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더링(rendering). 제품이 완성됐을 때의 모습을 예상한 그림.

 

 렌더링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탄생한다. 디자이너가 떠오른 생각과 영감을 종이에 무작정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이를 실현 가능하도록 다듬은 러프(rough) 스케치, 그리고 상품성·실용성·심미성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종합(comprehensive) 스케치다. 렌더링은 이 작업을 토대로 제품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이다. 제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을 출시하기 전 팸플릿이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에 주로 활용한다.

 

렌더링이 제품의 실물과 똑같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특히 자동차 렌더링은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다. 상상의 여지를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렌더링은 ‘완성품이 나오면 어떤 모습일까’하는 소비자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미지를 보고 ‘우와!’하는 탄성이 나올 수 있도록 특징을 과장해 표현한다. 어떤 모델은 비정상적으로 날렵하거나, 도저히 타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색깔을 입히기도 한다. 그림 속 모델이 어떻게 실제 양산차로 탄생했는지, 어느 차가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지 비교해보자.

 

 

◎재규어 F 타입

 

 지난해 2인승 컨버터블(지붕을 열 수 있는 차)인 재규어 F 타입의 렌더링이 공개됐을 때 전 세계가 환호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자동차라고 불리는 E 타입의 후계자답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3월 서울모터쇼에 실물차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F 타입 기본형은 1억400만원, F 타입 S는 1억2000만원, F 타입 V8 S는 1억6000만원이다. 1억원이 넘는 가격에도 사전 판매에서 초기 물량 30대가 모두 팔렸다.

 

 디자인은 늘씬하고 날렵한 표범을 연상케 한다. 3L V6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이 탑재돼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5.1초에 불과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259㎞다. V8 S 모델에는 보다 강력한 495마력의 5L V8 슈퍼차저 엔진이 장착돼 제로백 4.2초, 최고속도 시속 300㎞의 성능을 자랑한다.

 


◎시트로앵 DS4

 

 프랑스의 감성을 지닌 시트로앵 DS4는 항공기 실내를 그대로 옮겨 디자인에 적용한 혁신적인 차다. 세련미와 독특함이 주요 무기다. 앞부분은 날렵하게, 몸체에서 뒤로 갈수록 볼륨을 살려 빵빵하게 디자인해 귀엽고 도도한 느낌을 준다. 뒷좌석 문은 창문 쪽에 숨겨진 핸들로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입술을 쭉 내밀고 코를 찡긋하는 것처럼 보이는 ㅅ 모양 헤드그릴도 독특하다. 사이드미러나 휠, 안개등 모양을 보면 작은 부분까지 디자인에 신경 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실내 디자인의 숨은 병기는 ‘파노라믹 윈드스크린’이라는 햇빛 가리개다. 다른 차량처럼 앞뒤로 접혔다 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올렸다 내릴 수 있다. 완전히 올리면 운전자의 머리 부근까지 젖혀진다. 1.6L 디젤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최고출력 112마력, 최대토크 27.5㎏·m의 성능을 발휘한다. 복합연비 17.6㎞/L로 경제성도 있다. 가격이 비싼 게 흠. ‘시크(chic)’ 모델이 3960만원, ‘소(so) 시크’ 모델이 4390만원.

 


◎기아자동차 K3

 

 기아차 K3는 K시리즈의 종결자다. K5로 대성공을 거둔 뒤 K7, K9을 잇달아 내놓은 기아차는 준중형차 부문에서도 형님인 현대차 아반떼를 위협하겠다며 야심차게 이 모델을 내놨다. 그러나 출시 전 렌더링이 공개됐을 때 실망한 이들이 없지 않았다. 화려한 수입차 그림만 보다가 대충대충 무성의하게 그린 이미지를 보고 ‘망했다’고 섣불리 평가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두루뭉술한 렌더링과 달리 실물은 잘 나와줘서 다행이다.

 

 렌더링은 독특한 개성과 강인함을 살린 앞부분, 역동적인 느낌과 균형감이 돋보이는 옆면을 강조했다. 준중형이지만 세련되고 미래 지향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하려고 했다. K3는 유려하고 매끈해진 외관 스타일을 바탕으로 전장(길이)과 축거(앞바퀴와 뒷바퀴 사이 거리)도 늘어나 실내도 넉넉해졌다. 이 모델을 시작으로 앞부분 디자인은 똑같지만 뒷트렁크를 해치백 스타일로 만든 K3 유로와 더 날렵해진 쿠페 스타일의 K3 쿱 등 파생형 모델까지 나왔다. 가격도 1370만~1975만원으로 착하다. 성능도 중형차 못지 않다.

 


◎메르세데스 벤츠 A클래스

 

 메르세데스 벤츠는 렌더링과 실물의 차이가 가장 적은 브랜드 중 하나다. 소형차 A클래스는 차체 크기가 작아졌음에도 디자인을 통해 벤츠 특유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 벤츠가 소형차를 출시한다고 했을 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사람들도 렌더링을 보고서는 ‘역시 벤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을 정도다.

 

 앞부분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 세 꼭지별이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옆면에는 뚜렷한 캐릭터 라인을 새겨 날렵한 인상을 더했다. 뒷부분은 범퍼 하단과 테일 램프가 수평으로 연결돼 안정감과 함께 역동성을 연출했다. 신형 1.8L 직렬 4기통 CDI 디젤 엔진을 얹고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장착해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0.6㎏·m의 성능을 낸다. 가격은 3490만~4350만원.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출처-한국경제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경제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