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정부가 생색을 내고 싶은 모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가 맺은 FTA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나 그건 우리 정부의 노력 덕분이라기보다 농산물 시장을 더 얻어내려는 호주의 협상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호주에는 정부가 보호해야 할 자동차 메이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서다.

 

 호주 자동차시장은 연간 100만대가 넘는다. 작지 않은 규모다. 그러나 미쓰비시가 2008년 현지 공장의 문을 닫더니 포드와 GM이 탈출 대열에 동참했고, 도요타마저 연초 생산 포기를 선언했다. 이로써 2017년이면 호주 내 자동차 메이커는 모두 사라지게 됐다.

 

 호주 제조업의 한 축이라던 자동차산업이 왜 몰락의 길을 걸은 것일까. 흔한 분석은 이렇다. 호주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원 가격이 급등하면서 통화가치가 올라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자원 쪽으로 인력이 몰리면서 인건비가 다락처럼 올랐고, 숙련공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게 자동차산업 몰락의 전모는 아니다.

 

 3년 뒤 문을 닫는다는 도요타 호주 공장에선 지금도 매주 금요일 오후면 희한한 광경이 벌어진다. 근로자들이 의무실에 앞다퉈 몰려들어 헌혈을 한다. 왜 일까. 이 회사는 근로자들이 헌혈을 하면 네 시간의 유급휴가를 준다.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헌혈을 하면 곧바로 주말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금요일 오후 공장 가동이 멀쩡할 리 없다.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도요타 공장은 외부 평가와는 달리 강성 노조의 파업과 정치권의 친노조 정책에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마침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중단키로 하면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사라지자 사측이 작년 말 노조에 공개적으로 30개 근로조건의 후퇴를 요구하면서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헌혈 유급휴가쯤은 약과다. 병가를 내도 닷새 정도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 없다. 크리스마스 휴가는 21일이고, 노조 대의원들은 교육을 핑계 삼아 1년에 열흘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다 유급이다. 전환배치는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이유로 놀고 저런 이유로 쉬면서 돈은 돈대로 다 타낸다. 좁은 장소에서 근무한다고, 지저분한 장소에서 근무한다고 수당을 타낸다. 직무와 무관해도 웬만한 자격증에는 다 수당이 따라붙는다. 근무 뒤 샤워를 하는 시간까지 유급이다 보니 샤워 시간은 갈수록 길어진다. 일요근무 수당은 평일 임금의 2.5배다. 천국이 따로 없다.

 

 근로자들이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가 노동조건의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노동법에 벗어난다는 이유에서다. 도요타의 호주 생산 중단 결정의 배경이다.

노조는 파업을 무기로 근로조건을 유리하게 끌고 나갔고, 정치권은 노조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퓰리즘 노동법을 쏟아냈다. 법원은 무책임하게 법조문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가 4만5000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자동차산업의 공중분해다.

 

 호주 정부가 영국 EIU에 의뢰해 생산성을 따져본 적이 있다. 호주의 생산성 증가율은 조사대상국 51개국 가운데 50위로 나타났다. 언스트앤드영의 조사에서는 호주 근로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길지만 생산성은 최저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근로시간의 18%는 생산성이 제로였다. 그런데도 호주의 최저임금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결국 최악의 생산성이 제조업의 몰락을 불러온 것이다.

 

 꼴찌 생산성, 최장 근로시간, 강성 노조와 포퓰리즘 노동정책, 유연성 없는 노동시장…. 호주 자동차산업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닮은꼴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호주는 자동차산업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자원과 농축산물 대국이다. 하지만 한국은 제조업을 빼면 아무 것도 없는 나라다. 제조업의 현실이 호주를 닮았다는 자체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출처-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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