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을 1.6%(물가상승률) 올렸지만 격려금은 300%에서 200%로 줄어 실제 연봉이 평균 200만원이 깎였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지난 19일 타결한 올해 임금인상안의 내용이다. 노조가 임금 삭감에 합의해 준 것은 국내에서 이례적인 일인데, 노사 양측은 "불황을 감안해 양보교섭을 했다"고 했다.

 

 대개 이 무렵 대형 제조업체들이 '하투'(여름투쟁)로 홍역을 치렀던 때를 떠 올리면 상전벽해의 모습이다. 고용 인원이 큰 조선, 자동차와 부품 및 타이어 업체 사업장은 해마다 여름이면 파업구호로 뒤덮이고 노사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주로 민노총 금속노조 산하의 노조가 하투의 '주력' 부대였는데, 이들 노조는 개별 기업의 임금단체협상과 민노총 차원의 쟁의행위를 하며 하투의 중심에 섰었다. 그러나 최근 수 년간 하투는 눈에 띄게 줄었다. 참여정부 시절 연 평균 264건 발생했던 노사분규는 이명박 정부 때 연 97건으로 감소한 뒤 올 들어 16건에 그쳤다.

 

◇하투, 추억으로 바뀐 이유=하투의 감소는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낀 노조들이 하나둘씩 하투 진영에서 이탈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찌감치 이 흐름을 탄 곳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체들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일 각각 19년 연속, 23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마무리 했다. 조선업계에서 하투는 이미 19년 전 사어가 됐다는 말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90년 골리앗 투쟁으로 유명한 대표적 분규 사업장이었고 대우조선도 김우중 전 회장이 직접 거제에 내려가 노사분규를 수습해야 했던 곳이었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는 아예 민노총을 탈퇴하고 금속노조에 납부하던 연맹비(회비)를 모아 평생종합휴양소를 지으며 노사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조선업체들이 하투에서 빠진 뒤 유일한 보루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업체들이었다. 민노총 금속노조 산하의 5개 기업지부인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쌍용차, 만도 등이다.

 

 이중 쌍용차지부와 만도지부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2009년 옥쇄파업 이후 산별노조 체제의 민노총을 벗어나 개별기업 노조인 '쌍용차 노조'를 만들었고 쌍용차 지부는 현직 일반 조합원이 전무한 '페이퍼 노조'가 됐다. 쌍용차 노조는 2010년 이후 무분규로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해 왔고 올해도 파업 없이 협상을 끝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도지부 역시 지난해 파업 과정에서 90% 이상의 조합원들이 만도지부를 외면하고 개별노조인 '만도 노조'를 만들면서 명패만 유지하고 있다. 만도 노조는 최근 소식지에서 "조합원 위에 군림하거나 조합원을 이용해 개인 또는 정파적 이익과 정치적 명분을 달성하기 위한 발판이 돼서는 안 된다"며 정치투쟁과 거리를 두고 있다.

 

 기업지부가 아니라 지역지부인 부산양산지역지부 소속의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 역시 민노총 주도의 '희망버스'가 휩쓸고 지난간 뒤 개별기업 노조인 '한진중공업 노조'로 대거 옮겨 갔다.

 

◇희망버스는 정치투쟁= 민노총과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 쌍용차, 만도, 한진중공업 등 주요 거점 사업장에서 영향력을 잃으면서 하투의 동력은 올 들어 더 약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3, 4월 민노총의 위원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계파갈등으로 연이어 무산되는 등 내부 갈등이 심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민노총은 총파업은 진행하지 않고 금속노조 등이 산별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7월 하투에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등 완성차 노조가 불참했다. 세 곳은 금속노조 하투의 실질적인 거점이고 올해도 하투의 중심일 수 밖에 없다.

 

 금속노조가 '여름휴가 전' 부품사 투쟁, '8월 이후' 완성차 투쟁으로 분리한 까닭도 있지만 완성차 노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현대차 노조는 15차례의 임단협 교섭을 한 데 이어 23일과 24일 추가 교섭을 하는 등 아직 쟁의행위로 돌입할 상황은 아니다.

 

 물론 8월 이후 현대차의 하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할 수 있다. 3년 무분규 기록을 깬 강성노조 집행부가 오는 9월 노조위원장(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선명성 부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GM 노조는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주간연속2교대제, 비전과 생산물량 등 사내 문제가 위주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희망버스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현대차 희망버스'는 끝부분만 사선으로 자르면 '죽창'이 될 수 있는 대나무와 공장 펜스를 무너뜨릴 로프도 미리 준비했다. 공장으로 진입하는 즉시 현대차 직원, 경찰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장으로 들어갔다. 민노총도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경총 관계자는 "일반 조합원들이 정치투쟁에 염증을 느끼면서 민노총 탈퇴도 늘었고 개별 기업의 하투 등 분규가 줄어 들고 있는 추세"라며 "그런데도 민노총 등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희망버스 등을 통한 현안 이슈화를 시도하는 정치투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기택 기자
출처-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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