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피아트는 ‘124’와 ‘125’를 등장시켰다. 1972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생산됐지만 폴란드와 이집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모로코 등지에선 그 이후에도 조립·판매됐다. 1608㏄ DOHC 엔진으로 90마력을 발휘했고, 5단 변속기가 조합됐다. 1970년 내놓은 ‘125S’는 3단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1972년 피아트 ‘132’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60만3877대가 생산됐다.

 

 피아트와 한국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1962년 자동차공업보호육성법이 제정되고, 1964년 피아트가 아시아자동차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이후 피아트 ‘124’를 선보인 때가 1970년이다. 현대차 ‘코티나’, 신진차 ‘코로나’와 경쟁할 만큼 중산층에 인기가 많았다.

 

 피아트 ‘124’가 판매될 때 청와대는 ‘125’를 활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124’보다 ‘125’의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간 거리)가 80㎜ 길어 뒷좌석이 넓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모친인 고(故) 육영수 여사가 탔던 차로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 이후 아시아자동차가 동국제강을 거쳐 기아차로 편입되자 주광모터스가 1990년대 피아트를 완성차로 수입·판매했다. 1998년 성우 배한성 씨는 피아트 ‘바르케타’의 시승기를 당시 월간 카테스트에 게재하면서 ‘오너 드라이버들에게 자동차 본연의 본질적 감성을 주는 차’로 표현했다. 인상 깊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후 피아트는 소리 소문 없이 한국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졌다. 간간이 외신을 타고 들려온 소식은 크라이슬러와의 제휴, 유럽 불경기에 따른 몰락 등이 전부였다. 그리 반갑지도 않은 소식이 시베리아를 타고 동쪽 끝 한국 땅까지 전해졌다.

 

 그랬던 피아트가 내년에 한국에 들어온다. 그중에서도 ‘친퀘첸토’로 유명한 소형차 ‘500(사진)’이 출시된다. 작은 차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한국은 작은 수입차에 결코 관대하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다. 미니(MINI) 사례를 떠올리지만 피아트가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

 

 헨드릭 본 퀸하임 BMW그룹 아시아·태평양·남아프리카 총괄사장의 말이 떠오른다. “BMW가 몽블랑 만년필이면 현대차는 파커 정도”라는. 이 말을 피아트에 적용하면 “미니가 몽블랑일 때 500은 파커와 같다”로 얘기할 수 있다. 피아트가 유럽에선 쉐보레를 비롯해 현대·기아차와 경쟁하는 브랜드로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피아트가 몽블랑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피아트 진출에 위기감을 느끼는 경쟁사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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