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한 대 때문에 하루아침에 월소득 5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가 됐더라고요.”

 

 주부 이모씨(33)는 올초 세 살배기 딸의 보육료 지원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소득하위 70%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월소득 150만원에 재산이라고는 1억500만원의 전세금이 전부인데 믿기지가 않았다. 문제는 연초에 중고차시장에서 구입한 2007년식 렉스턴(2700㏄) 때문이었다. 배기량 2500㏄를 넘다보니 차량가액(1150만원)의 3분의 1인 383만원이 고스란히 월소득으로 잡힌 것. 그는 “중고차 한 대에 월소득을 400만원 가까이 설정하면 도대체 얼마나 궁핍해야 소득하위 70%에 들어가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반면 이씨의 이웃에는 정반대의 사례가 있다. 고급형 SM7 신차를 가진 이웃은 보육료를 받을 수 있다. 차량가액 2800만원이지만 배기량 2300㏄라는 이유로 월소득은 38만원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5년 된 렉스턴(2700㏄)의 가격은 SM7 신차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지만 환산소득은 거꾸로 10배에 달하는 셈이다. 배기량 중심의 획일적인 기준이 만들어놓은 불합리의 극치다. 이씨는 배기량 400㏄ 차이로 소득평가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무조건 차 팔아라?

 

 자동차의 소득환산율 기준은 복지사업의 단골 민원이다. 소득이 끊기고 빚을 졌어도 자동차 한 대 때문에 혜택을 못 받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자동차를 굴릴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국민세금을 쓸 수 없다”는 게 정부 측 논리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구당 자동차 보급률이 92%를 넘긴 상황에서 가격이 아니라 배기량을 기준으로 높은 환산율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3~4세 유아 보육료를 지원받으려면 소득 하위 70%에 들어야 한다. 3인 가족의 경우 월소득 454만원까지다. 이 월소득엔 월급뿐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재산, 자동차 등 보유 재산이 소득으로 환산돼 포함된다.

 

 이 가운데 자동차의 소득 환산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배기량 2500㏄ 미만이거나 6년 이상된 승용차는 ‘일반재산’으로 환산, ‘차량가액의 4.17%’를 3으로 나눠 소득액으로 친다. 차량가액 2400만원일 경우 33만3700원이다. 반면 배기량이 2500㏄를 넘고 6년 미만인 승용차는 ‘차량가액 100%’를 3으로 나눠 계산한다. 같은 차라면 800만원이 월소득에 포함된다. 이 경우 자동차 한 대만으로 소득하위 70%의 소득인정액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러다보니 자동차는 보육료 수급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맘스홀릭’ 등 인터넷 게시판에는 ‘차가 2500㏄ 이상이면 보육료 신청을 아예 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글이 올라온다. 때문에 자동차 명의를 친척에게 돌리거나 질권을 설정하는 등의 편법도 암암리에 나돈다.

 

○지금도 ‘봉고차 모녀’ 수두룩한데

 

 제도 간 형평성도 지적된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배기량에 상관없이 차량가액 5%를 ‘연’소득으로 친다. 한 전문가는 “노령연금은 자동차 소유 기준이 가장 약하다”며 “하지만 유아를 데리고 있는 가구가 노령 가구보다 자동차를 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동차 기준의 골격은 2003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재산의 소득환산제가 도입될 때 생겼다. 자동차는 부동산 다음으로 큰 재산으로 여겨져 ‘특별 대우’를 받았다. 재산조사 때 자동차를 별도의 재산 항목으로 두고 소득환산율 100%를 부과하는 등 기준이 매우 엄격했다. 승용차를 가졌다면 빈곤층으로 볼 수 없다는 국민 정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를 낳기도 한다. ‘봉고차 모녀’가 대표적 사례다. 2009년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편지가 날아들었다. 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단 둘이 사는데 10년된 봉고차 한 대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이 모녀는 나중에 대통령의 지원으로 기초생활보장지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규정상 봉고차는 팔아야 했다. 대통령도 이 가혹한 규정과 현실의 불일치를 어쩌지 못한 것이다.

 

○차량가격 기준으로 재편해야

 

 민원이 쏟아지자 정부는 보육료 지원의 배기량 기준을 2005년 2000㏄로, 2009년 2500㏄로 높였다. 왜 하필 2500㏄여야 하는지에 명확한 근거는 없다. 요즘은 배기량과 차량 크기, 가격이 꼭 비례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보육료 지원이나 노령연금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달리 폭넓은 이들에게 정해진 액수가 지급된다”며 “이처럼 보편적인 복지사업에 자동차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배기량이 아니라 실제 차량가액 위주로 기준을 통일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말이 없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소득환산율제도 도입 당시의 두 배에 이르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출처-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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