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의 북미 지역 '연비 과장'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연비를 잘못 알고 차량을 사는 바람에 실제 연료 소비뿐 아니라 중고차 가치 측면에서도 손해를 봤다는 차주들의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연비 과장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으며 국가마다 다른 연비 인증제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북미 지역 차주들, 잇따라 소송 제기 = 8일 블룸버그 통신, 오토모티브 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지난 2일 13개 차종의 연비 오류에 따른 하향 조정 방침을 발표한 이후 소비자들이 현지 법원에 연이어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 차주 23명은 지난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 지방법원에 7억7천500만 달러(약 8천435억 원) 규모의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현대·기아차가 연비를 부풀려 판매함으로써 해당 차량을 중고 시장에서 되팔 때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소장에서 회사 측이 제시한 직불카드 보상으로는 차량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앞서 이달 4일에는 3명으로 구성된 원고가 오하이오에서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또 지난 7월에는 현대차 차주와 시민단체 컨슈머 워치독이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이 연비를 과장광고했다며 법원에 제소한 바 있다. 온타리오를 비롯한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도 집단 소송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가 제시한 보상금은 첫해 1인당 평균 미화 88달러, 이후에는 해당 차량의 보유기간까지 77달러다. 북미 지역에서 판매한 2011~2013년형 모델 13종을 소유한 102만 명(미국 90만명, 캐나다 12만명)이 해당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현대·기아차가 문제 차량들이 모두 폐차될 때까지 연간 1억 달러를 보상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법적 비용은 포함되지 않아 소송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현대·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소송에 대해 현대·기아차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현대차 현지 법인의 그리스 호스퍼드 대변인은 블룸버그 통신에 "우리 보상 프로그램은 가장 나은, 가장 빠른, 가장 고객 중심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법정 소송이므로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지 법인에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서도 논란..연비 인증제도 의문도 = 북미 지역의 연비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내에서도 연비 과장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YMCA는 북미 연비 문제가 불거진 이후 현대·기아차 전 차종의 연비 표기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서울YMCA는 지난 6일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장치가 극도로 미약한 국내에서는 북미에서보다 광범위하게 연비를 과대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 비교로도 같은 차종에 한국의 연비가 미국보다 20~30%나 높게 표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이번 일이 연비 측정 과정에 미국 규정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므로 국내 시장과는 관계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연비 측정 과정에 오류가 빚어진 부분은 차량 워밍업, 주행 시 외부 온도, 도로면 등 주행저항계수다.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가 연비 측정 시 적용한 저항계수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가이드라인에 들기는 하지만 현지 환경과는 거리가 있어 EPA의 사후 테스트에서 실연비와 차이가 많이 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대차그룹 한 관계자는 "한 예로 국내에서 아스팔트 도로의 저항값을 입력해 연비를 측정했는데 EPA는 시멘트 도로에서 사후 테스트를 했기 때문에 차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YMCA의 지적에 대해서도 "같은 차종이더라도 배기량 등이 달라 미국과 한국의 연비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가마다 제각각인 연비 인증 시스템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미국에서는 각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측정한 연비를 인증받고 정부가 사후에 이를 일부 검증하는 체계다. 국내에서는 각 업체가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시험기관에서 측정한 연비를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하면 공단이 이를 인증하고 이후에 일부 차종을 골라 테스트한다. 등록 차종 가운데 연간 3~4% 정도가 사후 검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중국 등지에서는 출시될 예정인 차량에 대해 정부가 전문가를 파견하거나 직접 차량을 받아와 연비를 측정한다.

 

 각 업체가 자체적으로 측정하거나 시험기관에서 받아온 연비를 신고하는 방식은 주행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연비에 오류가 생길 여지를 주며 실제 사후 검증이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연비 인증을 담당하는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국내 인증 체계는 국가가 지정한 시험기관에서 측정한 연비를 신고하는 시스템이다. 또 사전 인증 제도가 있더라도 사후 검증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어떤 제도가 더 낫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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