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창조한 '반지의 제왕'은 오랜 시간 기술 부족으로 영상화되지 못했던 대표적인 소설로 기억된다. 수차례 영상화 제의를 받았음에도 세계관을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던 것. 그러던 몇 년 전 현대의 기술을 이용해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자동차 산업에 있어 반지의 제왕은 전기차다.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키맨(Key Man)'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는 등장시점이 비슷하지만 지난 100년간 산업을 지배해온 것은 내연기관차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내연기관의 입지를 흔드는 전기차를 대거 내놓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혹자는 벌써부터 내연기관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한다.

 

 전기차를 가장 활발히 개발하는 자동차 회사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다. 닛산에서 전기차 리프를 선보이며 시장 개막을 알렸고, 르노는 트위지, Z.O.E 등을 연속 출시하며 유럽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다. 그 숫자는 10만대에 이른다. 그리고 한국에는 SM3를 기반으로 개발한 SM3 Z.E.를 출시했다. 한국의 전기차 시장 잠재력이 높다는 판단에 이른 르노그룹의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르노삼성차는 SM3 Z.E.의 개발을 위해 2년8개월간 1,5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최초의 준중형급 전기차로, 그 활용도는 내연기관차에 못지않다. SM3 Z.E.를 전기차 정책이 가장 활발한 제주도 일원에서 시승했다. 참고로 Z.E.는 오염물질 배출이 전혀 없는 제로 에미션(Zero Emision)이라는 뜻이다.

 

 ▲스타일


 기존 SM3 디자인은 그대로 계승됐다. 곳곳에 전기차만의 요소도 두드러진다. 우선 라디에이터 냉각을 위한 그릴은 기능상 필요가 없어 공기역학 성능 향상을 위해 닫힌 형태로 제작됐고, 프로젝션 헤드램프가 적용됐다. 아웃 사이드미러는 LED 방향지시등이 들어갔다. 휠은 노플랜치 타입 16인치 알로이 휠과 한국타이어에서 제작한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장착했다.

 


 후면은 Z.E. 전용 엠블럼이 부착됐으며, 리어 콤비네이션은 르노 그룹 엠블럼 형상의 콤비네이션 램프가 채용됐다. 재미있는 부분은 기존 SM3보다 C필러에서 트렁크에 이르는 후반부가 10㎝ 늘었다는 점이다. 배터리 부피 때문에 실내공간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실내는 호평을 받았던 SM3 그대로다. SM3 Z.E.의 장점 중 하나다. '전기차=소형'이라는 공식을 깬 것. 덕분에 소형 전기차가 가진 작은 공간 구성의 단점이 상쇄됐다.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뒷좌석 각도를 27도로 눕혔고, 무릎 공간을 최대한 넓혔다.

 

 전기차를 증명하는 여러 시도들도 있었다. 우선 대시보드에 푸른색 포인트 마감을 가미했다. 전기차만의 순수한 느낌을 살린 것. 계기반은 전기차 전용 디지털 방식이 채택됐다. 모터 전원 '온/오프'를 알리는 전원 표시등, 에너지 소비와 재충전 상황을 보여주는 에코미터 등이 계기반 왼쪽에 위치하며, 속도계와 구동배터리 충전계, 에코 모드 표시 로고, 에코 드라이빙 인디케이터를 중앙에 배치했다. 가장 오른쪽은 주행 정보와 자동차 상태에 관한 정보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HMI 디스플레이로 구성됐다.

 


 센터페시어 상단엔 멀티미디어 모니터가 장착됐다.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각종 멀티미디어 시스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전기차만을 위한 주행거리 환산 게이지, 충전소 위치 안내, 에너지 흐름도, 경제 운전 정보 그래픽 등이 표시된다.

 

 센터페시어 하단 왼쪽엔 모터 스타트 버튼이 있다. 그런데 버튼엔 '엔진 스타트/스톱'이라고 적혀 있다. 분명 엔진이 없는 전기차임에도 말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SM3가 사용한 버튼을 그대로 쓴 것인지, 전기차라는 이질감을 없애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전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성능
 전기차의 관건은 최대 주행거리다. SM3 Z.E.는 복합 효율 기준으로 최대 135㎞를 주행할 수 있다. 어지간한 거리는 충전 없이도 왕복이 가능하다. 22㎾급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덕분이다. 배터리는 75%의 용량을 '5년 이내 10만㎞'까지 보증한다.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제동력에서 에너지를 회수에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회생제동 시스템을 더했다.

 


 충전은 르노그룹의 특허기술인 카멜레온 시스템이 적용됐다. 하나의 충전 인렛으로 완속과 급속 충전이 모두 가능하다. 완속 충전은 교류 7㎾ 충전기(가정/사무실용)로 3~4시간이 걸린다. 급속 충전은 교류 43㎾급 충전기를 사용해 30분 만에 80% 충전을 할 수 있다. 급속 충전 시스템은 3상 교류방식이 사용됐다. 여기에 향후 택시 사업 등에 활용할 퀵드롭 배터리 교환 방식도 개발됐다.

 

 모터는 최고 75㎾(95마력)를 발생하며, 최대 회전력은 226Nm(23㎏·m)이다. 최고 시속은 135㎞다. 너무도 당연하게 배출 오염 물질은 전혀 없다. 변속기는 전기차 전용 무단변속기를 장착했다.

 

 초기 가속 성능이 두드러진다. 토크가 직접적인 전기차 특성 덕분이다. 내연기관에 비해서도 월등한 출발 가속이다. 하지만 준중형급 차체를 채택한 탓에 소형 전기차에 비해 약간 더딘 움직임도 보인다. 그러나 일상 주행에 큰 무리가 없다. 무단 변속기인 덕분에 변속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속으로 올라서는 능력은 내연기관에 비해 떨어진다. 아직은 전기 모터의 한계다. 그러나 큰 단점이라고 여기기엔 무리다. 전기차 주행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서다. 폭발적인 가속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전기차의 개발 방향은 내연기관의 완벽한 대체가 아니라 보완에 있다. 한계 속도인 시속 135㎞까지 꾸준히 가속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 전기차 특성이 완벽하게 몸에 익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내연기관을 운전하는 대로 차를 몰다보면 약간 주행 이질감이 느껴진다.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는 울컥거림이 조금 느껴진다. 

 

 승차감은 르노삼성차답게 매우 부드럽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도 엉덩이에 전달되는 감촉이 단단하지 않다.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 역시 잘 차단됐다. 전기 모터를 채택한 덕분에 엔진 소음이 없다. 운전자에겐 축복이지만 보행자에겐 위험 요소다. 그래서 30㎞/h 이하로 주행할 경우 가상의 엔진 사운드를 내는 Z.E. 보이스 기능을 탑재했다. 음색은 3가지를 지원한다. 실내에서는 잘 들리지 않고, 외부에서만 소리가 들린다.

 


 배터리는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 세로로 장착됐다. 실내공간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소모된 배터리를 완충된 배터리로 교환할 수 있는 퀵드롭 방식에 있어 세로 적재가 더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제주도에는 퀵드롭 방식을 이용한 배터리 교환소가 1곳 설치됐다. 교환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8분 정도이고, 서두르면 4~6분에도 교환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퀵드롭은 급속임에도 소요시간이 30분 걸리는 충전 단점을 해결할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내공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세로로 배터리를 넣은 탓에 트렁크 공간이 일부 제한된다. 눈으로 봐도 좁다는 느낌이 있다. 이는 제주도 택시 사업자에겐 큰 단점으로 여겨진다.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 특성상 SM3 Z.E의 트렁크는 큰 여행 가방을 적재하기 힘들어 효용성이 떨어진다. 퀵드롭 배터리 교환을 지켜본 제주도 택시 운전기사도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총평
 전기차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아직 단점도 분명하지만 변화는 막을 수 없다. 내연기관 사용으로 인한 오염물질 배출은 심각한 이상 기후를 불러왔고, 전 세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전기차 개발의 당위성은 이미 확고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시장에 다양한 전기차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다.

 

 보급 관건은 인프라다. 내연기관 역시 주유소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어난 것처럼 전기차 역시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탈 수 없다. 당연히 구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많은 전기차 개발 업체들이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아직은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보급이 되지 않아 제작 단가를 줄일 수 없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보급이 원활하려면 전기차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의미다. 따라서 현재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다. 

 


 그럼에도 제품으로서 SM3 Z.E.는 넓은 공간, 안정적인 주행 성능, 효과적인 충전 방식 등이 장점이다. 여기에 퀵드롭이라는 배터리 교환 방식을 채택한 점도 충전 단점을 보완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남은 해결 과제는 전기차 주행거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급속 충전 방식의 국제 표준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차데모와 SM3 Z.E.가 사용하는 교류 3상을 동시에 지원하는 충전기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는 콤보1 타입을 활용하는 경쟁 차종보다 분명 우위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격은 SE 플러스가 4,200만원대, RE가 4,300만원이다.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정부 보조금 1,5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현재 제주와 창원에서만 지급) 800만원을 합하면 2,000만원 초반에도 구입할 수 있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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