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유모(32)씨는 올해 5월 23일 오전 6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한 언덕길에서 음주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적발됐다.

 

 대리운전 기사가 세워둔 유씨의 차량이 4∼5m의 언덕길을 내려가 앞 차량 뒷부분을 들이받자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당시 유씨는 운전석에서 신발을 벗은 채 잠자고 있었고 차량은 시동이 켜진 상태였다. 경찰이 차 문을 열어 사진을 찍고 시동을 끈 후 열쇠를 뺄 때까지도 유씨는 깨지 않고 잠자고 있었다. 승용차의 주차 브레이크는 물론 기어도 주차(P)상태가 풀린 상태였다. 유씨는 현장에서 혈중 알코올농도 0.155%를 측정 받아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다.

 

 유씨는 1심에서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돼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2년 전 음주운전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상태였고, 바로 1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4차례나 음주 전력이 있어 실형을 면할 수 없었다. 유씨는 그러나 "대리운전을 해 이동하고 나서 운전석에 앉아 잠을 잤을 뿐 승용차를 운전한 사실이 없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을 심리한 전주지법 형사합의1부(재판장 박원규)는 유씨의 항변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는 항소심에서 술에 취해 운전 여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점, 대리운전 기사가 "승용차 시동을 켠 채 내렸고 기어를 주차(P)에 두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한 점을 강조했다. 특히 잠든 동안에 승용차 브레이크와 기어의 주차(P)상태가 풀린 차량이 내리막 경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 앞 차량을 들이받았다고 항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유씨가 승용차를 운전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4년 4월 23일 "운전은 '고의의 운전행위만'을 의미하고, 차량 내 사람의 의지나 관여 없이 차가 움직인 경우는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실수로 발진 장치를 건드려 움직이거나 불완전한 주차 상태 등으로 움직인 경우도 운전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최영수 기자 kan@yna.co.kr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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