장 수준 입니다

 

이는 공식적인 자료입니다

 

 

소화기 497,962

 

권 총 2,734

 

기관총 10,779

 

수류탄 194

 

40M유탄 60

 

90M무반동총 8

 

기타 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