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17위인 STX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STX팬오션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한다. STX팬오션은 옛 범양상선을 인수해 설립한 회사로 국내 3위의 대형 해운업체다. STX그룹이 조선부문과 함께 양대 축을 이뤘던 해운사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파격적인 구조조정으로 받아들여 진다. 재계 순위 30위인 동양그룹도 핵심 계열사인 가전부문의 동양매직과 건재부문의 레미콘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 그룹은 소규모 계열사들도 정리해 사업영역을 금융·시멘트·화력발전의 세축으로 축소 재편한다는 복안이다. 대기업집단의 잇단 구조재편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내 경기침체의 파장이 실물경제 쪽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어서 걱정된다.

 

 재벌그룹이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알짜사업까지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불황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STX팬오션은 해운경기가 좋았을 때 연매출이 10조원을 넘고 영업이익도 7천억원선에 근접했다. 하지만 세계 해운·조선시장의 극심한 침체로 이 회사의 부채는 올해 말에 5조원을 훨씬 넘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동양그룹도 건재·가전의 올해 3.4분기까지 영업이익이 500억원을 넘을 정도로 현금창출 능력이 뛰어났지만 내수부진에 따른 불투명한 사업전망과 현금확보를 위해 수익성 중심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경기가 나아질 조짐이 없어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이지 않으면 한순간에 쓰러진 웅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내 대기업의 비상경영은 모든 산업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현대중공업과 르노삼성, GS칼텍스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포스코는 계열사 10여개를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지분 등을 처분한 데 이어 박삼구 회장이 사재까지 털어 증자에 참여했다. 롯데도 롯데쇼핑과 롯데미도파를 합병하는 군살빼기에 나섰다. 수출과 내수기업을 가리지 않고 중후장대한 기간산업에서부터 관광·유통업까지 호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3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2%에 그쳐 올해 목표치 2.4%나 내년 전망치 3%대 달성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전방위적으로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을 낳고 있다.

 

 재벌그룹의 초강수 구조조정이 걱정되는 이유는 자구노력으로 확보한 자금이 주로 빚을 갚는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맺은 재무구조 개선약정 때문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가뜩이나 내수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투자를 외면하고 부채상환에만 주력하면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127조원으로 올해보다 1.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과거 고비때마다 오히려 투자를 늘려 위기를 돌파했던 대기업들의 투자기피 현상은 성장과 고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조금이라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기업이 급격한 대출상환 같은 한계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금융시스템이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할 것이다. 가계나 기업이 부채를 줄이는 재무조정 시기에는 금리·통화 정책보다는 적정 수준의 재정지출 확대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출처-연합뉴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연합뉴스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