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단풍으로 물들었던 가을산이 잎을 떨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날리는 낙엽이 꽃잎처럼 아름답다. 

떠나는 가을이 못내 아쉽다면 이번 주말 행장을 꾸려 볼 일이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눈물겨울 만큼 아

름다운 만추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남한산성 남문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사계절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이맘때면 절정의 만추를 즐기

려는 사람들로 어느 때보다 붐빈다. 그런 남한산성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있다. 이 계절에 더욱 

어울리는 곳이다.   

 


만해기념관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만해 흉상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만해 대표시 나룻배와 행인

 우리에겐 '님의 침묵'으로 너무나 유명한 만해 한용운(1879~1944)의 기념관이 남한산성 안에 있다. 잠깐 

어리둥절해 할 사람들이 있을 터다. 만해기념관이 남한산성 안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만해는 한국을 대표

하는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요, 위대한 사상가다. 그의 족적을 따라가자면 생가가 있는 충남 홍성과 정

신의 고향인 강원도 백담사, 만해 삶의 현장이었던 서울 성북구의 심우장이 중심이 돼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안에 만해기념관을 세운 것은 남한산성 축성 당시 조선 8도 승려들이 참여하는 등 호국 정신이 

서린 성지이기 때문이다. 1981년 10월에 심우장에 세웠던 만해기념관은 1990년부터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고지 모양 자필 시비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912번지 남한산성 내에 문을 연 만해기념관은 한평생을 만해 한용운 연구에 

몰두한 전보삼 교수가 설립한 사립박물관이다. 전통 한옥의 주삼포 양식에  현대건축을 조화시킨 기념관은 

대지 520평, 연건평 120평(지상 2층) 규모다. 기념관 마당으로 들어서면 '나룻배와 행인'이 새겨진 시비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표정의 만해 흉상이 먼저 눈길을 잡는다. 이 흉상은 원로 조각가 민복진 선생의 

작품이다.




야외 조각공원

 기념관은 선생의 일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과 교육관, 체험학습실, 야외조각공원 등으로 꾸며졌다. 

전시실 안에는 선생 생전의 저술과 수택본 등 관련 자료와 특히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 등 700여 편을 전시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금서였던 <음빙실문집> <영환지략> <월남망국사> 등 평소에 즐겨 봤던 수택본들과 우리 

국문학사의 희귀본인 사랑의 증도가 <님의 침묵> 초간본과 100여종의 판본, 세계 각국의 언어(미, 영, 프, 캐

나다, 체코 등)로 번역된 시집 <님의 침묵>과 만해가 생전에 낸 각종 저술 <조선불교유신론>(1912년) <정선 

강의 채근담>(1917년)의 초간본과 만해의 친필유묵, 3.1 독립운동으로 옥중에서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며 

'맹렬한 독립론'을 전개한 만해의 옥중 투쟁을 보여주는 각종 신문 자료, 1962년 정부가 추서한 대한민국 건국 

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훈기번호 제25호)이 전시돼 있으며, 만해 관련 연구, 학술 논문 등을 정리해 전시

하고 있다.


단풍나무숲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알 수 없어요> 

중에서).




단풍나무

 그가 남긴 시를 읊조리며 낙엽 뒹구는 야외조각공원을 거닐다 보면, 평생을 나라사랑의 독립 정신과 이지(理智)와 

감정의 조화를 추구했던 만해 한용운의 '님, 사랑, 그리고 침묵의 예술' 혼을 가슴 깊이 뜨겁게 새길 수 있으리라. 

●만해기념관(031-744-3100)



 *맛집 


성곽 따라 올라가면...

 남한산성 주변엔 대물림을 하는 소문난 맛집이 즐비하다.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백제장(031-743-429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찾았던 집으로, 3대째 손맛을 이어오고 있다. 한 모씩 면포를 이용해 손으로 빚어 만드는 주먹두부

도 100년을 이어오는 손맛이다. 오복손두부집(031-746-3567)이 원조다. 



 *가는 요령


주변 맛집들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헌인릉 앞-세곡동-복정사거리-약진로-남문-산성 로타리에 이른다. 중부고속도로 

경안 나들목(서울, 하남시 국도 43번)-광지원-동문-산성 로타리까지 연결된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도 남한산성을 갈 수 있다.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내려 2번 출구에서 좌석버스 9번을 타면 산성로터리까지 

버스가 들어간다. 또는 동서울터미널 강변역에서 13-2번을 타고 남한산성입구에서 15-1번으로 환승해 종점에

서 내린다. 만해기념관은 남문주차장과 산성내 로터리(종각 터) 사이에 있는 골목길로 약 120m 들어가면 나온

다. 골목 입구에 안내 비석이 있다.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