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조, 자동차 본질의 변화 유발

 -자동차회사, 제조에서 이용으로 영역 확장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업체 켈리 블루북이 재미나는 결과를 하나 발표했다. 자동차 기술이 발전할수록 단 기간 자동차를 빌려 타는 리스가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운전자를 지원하는 첨단 기능이 확대되고, 외부 정보를 연결하는 커넥티드가 영역을 넓혀갈수록 자동차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는 것처럼 자동차 또한 교체 시기가 빨라진다는 게 겔리 블루북의 주장이다.


 소비자의 시선 이동이 실제 미국 내 리스 판매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미국 내 리스판매는 140만대에서 지난해 430만대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평균 리스 기간은 3년이다. 스마트폰을 바꾸듯 자동차도 빌려 타다가 3년 후 다른 차를 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라고 미국과 다르지 않다. 자동차대여사업조합에 따르면 2012년 국내 렌터카 등록대수는 32만대였지만 2015년에는 47만대로 성장했다. 또한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12년 자동차 리스 실행액은 3조8,900억원에서 2015년에는 9조3,30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소비자도 더 이상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자동차에 대한 리스 또는 렌탈이 커지는 이유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이해 관계자들의 시선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쪽에 맞추어져 있어서다. 가장 먼저 소비자는 보유를 부담스러워 한다. 출고 후부터 중고차로 바뀌고 세워만 놓아도 재산 가치가 떨어지는 자동차를 굳이 보유할 필요가 있느냐다. 하지만 필요할 때도 많으니 일정 기간 빌리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그리고 자동차를 '돈'으로 본 대여사업자와 금융사업자는 돈 빌려주고 이자 수익을 올리고 싶어했다. 한 마디로 자동차가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떠오르며 둘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자율주차 가능한 BMW i3 
 
 이런 변화를 일찌감치 인식한 유럽과 미국은 최근 완성차회사의 리스 및 렌탈 사업 진출이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자동차를 공유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적지 않다. GM이 공유기업인 리프트에 자금줄을 대고, BMW는 지난해 5월 미국의 모바일 자동차 공유업체 스쿠프에 투자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밖에 인도 공유 서비스 섬몬과 제어소프트웨어 제작사 라이드셀, 대중교통 정보제공 서비스 무빗 등에도 BMW 입김이 들어가고 있다. 자동차 공유기업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렌터카 사업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조 외에 이제는 이용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형국이다.


 완성차기업들의 영역 확장은 사실 수익을 위한 필연적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제조 부문의 수익 감소를 뒷받침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는 만큼 이제는 이용 부문에서 운행 수익을 얻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반면 그간 리스 및 렌탈, 공유 등에 주력했던 기업들은 완성차회사의 자동차 이용사업 진출에 촉각을 세우기 마련이다. 설계가 단순해 누구나 자동차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미래는 다르겠지만 당장은 제조물(자동차)의 공급권을 완성차회사가 쥐고 있어서다. 따라서 지금은 리스나 렌탈, 셰어링 사업자가 자동차를 구매해주는 소비자로 인식되지만 시장이 커지면 GM이나 BMW와 같은 완성차회사의 직접 진출이 뒤따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 포드가 몇 년 전 미래사업의 핵심 카테고리를 제조와 운송으로 분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조와 운송의 분리는 완성차회사가 노리는 시장 맞춤형 사업에 기반한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충분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이른바 경제활동이 가능한 성인 인구는 53억명이다. 그리고 같은 해 지구 전체에 등록된 누적 자동차는 모두 12억대다. 그러니 글로벌 시장을 평균하면 1대당 4.4명의 보유대수를 기록,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넘친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15년 기준 자동차 보유대수는 한국보다 7배나 많은 1억5,800만대지만 한국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1,000명당 415대일 때 여전히 115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 수준의 보유를 가지려면 5억5,000만대가 돼야 하고, 단순 계산해도 향후 3억대 이상 증가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게다가 중국 내 운전면허 보유자도 3억2,000만명에 그친다. 중국 이외에도 인도, 브라질, 러시아, 아프리카 등의 신규 수요를 고려할 때 여전히 '제조-판매'라는 전통적 사업 구조를 유지할 이유는 충분하다.

 


폭스바겐 I.D 컨셉트 EV 


 그런데 흔히 자동차 선진국이라고 하는 지역은 다르다. 이들의 보유대수는 1대당 2명 미만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보유대수가 많아 성장세 또한 높지 않다. 그리고 첨단 기술 개발에 따른 경제발전 및 사회구조가 자꾸 '필요할 때 이용'을 촉진시킨다. 그러니 미래생존을 위해 자동차사업을 '제조-판매'와 '제조-운송'으로 나눌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물론 완성차회사가 '운송'이라는 이용 사업에 진출하면 당연히 기존 사업자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현대차의 자동차 대여사업 진출 소식이 흘러 나왔을 때 대여사업조합이 크게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조사의 운행사업 진출은 너무나도 손쉽고, 진출과 동시에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어서다. 그러나 글로벌 흐름에 맞춰 이를 막을 명분도 별로 없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기 마련이다. 운전의 즐거움보다 컨텐츠를 소비하려는 경향이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불거질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변화의 수용 양상이 국가의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변화의 수용 속도가 곧 미래 자동차 4차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가 최근 오토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움직이는 로봇'이 곧 '자동차'이고, 자동차의 변화 방향이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말한 것도 결국 변화의 수용 속도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결국 누가 먼저 수용할 것인가, 그것이 지금 한국 완성차업계에 던져진 화두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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