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오래된 차를 타는 것은 향수를 느끼는 것과 같다. 게다가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차라면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며 미소를 짓게 한다. 국내에서도 간혹 눈길을 사로잡는 30년 전 BMW는 어땠을까?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2013년 신형으로 등장한 5시리즈 시승에 앞서 30년 전 5시리즈를 경험한 것은 즐거움이다. 게다가 당시 M버전은 고성능답게 세월이 흘러도 짜릿함을 선사한다.

 


 BMW가 클래식으로 부르며 내놓은 30년 전 모델 가운데 잠깐이나마 스티어링 휠을 쥐어 본 차종은 최대 113마력의 1983년 524 td와 동일 엔진이 탑재된 1986년 324 td 투어링, 그리고 218마력의 1985년 M535i 세 가지다. 그 중에서도 인상에 강하게 남는 것은 역시 M5다.

 


 ▲디자인


 30년 전 BMW 5시리즈의 키드니 그릴은 지금보다 폭이 매우 좁았다. 가로형 그릴의 기본에 키드니만 세로형으로 부각시켜 놓은 모습이다. 게다가 보닛 앞부분을 최대한 돌출시켜 마치 미국의 머슬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명확히 구분된 분리형 트윈 헤드램프는 상징처럼 자리했다.

 


 전형적인 박스형 세단의 모습은 측면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고풍스러운 멋을 낸다. 스마트폰이 첨단을 걷는 시대에 봐도 아름답다. 당시에도 디자인은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인기를 끌었으니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뒷모습도 돌출 범퍼에 어울리듯 커다란 사각형 헤드램프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인테리어는 BMW의 특징에 따라 매우 단촐하다. 간결함을 유지하되 각종 기능 작동에 어려움 없는 디자인 철학이다. 게다가 커다란 지름의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잡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부품 구하기 어려워 10년이 지나면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과 달리 30년이 지나도 건재하니 오래 타면 탈수록 가치가 빛날 수밖에 없다.

 


 ▲성능


 처음 탄 차종은 324 td 투어링이다. 최대 113마력에 당시 최고 시속은 187㎞였다. 직렬 6기통 터보디젤 엔진이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듯 지친 소리를 내지만 가속페달을 밟으면 어려움 없이 도로를 누빈다. 사실 324 td에 탑재된 직렬 6기통 터보디젤 엔진은 1978년 설계됐다. 이후 5년간 개선과정을 거친 후 사용되기 시작했다. 숙성 과정을 거쳤다는 얘기다. 덕분에 터보디젤 엔진의 시작이라 불릴 만큼 관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1단으로 움직인 후 2단과 3단에서 속도를 높일 때 조금 버거워 한다. 그러나 5단에 넣고 시속 100㎞를 유지할 때는 편안함이 다가온다.  움직임이 예민하되 날카로운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시 0-100㎞/h 기록은 13.3초로 기록돼 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전성기 때와 같은 성능은 말 그대로 옛말이다. 하지만 변속할 때마다 힘이 넘친다는 듯 가속을 위해 숨을 내쉬는 것을 보면 마음만은 여전하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뮌헨 외곽을 돌다가 이번에는 1983년 524td(E28)에 바꿔 앉았다. 앞서 경험한 3시리즈와 같은 심장이지만 비교적 관리가 잘 돼 있다. 브레이크 페달이 지나치게 높아 불편함이 있지만 클러치를 밟으며 변속 레버를 조작하는 재미는 상당하다. 3시리즈보다 스티어링 휠의 지름이 크고, 움직임이 무거워 힘이 필요하지만 클래식의 묘미는 이런 부분에서 만끽하기 마련이다.

 


 또 다시 비가 쏟아져 와이퍼를 작동시키니 클래식임이 느껴진다. 짧고 작은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오래된 중고차면 그만이겠지만 클래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면 모두 너그럽기 마련이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관대해지는 게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이어 센터페시어에 마련된 케이블 타입의 공조장치를 보면서 에어컨 버튼을 누르면 냉기가 금새 흐른다. 오래된 디젤엔진에 부담을 주지만 커진 소리는 음악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번에는 1985년 M535i(E28)에 올랐다. 당시 BMW의 모터스포츠 버전으로 등장한 M5는 공기저항계수(Cd) 0.37을 기록하며, BMW의 고성능 이미지를 다진 차종이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AMS는 당시 M5에 대해 "매우 빠르고, 노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핸들링과 고속 때 주행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운동성능에 매력을 느낀다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시동을 걸자마자 가솔린의 부드러운 음색과 낮은 배기음이 귀를 간지럽힌다. 움직인 후 2단과 3단으로 변속하며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가볍게 속도를 높이는 성능은 세월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다. 218마력의 3,430㏄ 배기량이 1,390㎏의 중량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고성능답게 스티어링 휠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민첩하고, 시트도 버킷 타입이어서 몸의 흔들림이 최대한 억제된다. 당시 0-100㎞/h 7.3초의 능력은 건재하다 못해 힘이 넘친다.

 

 창문은 레버로 열어야 한다. 경차도 버튼 전동식으로 바뀐 지금 당연히 불편하지만 오히려 감성과 향수를 자극한다. 오래 전 첫 차를 구입했을 때 기억을 떠올려 주기 때문이다.

 

 ▲총평


 BMW가 2013년 6세대 개선형을 내놓으면서 클래식을 꺼내 놓은 이유는 그만큼 5시리즈가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어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처럼 6세대 부분변경의 원동력은 과거에서 비롯됐음을 내보이는 셈이다. 과거를 통해 향수를 자극하되 6세대에서 부분 변경된 또 다른 첨단과 대비되는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실제 30년 전 5시리즈에 탑재된 배기량 2,443㏄의 113마력 6기통 터보디젤 엔진은 현재 143마력, 184마력, 218마력의 배기량 1,995㏄ 터보 디젤엔진으로 세분화 됐고, 가솔린 M5의 218마력은 V8 엔진으로 560마력까지 진화했다. 세월의 무게에 따라 기술도 진화한 셈이다. 하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그게 바로 추억이다. 비록 힘은 떨어질 지라도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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