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부른다.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점칠 수 있는 학습도구여서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100년 미래를 내다보려면 100년 과거를 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옛날 최초 자동차를 만들었던 위대한 선각자들의 끊임없는 창의정신을 배우라는 의미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 자동차의 등장은 인류를 한 단계 진화시킨 문명의 이기(利器)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익히 알고 있듯 자동차는 말을 대신해 등장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 걸쳐 유럽은 농업사회 속에서 귀족계급이 등장했는데, 당시 귀족은 경작지를 영지로 보유한 봉건귀족과 승려 계급이 중심이었다. 봉건귀족은 오늘날 자동차의 원조로 알려진 승용마차를 타고 다녔다. 승용마차는 고가의 귀중품인 동시에 신분을 상징하는 극명한 재산이기도 했다. 이처럼 귀족계급들의 취향에 맞춰 마차를 만들어주던 장인들을 이태리에선 '카로체리아(Carrozzeria)'로 불렀다. 카로체리아로 시작된 승용마차는 19세기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말 대신 엔진을 탑재해 원시적 형태의 자동차로 발전했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의 등장으로 인류는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시기적으로 어떤 회사가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는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통상 최초 자동차회사는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를 꼽는다. 1891년 다임러 엔진을 탑재한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2차 대전 후 시트로앵에 흡수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칼 벤츠가 1886년에 만든 3륜 특허차를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초로 본다. 메르세데스 벤츠 최초의 자동차로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칼 벤츠의 3륜 특허차는 배기량 984㏄로 0.9마력을 발휘했다. 당시로 보면 말 한 마리가 끄는 힘보다 낮았던 데다 최고시속도 16㎞에 불과했지만 움직이는 기계라는 점에서 발명은 획기적이었다. 당시 자동차를 처음 본 사람은 놀라 달아나기 일쑤였고, 경찰에 신고도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3륜 특허차는 1894년까지 생산됐지만 정확한 생산량은 알려져 있지 않다.

 

 

 푸조(Peugeot)
 비슷한 시기인 1890년 푸조도 첫 모델을 생산해 냈다. 타입2(Type 2)로 명명되는 푸조의 첫 차는 증기기관 대신 휘발유 엔진에 네 개의 바퀴, 그리고 다임러 엔진을 탑재했다. 길이가 2.5m에 달했고, 무게는 250㎏으로 앞뒤 좌석이 마주보도록 만들어진 4인승이었다. 2기통 2.3마력으로 최대시속 16㎞의 성능을 발휘했다. 푸조는 이듬해 9월에 발렌티니에서 브레스트까지 1,375마일 왕복거리를 시속 9마일로 완주해 명성을 드높이기도 했다. 1892년에는 29대의 자동차를 만들고, 최초로 바퀴에 고무 타이어를 장착해 승차감을 높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르노(Renault)
 최초라면 나름대로 밀리지 않는 회사 중 하나가 르노자동차다. 포목점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르노는 13살 때 증기자동차 제작자인 레옹 세르폴레의 차를 보고 자동차에 심취했다. 20살이 되던 해 엔진을 분해하던 그는 시속 32㎞의 2인승 루이 르노 1호차를 만들었다. 당시 벨트나 자전거 체인의 구동력을 전달해 움직이던 것과 달리 루이의 차는 프로펠러 샤프트와 디퍼렌셜 기어로 뒷바퀴를 구동하는 방식이 적용됐는데, 오늘날 자동차 구동장치의 시조로 불리기도 한다. 1899년 형인 페르낭과 마르셀을 설득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그는 같은 해 파리산업박람회에 르노 1호차를 출품해 60대의 주문을 받아내기도 했다.

 


 오펠(Opel)
 르노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 오펠도 첫 차를 내놓았다. 오펠자동차는 1838년생인 아담 오펠이 세운 회사로 초창기에는 재봉틀을 만들었다. 이후 자전거를 만들어 팔아 독일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아담 오펠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5형제는 1899년 루츠만의 자동차를 개조한 1호차를 내놓게 된다. 프리드리히 루츠만은 대장장이로 1895년 자동차를 개발한 인물이었다. 오펠 형제는 루츠만의 판권을 사들여 자동차 부문을 설립했고, 3년 뒤 오펠-루츠만을 소개했다. 이후 1906년에는 화물차와 오토바이까지 사업을 확대했고, 1928년에 GM에 매각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롤스로이스(Rolls royce)
 1904년에는 헨리 로이스(Frederick Henry Royce)가 역사적인 첫 차 '10마력'을 내놓은 해다. 이 차는 당시 자동차 사업을 구상하던 찰스 롤스(Charles Stewart Rolls)의 눈에 띠여 롤스로이스가 설립된 배경이 됐다. 로이스의 차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린 롤스는 결국 로이스와 롤스로이스를 설립하고, 1906년 롤스로이스의 첫 차 실버고스트(Silver ghost)를 내놓을 수 있었다. 롤스와 로이스는 이전 2기통 10마력을 벗어나 실버고스트에 6기통 7,036㏄로 최대 48마력을 발휘하는 엔진을 탑재했다. 덕분에 속력도 시속 80㎞까지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는데, 고급차로는 드물게 1925년까지 무려 6,173대가 생산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0hp'가 없었다면 실버고스트도 없었던 셈이다.

 


 

 크라이슬러(Chrysler)
1875년 미국 캔사스주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월터 크라이슬러는 18세가 되자  기차를 보고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 기차회사 견습공을 시작했다. 뛰어난 기계적 재능을 발휘한 크라이슬러는 이후 아메리카 기관차의 공장장, 뷰익자동차 관리자를 거쳐 1916년 뷰익 사장 겸 GM 부사장이 됐다. 뷰익을 GM의 가장 유력한 브랜드로 만든 후 1919년 사임했는데, 퇴임 6개월 후 윌리스 오버랜드와 맥스웰 차머즈 자동차 회사를 500만 달러에 인수해 경영을 맡은 게 크라이슬러의 시작이다. 

 


 크라이슬러는 회사 인수 후 '크라이슬러 식스(6)'라는 첫차를 내놓았다. 그러나 1924년 등장한 크라이슬러6는 양산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뉴욕 오토쇼 전시가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뉴욕 코모도어 호텔 로비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는데, 6기통 3,300cc 엔진을 탑재하고 네바퀴 유압 브레이크 등 다른 차에 비해 첨단장치가 확연히 구분돼 주목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1926년부터 생산된 임페리얼은 4,719㏄ 6기통 엔진으로 최대 128㎞/h의 속도를 발휘하며 미국 자동차산업을 주도했다. 

 

 

 볼보(VOLVO)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는 의미를 지닌 볼보는 1927년 학자이자 기업인 출신이었던 아사 가브리엘슨(Assar Gabrielsson)과 영국 모리스자동차의 엔진설계자였던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이 만나 설립한 회사다. 

 


 볼보(Volvo)의 시작은 1927년 4월 첫 차 'ÖV4'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1920년대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고조되는 시기였고, 실제 1923년 고텐버그에서 열린 자동차박람회에 97개 자동차업체가 참가했을 만큼 관심이 대단했다. 1927년 나온 ÖV4는 미국적 스타일을 따른 차로, 4기통 엔진으로 최대 28마력을 발휘했다. 속도는 시속 90㎞까지 낼 수 있었지만 권장 최고 속도는 시속 60㎞였다. 5인승 무개차(無蓋車)였고, 실내 대부분은 가죽 재질이 사용됐다. 출시 첫해 판매는 297대로 비교적 성공을 거둔 차로 기록돼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대각선 라인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볼보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브(SAAB)
 지금은 자취를 감춘 사브(SAAB)는 'Svenska Aeroplan Actie Bolaget'다. 해석하면 <스웨덴항공회사>라는 의미인데, 덕분에 항공기를 닯은 차로 유명세를 얻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사업 분야를 고민하던 중 사브는 1947년 자동차사업에 진출키로 하면서 첫 차 '92'를 만들어 냈다. 특히 사브는 승용차를 만들면서 15명의 항공기 엔지니어를 투입한 것으로 유명한데, 항공기 엔지니어가 만든 차답게 유선형의 스타일과 무엇보다 항공기로 착각할 정도의 놀라운 성능으로 주목받았다. 1936년 시트로앵이 '트락숑 아방'에 처음 적용했던 앞바퀴 굴림 방식을 선택했고, 764cc 25마력 독일제 엔진을 사용했지만 엔진튜닝을 통해 최대 105㎞/h를 낼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개발 엔지니어들은 운전석을 항공기 조종석처럼 만들었고, 항공기가 이륙할 때 급가속이 필요한 것처럼 자동차의 초기 가속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캐딜락(Cadillac)
 캐딜락의 깊고 다채로운 역사는 1902년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을 특징으로 하는  프로토타입의 데뷔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750달러였던 이 차는 획기적인 25mpg(miles per gallon)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의 성능을 자랑했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반응이 좋아 연이어 모델 B, C, D가 발표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04년에는 릴랜드 팔코너를 인수해 회사명을 캐딜락자동차로 변경했다. '캐딜락'이란 이름은 1701년 디트로이트를 발견한 프랑스인 모스 캐딜락(Mothe Cadillac) 장군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더불어 왕관과 방패 모양의 엠블렘도 캐딜락 가문의 문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르쉐(Porsche)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1875년에 태어났다. 비엔나 공업대학 청강생으로 공부하던 중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에 보존돼 있던 지그프리드 말커스 자동차를 보고 자동차 설계의 꿈을 가졌다. 이후 '밸라 에게르'라는 전기기계 제작소 조수로 일하기 시작해 1899년 마차 제조에 이어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유명해진 '야콥로너' 시험팀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여기에서 전기 및 전기와 휘발유 겸용(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참여했고, 189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전기자동차 '로나 포르쉐 1호'를 전시해 큰 찬사를 받았다.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와 폭스바겐을 거쳐 포르쉐자동차를 설립했고, 처음 선보인 차종이 '356'이다.

 

 


 BMW
 BMW의 최초 모델은 1904년 딕시(Dixi)다. 딕시는 BMW의 전신인 아이젠나흐 공장에서 생산된 소형차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초기 오스틴 자동차를 주로 생산했던 BMW는 독일형으로 로드스터와 세단 등 여러 차종을 생산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뛰어들어 1928년 자동차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딕시'라는 이름은 1929년 'DA-1'으로 교체되며 사라졌다. 그래서 딕시 후속 차종은 BMW 3/15 DA-2가 될 수밖에 없었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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