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과학의 집합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머리부터 아파오기 시작한다. 관성의 법칙, 에너지보존의 법칙 등 수많은 물리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는 태생 이후 과학기술을 통한 감성적 진화를 해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감성에 색을 칠한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외형에만 머물 뿐 그 너머 복잡한 기계의 연결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 제품 판매로 수익을 내는 자동차회사가 이른바 성형에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한때 디자인으로 불리던 외모지상주의가 과시로 흐를 때가 있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테일핀(tail fin·물고기 꼬리) 디자인은 외모 지향의 극치를 보여줬다. 크고 화려하고, 인간이 자동차에 압도될수록 각광받았다. 불필요한 공간도 몸매 자랑의 대상이 됐다. 화려함이 허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동이 석유 생산을 줄이면서 몸집은 작아졌고, 보기만 해도 아찔했던 짙은 화장은 수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전제는 있었다. 과도한 외모를 줄이되 개성은 드러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이후 자동차 외모는 성격, 용도,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돼 왔다. 발광다이오드(LED)의 등장은 사람의 눈에 비유되는 램프 화장의 새로운 기법을 제시했고, 일체형 범퍼는 단절된 듯했던 외모를 매끈하게 다듬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은 것이 바로 ‘패밀리 룩(Family look)’, 흔히 말하는 핏줄 DNA다. 부모, 형제, 자매, 남매의 얼굴이 닮은 것에서 비롯된 ‘닮은꼴 자동차 만들기’가 미담으로 여겨졌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닮은꼴 성형은 마치 그들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처럼 포장됐다. 반대로 닮은꼴 얼굴을 하지 않으면 프리미엄처럼 보이지 않는 인식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자동차의 닮은꼴 성형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중이다. 하지만 닮은꼴 성형이 반드시 좋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닮은꼴에 얽매여 때로는 엉뚱한 외모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성격에 따라 튀는 외모와 개성을 지향하는 회사가 고급스럽고, 중후한 외모의 대형차를 만들 때가 그렇다. 간혹 닮은꼴도 아닌, 대형차에 걸맞은 중량감 표현이 부족한 차가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래서 닮은꼴을 지향하되 굳이 ‘닮은꼴’을 내세우지 않는 기업도 적지 않다. 닮은꼴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한편에선 족쇄로 변할 수 있어서다.

 

 요즘 들어 자동차 외모지상주의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외모 속에 감추어진 품질 문제가 적지 않아서다. 사람의 기본은 성품(性品)이고, 자동차는 품질이라는 기본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다. 디자인보다 내구성에 우선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쉽게 꺾이지 않을 태세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본 기사의 저작권은 오토타임즈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