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바뀌어도 문 닫은 곳 없는 '대마불사' 자동차
 -한국지엠 근본 위기는 미국 GM의 회생

 "자동차산업은 규모가 커서 결코 죽지 않는다."

 마치 정설처럼 내려오는 자동차산업 불사(不死) 신화다. 실제 1905년 한국에 캐딜락 완성차가 처음 등장한 이후 1944년 설립된 경성정공은 현재 기아자동차로 변신해 있고, 1955년 등장한 신진공업사는 지금의 한국지엠으로 존재하고 있다. 1962년 등장한 하동환자동차는 시대를 거쳐 쌍용차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고, 1965년 설립된 아시아자동차 또한 이름은 사라졌지만 기아차 속에 포함됐다. 그리고 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지금도 그대로다. 1994년 가장 뒤늦게 뛰어든 삼성자동차도 현재는 르노삼성으로 유지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몇 번의 격변을 거친 국내 자동차산업이 두드러지게 재편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뿌리 채 흔들린 기아차를 현대차가 흡수한 것은 1998년이며, 비슷한 시기에 대우차는 쌍용차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라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쌍용차와 대우차는 각각의 길을 걸었다. 역시 비슷한 시기 생사의 고락을 겪었던 삼성차는 르노에 지분을 내주며 일원이 됐고, 쌍용차는 상하이차를 거쳐 지금의 마힌드라 우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우차는 2002년 GM이 소형차의 필요성을 느껴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명(社名)만 달라졌을 뿐 국내 생산 시설은 어느 것 하나 사라진 게 없는 셈이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은 대표적인 '대마불사' 업종으로 분류된다. 노동집약, 그리고 수많은 협력업체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이유로 국내 공장이 문 닫는 사례도 없었다. 게다가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정부 또는 정치권이 해결사를 자처하며 국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쏟아 부었다. 지역 정치인에게는 엄청난 표가 걸린 사안이고 정부 입장에서도 근로자들의 생계 위기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개별 자동차회사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마다 정부가 공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을 되살린 배경이다. 

 이런 행보는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2009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정부는 GM 공장 문을 닫을 수 없어 7조원의 돈을 넣으며 회생 방안을 선택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까지 감안하면 32조원이 소요됐다. 르노가 지금 프랑스 정부의 국영기업이 된 것도, 폭스바겐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하나가 볼프스부르크 공장이 위치한 지방 정부가 된 것도 이처럼 자동차산업이 가진 거대한 네트워크 규모 덕분(?)이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은 언제나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리가 지배하는 대표 업종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 한국지엠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기 직전인 2001년 당시 생산대수는 39만대에 불과했다. 수출이 삐걱대며 위기에 봉착했고 이듬해는 28만대까지 떨어졌다. 설비 및 인력은 100만대 능력이었지만 만들고 싶어도 내다 팔 시장이 없었다. 그러자 정부가 나서 자금을 투입했고 새로운 주인으로 GM을 선정했다. GM은 인수 후 가동률이 떨어지는 부평공장 근로자 1,785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조금씩 수출을 늘려 나갔다. 

 일단 몸집이 가벼워진 한국지엠은 2004년 56만대(판매기준)를 찍고 2005년 65만대로 늘어나자 인수 후 해고했던 1,700명의 근로자를 모두 부평공장에 다시 복직시켰다. 이후로도 상황이 안정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실제 GM이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 런칭하며 공급 기지로 한국지엠을 채택하자 수출은 2007년 82만대까지 확대됐다. 그 해 내수와 수출을 합쳐 모두 95만대가 판매됐고 부평, 창원, 군산의 공장 가동률은 98%에 육박했다. 한 마디로 인력 및 설비의 정상화가 이뤄졌다. 노사는 모두 미소를 띠었고 함께 노력해 이룬 결과라는 점에서 임금을 올리고 성과급도 나눴다. 

 그런데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미국 내 금융위기로 모기업인 GM이 심각한 재정 부족에 직면했다. 그러자 당시 오마바 정부는 GM을 새로운 회사(New GM)로 재편키로 하고 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털어냈다. 부실 자산 청산 과정에선 그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이 투입됐다. 결국 퇴직 근로자 의료비 지원을 중단했고 현직 근로자의 복리후생 감소는 물론 임금도 동결시켰다. 기업 회생에 지원된 비용이 근로자의 생존과 무관한 복리후생과 서비스 지원에 활용되는 것 자체를 금지시켰다.

 여기에 발맞춰 GM은 새로운 경영자를 영입하면서 수익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나갔다. 허머 브랜드를 중국에 매각했고 미국 내 사무직원 3만5,100명 가운데 8,000명을 해고했다. 미국 GM 근로자의 반발이 있었지만 공룡이 쓰러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미국 내 자동차 대마불사를 실행하되 기업 본연의 목적인 이익 추구에만 집중시켰다.  

 -미국 GM의 몰락, 해외 사업장 정리로 이어져
 -오로지 수익 중심의 경영 전략으로 선회

 그러나 분명 미국 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GM의 회생이 해외 사업장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미국 정부는 GM에 자금을 지원하되 '미국 내에서 생산된 차의 판매 비중을 높일 것', 그리고 ‘미국 내 생산 시설 가동 능력을 향상 시킬 것'을 GM에 요구했다. 이를 위해 GM은 핵심 브랜드 사업에 집중하면서 육성 브랜드로 '쉐보레, 캐딜락, 뷰익, GMC'를 선택했다. 더불어 오랜 적자로 피로가 누적된 GM유럽 사업도 재편에 착수했다. 

 그 결과 유럽 쉐보레 물량을 공급하던 한국지엠에 불똥이 튀었다. 유럽 자회사 오펠은 쉐보레 제품이 오펠과 유럽 시장에서 충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가뜩이나 오펠 제품을 많이 팔아야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마당에 DNA가 같은 쉐보레가 한국에서 생산돼 유럽에서 판매되니 오펠 판매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차라리 쉐보레를 유럽에서 유지할 계획이라면 오펠이 현지 생산 및 공급을 맡겠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유럽 적자를 줄여야 했던 GM은 한국지엠과 유럽 오펠의 생산 비용을 비교했고 오펠의 손을 들어주는 게 GM의 적자폭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쉐보레 브랜드가 유럽에서 철수한 배경이다. 

 

 

 

 


 이 때부터 한국지엠의 수출물량은 가파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3년까지 60만대 정도였던 수출은 2014년 47만대, 2015년 46만대, 2016년 41만대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는 39만대까지 하락했다. 한국지엠의 덩치가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그 사이 GM 본사 임원의 과도한 한국 근무, 높은 본사 차입금 이자율 등도 수익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근본 이유는 GM이 쓰러지면서 '오로지 수익'으로 초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호주 및 베네수엘라 공장이 문을 닫은 것도 결국은 수익 우선이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유지해봐야 수익은 나지 않고 새로운 생산 물량 배정 또한 쉽지 않았다. 미국 정부 돈으로 회생한 만큼 미국 내 공장이 우선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물량을 배정해도 향후 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낮았던 만큼 공장 폐쇄가 수익을 높이는 방법으로 판단했다. 

 이번 한국지엠 사태를 두고 일부에선 GM을 '깡패'로 비유한다.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되 들어주지 않으면 나가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또한 원가율과 차입금 이자, 연구개발비의 과도한 부담 등이 군산 공장 폐쇄 이유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내수 판매 차종의 비싼 가격이 원인이라는 점도 지목된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GM 본사 또한 미국 정부의 자금이 투입돼 되살아난 사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근본 이유는 GM의 몰락 후 회생이 만들었음에도 국내적 시각에서만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GM이 먹튀를 한다는, 투자 없이 오로지 이익만 가져간 논리만 득세할 뿐이다. 

 그래서 이제 공은 한국 정부로 넘어왔다. 그런데 한국 또한 자동차기업의 대마불사 논리는 건재하다. 수많은 일자리와 협력업체의 생계가 달려 있어서다. 반면 국민 세금으로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논리도 적극적이다. 이번 기회에 제 아무리 자동차회사라도 문 닫는 공장이 나와야 향후 체질 개선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GM 본사를 살려놨으니 한국 정부도 한국지엠을 회생시킨 다음 각 자의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대마불사론도 힘을 얻는 중이다.

 그러나 전제는 어디까지나 단기 처방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설령 GM과 한국 정부가 50:50 기업으로 한국지엠의 지분 구조를 바꾼다 해도 생산 물량 배정 외에 제품개발에 대한 미래 보장이 없으면 악순환은 또 다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임금은 앞으로도 상승할 것이고, 그러면 고비용 생산 문제가 공장 문을 추가로 닫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생산 물량을 GM이 글로벌 판매 법인으로 나눠줄 때 적정한 생산 이익을 붙여야 하고 제품 개발 보장을 받되 한국지엠의 기술력이 확보되도록 이전도 돼야 한다. 그래야 훗날 같은 위기가 도래할 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정부 공적 자금 지원이 이뤄지면 이는 그냥 허공에 돈을 뿌리는 것과 같다. 같은 비용으로 동일 제품을 생산할 때 한국 공장은 비용 면에서 수익성 좋은 시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내수 판매 가격 운운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일 뿐이다. 연간 150만대 규모의 내수는 수출 주력 기업에게 그리 매력 넘치는 시장이 아니어서다. 결국 해법은 냉정한 시각이며, 한국지엠이 필요 차종의 자체 개발 능력을 갖추는 방안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생존 방법은 기술력 확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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