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K9 퀀텀
K9이 국내 대형세단 시장에서 지닌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
K7, K5의 잇따른 흥행에 도취했던 탓일까, 제네시스가 워낙 막강한 탓이었을까, 기아차의 입장에서도, 국내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도 K9의 실패에 대한 충격은 컸다.
원인은 다양하다. 포지셔닝이 모호했다는 점이 발단이다. 소비자들은 K9을 오피러스의 후속모델 격으로 여긴 탓에 이 차가 제네시스 DH와 동급인지, 에쿠스와 동급인지에 대한 혼란이 많았다.
파워트레인 라인업의 구성 또한 에쿠스와 달랐다는 점은 이에 대한 혼란을 더했다. V8 라인업이 존재했던 에쿠스와 달리 K9은 V6 라인업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진] K9 퀀텀
그 때문인지 에쿠스와 제네시스 DH를 판매하던 현대차 영업사원들은 K9을 에쿠스의 아랫급, 즉 제네시스 DH와 동급으로 다루기에 좋았다는 후문이다.
K5와 K7에서 보여진 기대심리도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자인 수장으로써 디자인을 진두지휘 했던 피터 슈라이어에게 거는 기대감은 대내외적으로도 높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 탓인지 K9은 플래그십 세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두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뒤늦게 ‘퀀텀’ 이라는 이름으로 V8 라인업이 추가됐으나,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제네시스의 산을 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 세월의 흔적 보이지만..여전히 높은 존재감
[사진] K9 퀀텀
K9 퀀텀의 전면부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쿼드타입의 LED 헤드램프와 매쉬 타입의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한 개의 램프에는 총 네 개의 LED 발광체가 위치하는데, 상향등을 포함하면 총 8개의 광원이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해준다. 기능적으로도 훌륭하지만,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원형의 프로젝션 램프보다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도 담아낸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 차의 존재감을 알리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독특한 패턴에 크롬 도금을 아끼지 않은 그릴은 전통적인 럭셔리카의 사치스러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켠에 부착된 'V8 5.0' 배지는 이 차가 기존의 K9과 차별화됐음을 보여준다.
측면에서 나타나는 차체의 비율은 전통적인 후륜구동 세단의 모습이다. K7에서 보여진 바 있는 캐릭터 라인들이 부분부분 묻어나는데, 기아차의 시그니쳐 형상을 담아낸 측면 에어벤트와 하단에 위치한 크롬 몰딩은 고급스러움을 한층 배가시킨다.
[사진] K9 퀀텀
전면부의 디자인은 수출형 K900와 동일하지만, 후면부에선 차별화를 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테일램프는 기존의 형태와 달리 역 사다리꼴 형상으로 길게 뻗은 모습인데, 램프 라인을 따라 길게 뻗은 크롬 바는 차체를 더 커보기에 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범퍼와 일체화를 이룬 듀얼 머플러는 꺾인 형상을 테일램프의 모양과 같이해 통일성을 더한 점이 눈길을 끈다.
■ 호화로운 실내 구성.. 일부 저렴해 보이는 재질은 아쉬워
[사진] K9 퀀텀
문을 열면 센터페시아의 디자인 보다는 시트가 시선을 잡아끈다.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누벼진 퀼팅시트다.
고급 나파가죽을 사용하면서도 퀼팅 패턴을 적용하는 건 제조 원가를 높이는 주된 원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이지만, 이런들 어떠한가. 이 차는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인데.
때문에 시트만을 놓고 본다면 제네시스 EQ900보다 고급감도 높아보이고 한층 사치스럽다는 느낌을 연출한다.
물론 시트의 착좌감도 훌륭하다. 푹 꺼지는 소파에 앉는 듯한 안락함이 강조된 느낌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분히 고려한 느낌이라는게 기자의 생각이다.
[사진] K9 퀀텀
스티어링 휠에 내장된 다이얼 형태의 버튼은 트립 컴퓨터를 조작하기에 편리하다. 다만 조작 빈도가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남는다. 오히려 이 다이얼이 미디어 시스템을 컨트롤 하는 버튼이었다면 편의성이 한층 높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블랙 하이그로시 재질은 고급스럽게 가공됐고, 다소 붉은 톤의 우드그레인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되려 금속 재질이나 카본 패턴을 적용했다면 고급감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화롭다.
자주 사용되는 버튼들은 잘 정리됐고, 전자식 기어노브의 조작감과 그립감도 만족스럽다. 다만 기어노브 후방에 위치한 조그다이얼은 손에 익기까지 일정 수준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인스트루먼트 패널 하단부를 감싸고 있는 우레탄 소재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가공할 수 있을 텐데, 약간은 반짝이는 재질이어서 고급감은 다소 떨어진다.
[사진] K9 퀀텀
2열의 시트포지션은 모두 전동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오토 모드를 작동시킬 경우, 차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레그룸 공간을 만들어준다.
오토 모드를 작동시키면 시트의 방석 부분이 앞으로 당겨짐과 당시에 등받이 각도는 한층 완만해진다. 조수석 시트는 앞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이동하며, 2열에서 윈드실드를 한눈에 확인할 정도로 등받이가 기울어진다.
2열 탑승자의 발을 올릴 수 있는 풋 레스트는 사용하지 않기를 권한다. 원터치로 작동하지 않는 불편함도 있거니와, 키 180cm 이상의 남성이 다리를 얹은 채 다리를 뻗기엔 충분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릎의 각도가 다소 애매해지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려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를 뻗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풋 레스트에 다리를 올린 상태에서는 다리를 쭉 뻗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 뜻이다.
[사진] K9 퀀텀
후석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 미디어 시스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운전석 모니터와는 독립적으로 화면을 제어할 수 있지만, 사실상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거의 없다 시피한 점도 후속모델에서의 개선을 요한다.
■ 넉넉한 출력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안락함
파워트레인은 기아차에선 유일한 V8 5.0리터 타우 GDi 엔진이 탑재된다. 최고출력은 425마력으로 기아차에선 단연 가장 높으며, 52.0kg.m에 달하는 최대토크와 후륜구동형 8단 자동변속기는 2.1톤에 달하는 거구를 끌고 나가기에 충분하다.
모든 플래그십 세단들이 정숙성에 있어 심혈을 기울이지만, K9의 정숙성은 유독 돋보인다. 400마력대의 고출력 엔진은 급격히 가속을 해나가려 해도 지극히 억제된 모습을 보인다. 8기통 답지 않게 조용하고 빠르게 속도를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사진] K9 퀀텀
넘치는 토크 탓에 엔진 회전수도 아주 낮게 사용한다는 점도 정숙성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80~100km/h 사이에서 정속주행을 이어나가면 엔진 회전계는 불과 1200~1500rpm 사이에 머무른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K9은 편안하고 조용하면서도 빠르다. 넉넉한 출력과 풍부한 토크 탓에 가속에 거침이 없는 만큼, 엑셀을 끝까지 밟을 일이 없을 정도로 모든 구간에서 힘이 남아돈다.
거칠다는 느낌 이라던지, 스포티하다는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스포츠 모드에서도 동일한데, 가속페달의 반응이 조금 더 민감해질뿐, 드라마틱한 변화를 찾기엔 힘들다.
스포츠모드를 작동중인 상황에도 에어 서스펜션이 선사하는 승차감은 구름 위를 떠가는 듯 편안하다, 컴포트 성향의 측면에선 제네시스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이다. 단언컨대, ‘미끄러진다’는 표현 외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주행 감각이 제법 만족스럽다.
[사진] K9 퀀텀
재밌게도, 잠시 동승한 친구는 “소파에 앉은 채 지하철을 탄 느낌”이라며 K9의 승차감을 표현했는데,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보인다는 의도로 해석되는 표현이다.
스티어링의 조향감을 두고 좋다, 나쁘다를 전문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컴포트한 성향이 짙기 때문에, 막연히 편안하게 조향할 수 있는 정도의 느낌. 딱 그 정도다.
■ K9 퀀텀의 시장 경쟁력은...
국산 대형세단을 찾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애초에 K9은 비교선상에 올라있지도 않다는 점은 강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렇게 저평가될 차가 아닌데, 평가받을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잔인할 따름이다.
[사진] K9 퀀텀
K9은 능동적으로 스티어링을 조향하는 LKAS 정도가 빠져있을 뿐, 다른 점들은 동급의 수입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는 점이 없다. 심지어 8660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까지 말이다.
보유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는 게 기아차 측의 설명인데,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는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가 영락없이 딱 들어맞는 듯 하다.
고급차 시장에서의 성공은 기아차의 숙원일 것이다. 쏘렌토를 통해 SUV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고, 니로를 통해 친환경차 시장에서 재미를 봤으며, ‘K 시리즈’로 승용 라인업 시장에서 한때 현대차를 위협했다. 최근 출시한 스팅어를 통해선 고성능차 시장의 가능성도 발견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기아차는 내년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K9 후속모델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K9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차체 사이즈는 EQ900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기아차 엠블럼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힐 정돈데, 이미 이정도의 수준을 보이는 차라면 곧 출시될 K9의 후속모델은 기대해볼만 하다.
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hjpark@dailycar.co.kr
출처-데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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