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고 사는 것이 간단치 않다. " 사람은 다 자기 밥구멍을 갖고 나오는 벱" 이라고 하지만 거저 수월하게 먹고 사는게 쉽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린 참 많은 짓을 저지르고 또 많은 것을 격는다. 서럽기도 하고 모질기도 하다. "세상살이가 엄동설한보다 냉냉하고, 식구들 입이 호랭이보다 무섭다" 는 것을 아는게 어른이라고 그런다. 세상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또 사람이 결코 너그러운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고따우로 아는게 곧 어른이라는 소리들이다. 그런 소리들에는 '지혜'나, '선생(先生)' 이라는 덕망이 흔적조차 없다. 대신 살아남기위한 '영악함' 을 기준으로 어른과 아이를 그렇게 맹랑하게 구분할 뿐이다.
 
나이를 좀 먹은 사람들은 그만큼 겁이 많아진다. 그리고 어떤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감도도 예민하다. 여러 위험들을 피하면서 그만큼 성공적으로 생존해온 탓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서는 몸을 사린다. 안죽고 안다치고 더 오래 연명해야겠다는 것이다. 벽에 똥으로 수채화를 그릴때까지 질기게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강할수록 그런 게욱질나는 목숨탐은 현란하다.
 
2.
 
먹고사는 일은 아무리 화장을 곱게 해도 '소의' 다. 조국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저와 제 식구들만 살겠다고 야밤도주하는 것을 '대의' 라고 얘기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조국이 위기상황에 있을때, 자신과 식솔들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보다 '대의' 에 가깝다. 이를테면 계백-이순신- 김구 등이 이건희- 김승연- 이광수 등 보다는 '대의적 행동' 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이 '대의 정치' 라는 용어를 간간 쓴다. 그들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대의정치' 라는 용어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반도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한반도 상황이 놓이는 위치를 아는 지표가 1) 북미간 관계 2) 북일간 관계 3) 북중간 관계 4) 중.러- 미.중-미.러관계....다. 북핵과 북한의 정치사상을 축으로 변화를 시작한 아시아의 복판에 한반도가 있고, 공교롭게도 한반도 문제에서 대한민국은 '지분' 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간 핵대결에서 또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 대한민국은 스스로 그 주권을 미국에게 인계하는 자살극을 벌였다. 북핵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데 절대적으로 미국의 핵에 의탁해버린 것도 눈부신 연출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헛점' 을 그냥 못본체 할 북한이 아니고, 미국이 아니다. 적어도 국제간 싸움과 거래에서 대한민국이 취한 행동은 '최하의 수' 또는 '패착' 이다. 쉽게 말하면, 어수룩한 밤에 한적한 길에서 맞딱트린 남자에게 속옷을 홀딱 벗고 가랭이를 벌린 여자와 다름이 없다. " 아저씨 하고싶은대로 하고 목숨만 살려주세요, 네? " 그가 지나가는 남자인지, 아니면 자신을 자빠뜨릴려고 작정을 한 사람인지 확인조차 하지않고 그런 체위를 먼저 보인것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3.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경제협력을 '대단한 행동' 으로 치장하는 '쑈' 가 범람한다. 그러나 그런 쑈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식상한 '줄거리' 이기 때문이다. 임기가 종료되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차기 정부가 계승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남북간 거래와 협력틀은 차기정부들어서 전면 재검토 될 것이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었느냐? 는 이제 중요하지 않은 옛것이 되었다.
 
임종을 앞둔 노인이 연지곤지를 바른다고 '기사회생' 하지 않으며, 그런 치장으로 젊음을 되찾을 수도 없다.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스스로 애썼다고 안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마땅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한 행동이 정말 옳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은 그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고, 결국 피곤하고 지친 歷史다.
 
4.
 
밥이냐? '정의' 냐? 는 질문이 쉬지않고 주어진다. 밥이냐? 대의냐? 는 질문도 거기에 따른다. 고민스럽지만, 우리는 계속 '밥' 을 끌어안는다. 밥으로 21세기를 무찌를 수 있을까? 밥으로 한반도에 들씌워진 운명을 건너갈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반도가 초래된 원인이 밥의 부족에서 일까? 그런 회의에 대해서 뭔가 속시원한 답이 없다. 그런듯 아닌듯 하다. 소,닭,돼지,개... 등 가축들은 안정적인 밥을 보장받는다. 야생세계의 냉혹한 '약육' 으로부터도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치루는 것은 피지배(비주체)다. 별것 아니다. 배부르고 등따수면 왔따다. 그것이 가축들이 가축으로서의 자기 자리에 만족하면서 수천년동안 삶을 지탱해온 전략이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싸지않은 댓가다. " 자유를 위해서 비상해본 사람이면 알지  .... 어째서 자유에는 왜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김수영이 '푸른 하늘을' 이라는 시에서 쓴 한 귀절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은 상당부분 정당하다.
 
5.
 
" 힘이 옳은 것을 이긴다" 는... 어떤 책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이시대의 주요한 화두다. '힘' 은 '소의'를 대표하고, '옳은 것' 은 '대의' 를 대표한다. 즉 이말을 좀더 깊이 사색하면 " 소의가 대의를 이긴다" 로 환치기된다. 경제(밥)는 그것의 규모가 아무리 광범위하다고 하더라도 '소의'에 귀속된 품목이다. 이 소의에 대응하는 '대의' 는 그러므로 우선 '정치.사상'과 '철학' ,'문화'... 등이다.
 
제3세계에서 쿠테타가 일어나고 쿠테타세력이 집권하는 배경에 항시적으로 '경제문제' 가 내걸리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쿠테타 세력은 '부강한 조국','부강한 민족'이라는 '마취제' 를 듬뿍 뿌린다. 이런 공세의 대상이 된 일반대중은 '부강한' 이라는 약에 급하게 마취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파시스트들의 집권이 시작된다. 대중의 가축화다. 가축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은 '반정부세력' 으로 분류되거나, '낙오자' 로 분리수거 된다. 소의가 대의를 압살하는 대대적인 테러도 그와함께 감행된다. 
 
6.
 
푸른 하늘을
           金洙映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자라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해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를
 
7.
 
이승만과 미군정은 '개인의 자유보장-확대' 라는  '마약' 으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民主主義)를 무찔렀다. 박정희는 '쌀밥' 으로 그것들을 무찔렀고, 한국형 신보수는 '밥' 으로 '그것' 을 무참히 무찌를 태세다.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무참하게 패배할 듯하다. 자발적인 '겨울' 의 도래다. 아직 초목들이 미처 계절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급하게 춥고 황량한 겨울이 문밖까지 다가온 것이다. 겨울추위가 깊어질수록 따스한 봄을 그리워 한다. 그 봄을 앞당기기 위해서 젊음과 목숨을 내버린 한국 진보들에게 이제 희망이 끊어진 것일까?  한국의 구보수가 신보수 논리와 신보수 추종자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집권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지금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일이 자발맞은 짓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녀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존엄성' 이다. 이 가치는 어느 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절박한 가치다. 밥의 부족으로 겪는 궁핍과 달리, 존엄성의 결핍은 보다 숙명적이고, 처참하다. '조엄성' 은 사람의 내적인 '생존 경계' 다. 이 경계가 잠식당하거나, 붕괴하면 사람은 '심리적인 사육물' 로 전락한다. 밥부족으로 도래하는 '위험' 보다  괴로운 위험이 그것이다.
 
8.
 
밥하고 바꾸고 있는 민주주의와 대의가 단순히 살갗에 닿는 통증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가의 '녹' 으로 연명하는 사법부가 '거짓말' 로 여론을 조작한다. 이 여론 조작이 어긋난 자들의 집권으로 직결되고, 그렇게 왜곡된 선택이 국민의 자발적인 의견이라는 가면을 쓴다. 한국에서 선거는 늘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도 이런 끔찍한 '위선' 에 저항하지 못한다.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한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과 인내,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민주주의를 그렇게 팽개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까? 그것이 지금 답답하다.
 
<개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