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고 미안했다. 처음에는 다루기 쉬운 차로 착각해서, 다음에는 이 차의 성능을 만끽할 만큼의 운전 실력을 갖추지 못해서 그랬다. 매끈한 디자인에 넋을 놓고 편안한 승차감에 다소 긴장을 풀었던 것도 잠시, 서킷에 올라선 XKR은 고성능 스포츠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전달해왔다. 도무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운전자의 심리적 불안감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게 만들 뿐이었다.

 

 

 재규어코리아가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재규어 트랙데이를 진행했다. 그동안 유려한 디자인으로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았던 재규어가 주행 성능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국내 시판 중인 전 차종이 영암 서킷에 등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재규어의 주행본능을 느끼기엔 XKR이 제격이었다. 2012년형 XKR 컨버터블을 시승했다.

 

 

 ▲디자인


 연식변경을 거치면서 이전 차종보다 더 날렵해진 느낌이다. 전체적인 외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헤드램프가 작아지고, LED 조명이 더해지면서 전면부 인상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좌우로 길게 자리 잡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공기흡입구는 마치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듯한 인상을 완성한다. 에스턴마틴 등 영국 스포츠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속도감이 느껴지면서도 재규어 특유의 품위를 지켜준다.

 

 

 XKR은 6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로 손꼽히는 재규어 E-타입까지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차의 디자인에 흠을 잡는다면 아마도 취향 문제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균형잡힌 외형의 실루엣부터 디테일까지 완성도가 느껴진다. '아름답고 빠른 차(Fast & Beauty Car)'라는 디자인 철학에 수긍할 수 있다. 다만 XK와 차별성이 크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튀지 않으면서도 완숙한 디자인 역시 재규어만의 특징이다.

 

 

 내부도 비교적 평범하다. 계기판은 단순하고, 센터페시어에는 필요한 버튼만 자리잡고 있다. 자동변속기는 조그 방식으로 시동을 걸어야 조작할 수 있도록 돌출된다. 공조장치 송풍구도 특별한 디자인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급스러움은 느낄 수 있다. 전용 가죽시트는 버킷처럼 몸을 꼭 잡아주면서도 적절한 쿠션으로 안락한 승차감을 준다. 내부에 아낌없이 적용된 가죽 소재, 스웨이드로 마감 처리된 천장 등에서 품격을 확인할 수 있다.

 

 

 컨버터블 루프는 버튼 하나로 18초 이내에 열 수 있다. 소프트톱 방식인 만큼 트렁크 수납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뒷좌석은 컨버터블 특성에 따라 약간 비좁다.

 

 

 ▲성능
 XKR의 심장은 5.0ℓ V8 수퍼차저 엔진으로 최고 510마력, 63.8㎏·m의 성능을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8초면 주파할 수 있다. 최고속도는 안전제한 하에 시속 250㎞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 장착됐다.

 

 

 시동 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우자 묵직한 중저음의 배기음이 차 안을 채운다. 스포츠카답게 흥분을 일으키는 소리 감성이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고 일반적인 주행을 시작하면 실내에는 간질간질한 엔진소리만 남고 외부소음은 적절하게 차단된다. 과격하게 몰지 않는다면 소리 때문에 피곤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속 페달에 힘을 싣는 순간 강렬한 사운드가 차 안을 채운다. 사운드 퀄리티를 중시하는 재규어답게 모든 소리는 적절히 튜닝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슈퍼차저 소음을 최대한 억제하고 V8 엔진 배기음을 살려내기 위해 각종 기술이 투입됐다는 게 재규어의 설명이다. 신형 하이 힐릭스 로터 디자인을 통해 슈퍼차저 소음을 잡아내고, 배기가스의 양을 조절하는 액티브 이그저스트 시스템은 주행 상태에 따라 최적의 배기음을 전달하도록 고안됐다.

 

 

 페이스카를 따라 처음에는 코스와 차의 성능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 영암은 F1서킷 중에서도 고난도에 속한다. 특히 급커브 구간은 브레이킹 포인트를 잘 숙지해야 안전하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다.

 

 초반에는 적응하는 데 주력했다. 과격한 조작을 배제하고 코스를 답사한다는 느낌으로 달렸다. 편안한 승차감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스티어링 휠이 인상적이다. XKR을 설명할 때 스포츠카 외에 GT카로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통상적인 운전환경이라면 일반 세단과 비슷할 정도다. 그렇다고 무른 느낌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힘은 넘치고 몸놀림은 날렵하다. 직선구간에서 시속 200㎞ 이상을 여유 있게 치고 오른다. 비교적 완만한 곡선 코스는 시속 130㎞까지 속도를 올려도 견뎌준다. 코너링에 믿음이 생겼다. 운전실력에 자신이 없어도 조금은 과감하게 차를 내몰 수 있는 이유다. 시속 200㎞ 이상에서도 속도는 얼마든지 더 올릴 수 있다. 재규어가 강조하려 했던 성능은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다.

 


 ▲총평
 XKR은 재규어 스포츠카 XK에 고성능을 상징하는 'R'이 더해진 이름을 가졌다. BMW M이나 아우디 S시리즈와 같은 맥락의 명명법이다. 이에 걸맞게 XKR은 높은 주행 성능과 매력적인 디자인 등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다. 스포츠카지만 운전이 까다롭지 않고, 편안한 승차감을 확보한 것도 이 차가 가진 장점이다. 영국 정통 신사의 품격에 단거리 육상선수 유전자가 적절히 섞인 차종이다. 가격은 XKR 쿠페가 1억7,470만원, XKR 컨버터블이 1억8,420만원이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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