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는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피터 슈라이어를 보여 드리는 자리입니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독일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59) 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서울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순수 미술가로 데뷔한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20여 년간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기아차 쏘울, K5, K7, K9, K3 등 K 시리즈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금껏 작업한 드로잉, 설치, 회화 작품 60여 점을 들고 오는 22일부터 11월2일까지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첫 개인전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연다.

 

 순수 예술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 드러내 보이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낮 전시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슈라이어는 "지금까지 내가 작업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제 설치를 마치고 전시장을 둘러봤는데 감개무량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생애 첫 개인전을 한국에서 연 데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개인전을 열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굉장히 바빴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나의 내면을 꺼내 대중에게 인간 피터 슈라이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비행기 조종사를 꿈꿨고 1983년부터는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했다는 그의 작업에는 유독 비행기나 조종사가 많이 등장한다.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서 영감을 얻은 작업도 보이는데 정작 자동차가 등장하는 그림은 단 한 점뿐이다.

 

 "저는 자동차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미술 작업은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인데 거기에서까지 자동차를 그리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일만 하는 셈이죠."(웃음)

 

 이런 생각 때문인지 그는 새로운 K3 디자인에 대한 질문에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는 내일 디자인 포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매우 멋진 차"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다고 순수예술과 자동차 디자인이 서로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슈라이어는 "자동차 디자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요구하지만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면들도 필요하다"며 "순수예술은 내가 열린 사고를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훈련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서도호와 전광영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2009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초청돼 조선시대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담양 소쇄원에서 영감을 얻은 '레스트(Rest)'라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6년간 기아차와 일하면서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그는 "최근 경주를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왕릉의 곡선이 매우 흥미롭다. 전통 도자기의 곡선도 그렇고 현대 건축도 전통과는 대조적이면서도 흥미롭다"며 "(디자인 작업에서)한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고 나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적힌 'No guts, no glory(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라는 문구의 뜻을 물었더니 오래된 전투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구라고 했다.

 

 "'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말이 그 조종사에게도 중요했겠지만 오늘의 제게도 중요합니다. 일하는 데 가장 큰 모험(risk)은 아무런 모험(risk)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에서도 그렇고 매 순간 작업할 때도 모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남보다 앞서가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박인영 기자 mong0716@yna.co.kr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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